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여성장애인이 운영하는 네일케어 전문매장

경부선 기차역 영등포역 3층에 작은 네일샵이 있다. 간판에 ‘섬섬옥수’라 적혀있다. 가늘게 곧아 아름다운 손을 뜻하는 그 이름 옆에 ‘공공부문 일자리창출 협력매장’이라 쓰인 원형 돌출 간판이 하나 더 걸려 있다. 매장 안은 여느 곳과 다르지 않다. 5평 남짓한 공간을 유리벽이 감싸고 있다. 노란색 벽면에는 아기자기한 그림과 인테리어 소품이 걸려 있다.

잠시 귀 기울이고 나서야, 일반 네일샵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에는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다른 매장의 문을 열면, 잔잔한 배경음악이 가장 먼저 들린다. 섬섬옥수 영등포역점에선 음악 대신 미소가 손님을 맞는다. 직원 세 명이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를 안내한다. 그들은 장애인이다.

서울 영등포역 3층에 섬섬옥수가 있다. 가게 이름을 적은 간판 옆에 ‘공공부문 일자리창출 협력매장’이라고 적힌 원형 돌출 간판이 있다. 김동연PD
서울 영등포역 3층에 섬섬옥수가 있다. 가게 이름을 적은 간판 옆에 ‘공공부문 일자리창출 협력매장’이라고 적힌 원형 돌출 간판이 있다. 김동연PD

여성청각장애인 맞춤 직무, 네일케어

섬섬옥수 영등포역점에서 근무하는 황록산(30) 네일리스트는 청각장애인이다. 작고 고운 것을 더 아름답게 다듬는 손재주가 그에게 있다. 황 씨는 9년여 동안 귀금속 공예 일을 했다. 6개월 동안 꽃집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런 일을 그만두고 네일샵에서 일하는 이유가 있다. 혼자 보석이나 꽃을 매만지는 것보다, 사람을 만나고 눈으로 인사 나누고 그 손을 들여다보는 것을 그는 더 좋아한다. 살아 숨 쉬어 따뜻한 손을 매만지는 일이 “지루하지 않고 적성에 잘 맞고 재미있다”고 그는 메모지에 적어 기자에게 보여줬다.

청각장애인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가 많은 것은 아니다. 다른 유형의 장애인에 비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청각장애인들은 주로 단순노무직으로 일했다. 타인과 소통이 필수적이지 않은, 단순 반복 작업만 맡았던 것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이들을 위한 새로운 직무를 탐색했다. 청력을 상실한 대신 다른 감각이 발달한 청각장애인이 시각을 활용한 일에 뛰어나고, 당사자들도 미술 또는 시각 분야 취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착안한 공단은 2012년 여성 청각장애인을 위한 직무로 ‘네일리스트 훈련 과정’을 개설했다.

섬섬옥수 영등포역점 내부 벽면. 이 지점을 운영하는 KB증권의 대표색상인 노란색으로 꾸며져 있다. 김동연PD
섬섬옥수 영등포역점 내부 벽면. 이 지점을 운영하는 KB증권의 대표색상인 노란색으로 꾸며져 있다. 김동연PD

‘섬섬옥수’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네일리스트 훈련과정을 마친 여성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기획한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2019년 부산역, 2020년 익산역에서 지자체의 후원으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민간기업과 협력해 전국적으로 매장을 확장하는 중이다. 김천구미역은 한국전력기술에서, 대전역은 한국서부발전에서, 안양역과 용산역은 SK쉴더스에서, 울산역은 라한호텔에서, 그리고 영등포역은 KB증권에서 채용과 매장 운영을 담당한다. 고용 형태는 1년 계약직이며 담당 기업은 5년 단위로 사업을 계약한다. 영등포역점 매장은 2022년 12월 문을 열었다.

황록산 씨는 서울 구로 장애인고용훈련센터에서 네일리스트 직무 교육을 받았다. 공고를 보고 영등포역 매장에 지원해 면접을 본 뒤 작년 12월 개소식에 맞춰 첫 출근을 했다. 다른 직원 최수연(24) 씨도 청각장애인이다. 어느 대기업의 사내 네일샵에서 근무했던 최 씨는 올해 3월부터 출근했다. 또 다른 직원 이수진(45) 씨는 신장 기능이 약한 장애인이면서 매장에서 유일한 청인이다. 간호조무사로 20년 넘게 근무했지만, 장애를 얻은 뒤로는 구직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연락과 제안으로 네일리스트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손님을 맞는다. 그 서비스는 무료지만, 조건과 절차가 있다. 카카오톡 플러스채널에서 ‘섬섬옥수 영등포역점’ 채널을 누르고 메시지를 보내어 이용 날짜와 시간을 예약한다. 예약 손님이 없다면 당일 현장에서 바로 이용할 수도 있다. 다만, 이용하는 날에 출발지 또는 도착지로 영등포역이 표시된 기차표를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매장 직원에게 당일 승차권과 카톡 예약한 내역을 보여주면 시술 상담이 시작된다. 청인인 이수진 씨가 상담을 돕기도 하지만, 청각장애인인 황록산 씨와 최수연 씨도 손님과 대화한다. 그 대화를 돕는 스마트폰 앱이 있다. 비장애인이 말하는 목소리를 감지해 문자로 변환하는 앱이다. 시술 종류와 세부 내용을 메모지에 표시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식이건 아름다운 손을 다듬기 위해 청각장애인과 소통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다.

