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교양특강] ‘OTT 시대 한국 영화의 기회와 도전’ 김영진 교수

"한국 영화의 가장 영화로운 순간이 2020년 오스카 시상식이었어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 등을 받았죠. 그런데 바로 그때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한국 영화 최정상의 순간에 위기가 시작됐죠. 집합 금지로 로케이션(촬영장소) 섭외도 안 되고, 해외 촬영도 불가능하고, 미개봉작이 쌓이고, 제작 투자는 축소됐고요."

김영진(59) 명지대 예술학부 교수는 지난달 20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 한국 영화의 기회와 도전’을 주제로 강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인문사회교양특강의 일환으로 강연한 그는 한국 영화계에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졌고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엔 침체가 길어지고 있다며, 제작비 수십억 원 규모의 중소영화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영화 주간지 <씨네21> 기자와 <필름2.0> 편집위원, 전주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등을 지냈으며 2021년부터 1년 동안 영화진흥위원장으로서 한국 영화의 발전 방안을 고민했다. 

한국 영화 발전사는 '아비 없는 자식들의 모험'

영화진흥위원장을 지낸 김영진 명지대 예술학부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인문사회교양특강에서 ‘OTT 시대 한국 영화의 기회와 도전’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아연 기자
영화진흥위원장을 지낸 김영진 명지대 예술학부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인문사회교양특강에서 ‘OTT 시대 한국 영화의 기회와 도전’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아연 기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2020년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상의 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을 휩쓸며 '세계인이 열광하는 한국 영화'의 위상을 각인했다. 김 교수는 봉준호, 박찬욱 등 국제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한국 감독들의 성장기를 '아비 없는 자식들의 모험'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할리우드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에서 존 포드 감독을 선망하고 영감을 얻는 모습을 보여준 것과 달리, 한국 영화감독들은 배울 만한 선배 감독의 작품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영화가 1960년대의 활황기를 지나 유신 체제가 본격화한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긴 불황기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가혹한 검열의 영향으로 국책 영화가 양산되고 영화인의 자율성이 박탈되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과거 한국 영화계에는 천재들이 있었지만, 걸작은 없었다"며 "한국 영화의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감독들이 '비디오 세대'라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이 영국 출신 미국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대표작 <현기증> <사이코>)의 열성적인 팬이었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한국 영화의 아카이브(자료보관) 기능이 부실했기 때문에 영화지망생들이 해외 영화를 비디오로 보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한 뒤 현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영화 역사에 관한 지식을 자신들의 작품에 적용한 첫 세대 감독으로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을 꼽았다. 이들의 특징은 '극적인 성공'이 '실패의 용인'에서 나온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 후에도 <살인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기에 봉준호 감독은 성공 가도에 들어설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 역시 <공동경비구역 JSA>의 성공 후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에 실패했지만, 다시 <올드보이>를 만들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영화계 진입장벽 높아져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학생들과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외부 청중 등 40여 명이 김영진 교수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학생들과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외부 청중 등 40여 명이 김영진 교수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그런데 이제 한국 영화는 진입장벽이 높아졌습니다. 여러분 세대의 젊은 감독들이 모험하면서 뛰어드는 시대가 열리기 힘들다는 것이죠. 봉준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를 찍을 수 있었던 시대를 다시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김 교수는 한국 영화 제작환경을 '1999 시스템'이라고 표현하며 이 시스템이 영화산업의 진흥을 이뤘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세대의 진입을 막는 장벽을 만들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1999년 한국영화진흥 5개년 계획이 발표된 후 약 1700억 원의 영화진흥기금이 조성됐고 이를 기반으로 수십 개의 투자조합이 생기면서 영화산업 규모가 커졌다. 제작진의 세대교체도 급속히 이뤄졌고 대기업 자본의 참여도 활발해졌다. 젊은 제작자와 감독들은 동시대 젊은 관객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읽고 반영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는 시스템은 고비용•고효율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선호하면서 '소수의 흥행작'과 '다수의 실패작'이 양분되는 현상을 낳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중저예산 영화(순제작비 74억 원 이하)의 부흥과 신인 감독 육성을 지원하는 정책을 제시했다. 중저예산 영화 투자 펀드를 확대하고 시설을 확충하는 등 제작부터 배급과 상영 단계까지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책에 의존하는 것이 철 지난 해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건 정책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인 감독의 실패를 용인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동시에 새로운 세대도 주도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세가 된 OTT, 정부에 ‘책임 있는 스피커’ 있어야 

강연에 이어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 김영진 교수가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강연에 이어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 김영진 교수가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김 교수는 코로나19 시대에 '극장을 대체할 수단'으로 OTT가 떠올랐으며 이미 대세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8~2022년 세계 영화‧영상산업 시장 비중’ 자료에 따르면 영화‧영상산업에서 OTT 시장 비중은 2018년 38.7%에서 2022년 61.2%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극장 시장의 비중은 44.3%에서 31.9%로 줄었다. 김 교수는 홀드백(hold back), 즉 영화가 극장 개봉한 후 OTT 등에 공개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아지거나 '동시 공개'로 가고 있는 현상도 거론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OTT와 극장이 대립 관계에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TV가 인기를 얻은 이후에도 라디오가 존재해 온 것처럼, 극장 입지가 좁아지고 있지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OTT는 극장의 대체 수단이 아닌, 보완 수단으로서 협력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OTT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진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영화계에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OTT 정책을 정비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OTT 정책을 총괄할 사람이나 기구가 필요한데 현재로선 없다"며 영화산업계를 위해 글로벌 OTT 기업에 대응하고 협상할 수 있는 스피커(대변자)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이다희 씨 등 수강생들이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지수현 기자
질의응답 시간에 이다희 씨 등 수강생들이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지수현 기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 이다희(27) 씨는 "이제는 OTT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여전히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김 교수는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것은 이미 일상"이라면서도 "블록버스터 영화나 예술영화처럼 집중이 필요한 장르는 극장의 대형 스크린이 더 적합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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