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현장] 70년 역사 뒤로하고 사라지는 중

제천에는 시장이 아닌 시장이 있다. 제천시 서부동에 있는 서부시장이다. 서부시장은 6.25전쟁 피란민이 터를 잡아 만든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1954년 당시 제천읍 의회가 200만 환을 들여 1864평 대지에 14동의 목조건물을 지었다. 1964년엔 공설시장으로 정식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1987년 80개였던 점포 수가 2000년에는 공설시장이 되기 위한 기준인 26개에 미치지 못해 공설시장이라는 명칭을 잃었다. 시장이 아닌 시장이 된 것이다. 지금은 길가에 있는 11개 점포와 시장 골목에 있는 소머리국밥집이 전부다. 11개 점포 가운데에서도 이젠 영업하지 않는 곳들이 절반이다.

시장이 있던 자리 지어지는 임대주택

지난해 11월 19일 서부시장의 3분의 1 면적인 서부동 431번지 일대에 철거용 차단벽이 설치됐다. 25일부터는 차단벽 안에서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손칼국수집과 순댓집, 가정집들이 있던 자리다. 차단벽 사이 출입구로는 공사 차량이 오갔다. 서부시장에 남은 주민들은 골목에서 빨간 고무통을 가져다 놓고 김장을 했다. 주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수다를 떨며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갔다. 한쪽에선 철거 작업으로 건물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제천시 서부동 431번지 주변 골목길을 따라 지난해 11월 철거 작업을 위한 차단벽이 설치됐다. 차단벽 옆으로는 낡은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윤준호 기자
제천시 서부동 431번지 주변 골목길을 따라 지난해 11월 철거 작업을 위한 차단벽이 설치됐다. 차단벽 옆으로는 낡은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윤준호 기자

제천시는 지난 2020년 서부동 일대를 대상지로 하는 도시재생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의 목표는 쇠퇴한 전통 상권 배후지인 서부동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서부시장의 3분의 1 면적인 서부동 431번지도 사업 대상지에 포함됐다. 이 지역에 있던 점포와 가정집이 철거되고 임대주택과 공원, 주차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건설되는 임대주택은 40세대 규모다. 김재연 서부동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총괄 코디네이터는 “노인과 청년을 비롯한 취약 계층이 우선 입주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 일부는 이미 지붕이 허물어질 정도로 낡았다. 윤준호 기자
주택 일부는 이미 지붕이 허물어질 정도로 낡았다. 윤준호 기자

오래전 사라진 기대

제일쌀상회 사장 윤광희 씨(82)는 1974년부터 서부시장 모서리에서 쌀과 식료품을 팔았다. 그는 도시재생사업으로 서부시장이 되살아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사람들은 이런 재래시장보다는 대형마트를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과거보다 쌀 소비량이 줄어든 것 역시 쌀가게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였다. 윤 씨가 가게를 계속 여는 이유도 희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이전부터 해오던 것이고 가게를 비워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1970년대 전성기에 비하면 20분의 1 수준을 번다고 했다.

윤광희 씨는 1974년 평당 1000만 원을 주고 구멍가게를 인수해 쌀가게를 차렸다. 손님이 찾지 않는 가게를 윤 씨는 부인과 함께 지키고 있다. 윤준호 기자
윤광희 씨는 1974년 평당 1000만 원을 주고 구멍가게를 인수해 쌀가게를 차렸다. 손님이 찾지 않는 가게를 윤 씨는 부인과 함께 지키고 있다. 윤준호 기자

1981년에 문을 연 일신슈퍼에는 이제 물건이 하나도 없다. 간판은 있지만 장사는 하지 않는 것이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시장을 찾는 사람이 줄어드니 물건을 줄였다. 물건이 줄어드니 사람들은 대형마트를 찾았다. 물건을 더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일신슈퍼 주인은 “시장에 라면 하나 사러 올 수는 없지 않느냐”며 “사람이 안 오니까 물건을 들일 수가 없었고 그렇게 장사를 접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슈퍼를 열었을 때만 해도 서부시장에는 직접 키운 농산물을 짊어지고 온 난전 상인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장사를 접은 슈퍼에서 살고 있다.

