[단비 인터뷰] 사회적 기업 ‘더 스페이스 프랜즈’ 김현옥 대표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의 어느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연녹색 지붕이 눈에 띈다. 지붕에는 ‘더 스페이스 프랜즈’를 상징하는 아이 얼굴 그림이 그려져 있다. 더 스페이스 프랜즈는 다문화 아이들을 위해 한글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 회사를 운영하는 김현옥 대표(64)는 ‘해방촌’으로 알려진 용산2가동으로 다섯 살 무렵에 이사 와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계속 해방촌에서 지냈다. 젊은 시절의 해방촌 생활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스물아홉에 결혼했다. 두 자녀를 키우며 평범한 가정주부의 삶을 살았다.   

‘더 스페이스 프랜즈’의 사무실은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의 어느 언덕길 중턱에 있다. 밀집한 주택 사이로 연녹색 간판이 눈에 띈다. 2018년에 해방촌오거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사무실은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겸하고 있다. 조재호 기자
‘더 스페이스 프랜즈’의 사무실은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의 어느 언덕길 중턱에 있다. 밀집한 주택 사이로 연녹색 간판이 눈에 띈다. 2018년에 해방촌오거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사무실은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겸하고 있다. 조재호 기자

제천에서 만난 필리핀 사람들

마흔 아홉이 되던 2008년, 그의 삶이 바뀌었다.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제천으로 이사했다. 둘째 자녀를 ‘간디학교’에 보내면서 마련한 주택이 제천에 있었다. 간디학교의 학부모 운영위원이었던 남편이 제천에 내려올 때마다 머물던 집이었다. 

낙담이 없지 않았던 제천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제천 다문화센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회계 업무를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맡은 일만 처리했다. 두 달 뒤, 제천에 사는 필리핀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쳐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그는 호기심에 승낙했다.

김현옥 더 스페이스프렌즈 대표가 제천에서 머물렀던 집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2008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제천에서 살았다. 제천 다문화센터에서 근무하면서 필리핀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조재호 기자
김현옥 더 스페이스프렌즈 대표가 제천에서 머물렀던 집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2008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제천에서 살았다. 제천 다문화센터에서 근무하면서 필리핀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조재호 기자

그곳에서 이주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처음 목격했다. 필리핀 여성들은 한국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 남편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여성도 있었다.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었다. 경찰과 말이 통하지 않았다. 가족 간에 정상적 대화가 없으니, 그들의 자녀도 언어 장애를 겪고 있었다. 

김 대표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쳐 보겠다고 결심했다. 마트에서 가져온 전단지를 학습 자료로 썼다. 전단지에 쓰인 생선과 과일 이름을 가르쳤다. 자녀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교과서를 가져오게 하여, 그 내용을 엄마들에게 가르쳤다. 담임 선생님에게 아이를 지도해줘서 감사하다는 편지도 쓰게 했다.   

해방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한글 교육 봉사

2010년, 김 대표는 다시 해방촌으로 돌아왔다. 그의 나이 쉰하나였다. 제천에서 새로운 세상을 목격했던 김 대표는 해방촌에도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연히 동네 정육점 사장님의 소개로 나이지리아에서 온 사람을 만났다. 그에게 한글을 가르쳐 줬다. 그 소문을 듣고 가나, 우간다 등 다양한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찾아왔다. 공부 모임도 커졌다. 많게는 여덟 명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마땅한 공간이 없어 카페를 전전하며 공부했다. 

김 대표는 어느 나이지리아 여성을 해방촌에서 만나 한글을 가르쳤다. 그와 함께 광화문에 놀러 가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김현옥 대표 제공
김 대표는 어느 나이지리아 여성을 해방촌에서 만나 한글을 가르쳤다. 그와 함께 광화문에 놀러 가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김현옥 대표 제공

그 일은 점점 커졌다. 2014년부터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도 한글을 가르쳤다. 다니던 교회에서 나이지리아 출신 부모를 둔 아이의 교육을 부탁받았다. 한국어를 하지 못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김 대표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아이의 가정에 방문해 한글을 가르쳤다. 이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한글 교육 봉사를 시작했다. 사비를 들여 해방촌 오거리에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을 빌렸다. 인근에 사는 다문화 아이들을 모집했다. 교습비는 받지 않았다. 10여 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쉰아홉에 세운 회사, ‘더 스페이스 프랜즈’

한글 교육 봉사가 4년째를 넘기면서,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 더 많은 다문화 아이들에게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혼자 감당하는 봉사로는 부족했다. 2018년, 김 대표는 사회적 기업 ‘더 스페이스 프랜즈’를 설립했다. 그의 나이 쉰아홉이었다. 