섬섬옥수 영등포역점은 지난해 12월 21일 문을 열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섬섬옥수 영등포역점은 지난해 12월 21일 문을 열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네일리스트의 세계에는 다양한 소통방식 존재해

이윽고 청각장애인의 섬세한 작업이 시작된다. 손님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네일리스트와 마주 앉는다.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으면 네일리스트가 손 전체를 스프레이로 소독해준다. 뒤이어 손톱의 길이와 모양을 다듬으며 표면에 광을 낸다. 다음에는 손톱 거스러미를 제거한다. 영양제를 바르거나 광택을 내는 작업이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네일리스트가 손님의 손 전체를 마사지 해준다. 작업자가 실수를 하거나, 손님이 손을 거칠게 움직이면 간혹 피가 맺히기도 한다. 그만큼 섬세함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황록산 씨, 최수연 씨, 이수진 씨는 매우 능숙하고 꼼꼼하게 잘 치러낸다. 시술은 40여 분 만에 끝난다.

그 일을 섬섬옥수 영등포역점의 세 사람 모두 좋아한다. 그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은 ‘소통’이다. 사람들이 칭찬하거나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순간을 그들은 아주 좋아한다. 이수진 씨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말이 있다. “기특하다.” 중년 여성 손님들 가운데 그렇게 말한 경우가 많다.

섬섬옥수 영등포역점의 황록산 씨가 손님의 손톱 주변 거스러미를 제거하고 있다. 김동연PD
섬섬옥수 영등포역점의 황록산 씨가 손님의 손톱 주변 거스러미를 제거하고 있다. 김동연PD

낯설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다. 가끔 남자 손님들도 매장을 찾는다. “큐티클(손톱 거스러미)을 깔끔하게 제거해달라”고 요구한 할아버지 손님도 있었다. 기차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끝내달라고 재촉하는 일이 가끔 있지만, 예의 없이 막 대하는 ‘진상 손님’은 아직 없었다. 오히려 ‘착한 손님’이 대부분이다. 무료로 이런 서비스를 받게 되어 미안하다는 것이다.

섬섬옥수 영등포역점에서 일하는 세 사람은 하루 4시간씩 번갈아 일한다. 근무 시간이 짧기 때문에 일반적인 네일샵보다는 월급이 적다. 하지만 대기업 소속 계약직원으로 채용됐으니 고용 안정성은 훨씬 높다. 조향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협업하여 중증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며, 앞으로도 공단은 대기업이 장애인 채용을 더욱 늘려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섬섬옥수 영등포역점 매장 곳곳에는 손님을 위한 이용 안내문이 있다. 섬섬옥수 영등포역점 제공
섬섬옥수 영등포역점 매장 곳곳에는 손님을 위한 이용 안내문이 있다. 섬섬옥수 영등포역점 제공

더 많은 황록산 씨, 최수연 씨, 이수진 씨가 비장애인과 어울려 일하려면, 섬섬옥수를 찾는 손님이 더 늘어야 한다. 최수연 씨는 글로 적어 기자에게 보여줬다. “무료라고 미안해하지 마시고, 더 많이 찾아와주면 좋겠어요.” 더 많은 손님의 손을 다듬으면서 더 유능하고 전문적인 네일리스트가 되는 게 그의 소망이다.

황록산 씨가 적은 글은 이랬다. “섬섬옥수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소통 창구예요.” 사람이 소통하는 방법은 다양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섬섬옥수를 찾아와 교류하고 교감하게 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그들의 귀가 되어 섬섬옥수 영등포역점을 가꾸는 이수진 씨가 말했다. “여기는 정말 빛나는 직장이죠!” 둔탁하고 거친 손으로 들어왔다가 반짝이고 고운 손으로 나가는 이곳 섬섬옥수에서 네일리스트 세 명의 눈이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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