광산과 함께 쇠락한 시장

1968년 제천역 앞에서 쌀가게를 하던 윤 씨는 1974년 지금의 자리로 가게를 이전했다. 당시 서부시장은 전성기였다. 소매상들이 쌀을 비롯한 식료품과 의복 등을 주변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팔았다. 1976년 제천시에는 125개의 광산이 있었다. ‘장자제천광업’은 석회석을, ‘쌍용광업’은 규석을, ‘일신석재’는 화강암을 캤다. 1980년에는 광산 전문 인력 양성을 목표로 제천시 고명동에 지금 제천산업고등학교의 전신인 한국광산공업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제천 주변에 정선과 태백, 영월과 단양이라는 대형 탄광 밀집 도시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산 자원이 풍부해 큰 공장도 들어섰다. 1966년 아시아시멘트공업 공장이 제천에 들어섰다. 근처 단양에도 한일시멘트공업 공장이 건설됐다. 1970년대 제천의 인구가 많이 늘었고 충북 도내 도시 지역인 청주나 충주의 인구증가율을 추월하기도 했다. 1966년 15만 6000여 명이었던 제천의 인구가 1975년 17만여 명으로 늘었다. 2022년 인구인 131,216명보다 약 30% 많았다. 제천은 중소 상업 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곧바로 침체의 시기가 닥쳤다. 윤 씨는 1980년대부터 서부시장이 침체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광산업과 시멘트 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든 시기다. 아시아시멘트 제천공장은 1980년대 들어 수출 부진으로 매년 생산량이 감소했다. 1976년 125개던 광산 수가 1982년 57개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인구도 줄었다. 1980년 제천읍이 제천시로 승격되면서 분리됐다가 1995년 제천시와 통합된 당시 제원군에는 특히 광산이 많았는데,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인구수가 연평균 7.3%씩 감소했다. 7만 6000여 명이었던 제원군의 인구가 1987년에는 4만 5000여 명에 불과했다. 7년 만에 인구가 약 40% 감소한 것이다.

좌절된 시장 현대화 약속

서부시장 안 공터에는 ‘서부시장 현대화추진위원회’라는 현판이 붙은 녹슨 컨테이너가 있다. 1980년대 들어 쇠락하기 시작한 서부시장의 현대화 시도가 있었다. 윤광희 씨는 1985년 취임한 조남성 당시 제천시장이 상인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서부시장 현대화를 공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부시장은 현대화되지 못했다.

대신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세를 유지하고 있던 중앙시장이 1989년 현대화됐다. 서부시장과 중앙시장의 점포 수는 차이가 컸다. 1987년 당시 서부시장의 점포 수는 80개였지만 중앙시장의 점포 수는 340개에 달했다. 서부시장은 2000년부터는 공설시장 기준 점포 수를 채우지 못해 시장 지원 사업 대상이 될 수도 없었다. 녹슨 컨테이너는 문이 잠긴 채 방치돼 있다.

서부시장 안 공터에 ‘서부시장 현대화추진위원회’가 사용한 컨테이너가 남겨져 있다. 윤준호 기자
서부시장 안 공터에 ‘서부시장 현대화추진위원회’가 사용한 컨테이너가 남겨져 있다. 윤준호 기자

윤광희 씨는 그 뒤로 건설업자들이 서부시장을 재개발하겠다고 몇 번 찾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복잡한 토지 소유 형태 때문에 협상이 쉽지 않았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서부시장의 한 상인은 “시장에서 칸칸이 자리 잡고 장사하던 사람들이 시장 땅을 한 칸씩 샀다”며 “칸마다 땅값을 두고 의견이 달라 토지 소유자들과 재개발업자 사이 협상이 잘 안 됐다”고 말했다. 시장 땅 하나를 여러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 보니 재개발이 진전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재생도 중요하지만 역사 기억하는 도시 돼야

윤광희 씨는 서부시장에 쌀가게가 7개나 있었지만 장사가 잘돼 다섯 명의 자녀를 키우고 연립주택도 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고속도로가 없을 때는 서부시장이 원주에 있는 시장보다 사정이 좋았다고 말했다. 시장이 쇠락해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윤 씨는 “낙후된 서부시장 일대가 정리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또 “설령 상가를 짓는다고 해도 젊은 세대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서부시장이 이전의 활기를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단양군 도시재생·농촌활성화지원센터장을 역임한 권태호 세명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부시장이 저소득 계층과 독거노인이 값싸게 거주하는 빈민촌이 돼버렸지만, 흔적도 없이 밀어버리는 식의 재개발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도시 개발은 공학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되고 사회·심리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며 “과거가 없는 두바이 같은 도시가 미래적인 도시일 순 있지만 인간적인 도시는 아니”라고 했다. 

권 교수는 “서부시장은 지방 도시 쇠락의 뼈아픈 단면”이라고 말했다. 제천은 포항과 울산, 창원처럼 큰 산업 기반 없이 교통 요지의 이점을 살린 상업 도시로 성장했다. 그는 “광산 도시의 배후 도시였던 제천이 광산업과 함께 쇠락한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서부시장”이라고 했다. 또한 “지방 상업 도시 제천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서부시장을 인식한다면 재개발하더라도 시장의 흔적을 남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부시장을 다시 찾았을 때 일신슈퍼의 문은 잠겨 있었다. 주인은 부친과 모친이 동시에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러 갔다고 쌀가게를 하는 윤광희 씨가 알려줬다. 윤 씨는 지금 남아 있는 점포 주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나면 서부시장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천시는 지금 철거를 진행 중인 지역 외에 추가로 서부시장 일대를 철거할 계획이 지금으로서는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시장이 살아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70년 역사를 간직한 시장은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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