설립 6개월 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사회적기업육성 프로젝트에 신청하여 자금을 지원받았다. 그 돈으로 한글 교습 콘텐츠를 제작했다. 어느 논문을 참고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어휘 중 등장 빈도가 높은 600여 단어를 골랐다. 이를 바탕으로 온라인 한글 교육 콘텐츠 ‘아띠 코리안’을 만들었다. 아띠는 순우리말로 ‘친한 친구’를 뜻한다. 

아띠 코리안은 수준에 따라 세 단계로 나뉘어 있다. 쉬운 어휘에서 시작해 교과 수업과 관련된 어휘로 나아간다. 빠르면 3개월 안에 수강을 마칠 수 있다. 학습자의 수준에 따라 6개월을 넘어서기도 한다. 아띠 코리안의 서비스는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됐다. 다문화 아이들을 집단적으로 가르치는 지역 교육청이나 사회공헌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얼마 전엔 서울시 중구 교육청과 계약했다. 더 스페이스 프랜즈 소속 강사가 교육청 산하 초등학교에 방문해 학습을 돕는다. 작년에는 4개 학교에서 20여 명이 아띠 코리안을 이용해 한글과 한국어를 익혔다. 올해는 6개 학교에서 3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그동안 이 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한 아이들은 100명이 넘는다. 

다문화 학생들이 아띠 코리안을 이용해 공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여름부터 초등학교에 ‘더 스페이스 프랜즈’ 소속 강사를 파견하고 있다. 김현옥 대표 제공
다문화 학생들이 아띠 코리안을 이용해 공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해 여름부터 초등학교에 ‘더 스페이스 프랜즈’ 소속 강사를 파견하고 있다. 김현옥 대표 제공

다문화 가족과 소통하는 세상을 위하여

더 스페이스 프랜즈는 교육청과 계약해 벌어들인 수입과 더불어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직 기부받는 금액이 크지 않다. 비용 마련이 쉽지 않아, 회사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1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데, 모두 시간제 근로자로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 정규직 급여를 지급할 형편이 아니다. 직원이자 강사인 그들 모두 김 대표의 사정을 안다. 그래도 그와 함께한다. 김 대표의 진정성과 따뜻함이 그들을 끈끈하게 연결한다. 

김 대표와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열리는 회의에서는 콘텐츠 제작 방향이나 강사 파견 일정 등을 논의한다. 조재호 기자
김 대표와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열리는 회의에서는 콘텐츠 제작 방향이나 강사 파견 일정 등을 논의한다. 조재호 기자

제천에서 우연히 시작된 한글 교육 봉사가 오늘에 이르렀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이제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한글 교육은 그의 소명이 됐다. 회사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도 새롭게 느끼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경력 단절 여성이다. 그들의 사정을 김 대표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더 잘 해내고 싶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회사를 성장시켜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더 질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그의 꿈이다. 요즘엔 아띠코리안 강의의 네 번째 단계를 개발하고 있다. 단어 학습에 집중한 앞선 세 단계와 달리 네 번째 단계는 짧은 문장을 가르치는 강의로 구성하려 한다. 아띠코리안을 수출할 계획도 갖고 있다. ‘K-콘텐츠’가 유행하면서 한글 공부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더 스페이스 프랜즈 사무실의 벽에 김현옥 대표와 다문화 아이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조재호 기자
더 스페이스 프랜즈 사무실의 벽에 김현옥 대표와 다문화 아이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조재호 기자

해방촌에서 김 대표가 꿈꾸는 세상은 마음이 통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다문화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떳떳하게 살기를 그는 바란다. 출발은 언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말이 통해야 마음도 통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한국어 교육에 힘쓰는 이유다. 그의 꿈을 돕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후원할 수 있다. 

https://mrmweb.hsit.co.kr/v2/M/Member/SupportOnce.aspx?action=monce&server=nAWEfJO98KtcIxaSde/w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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