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태국 치앙마이대학의 ‘지속가능 캠퍼스’ 프로젝트

미얀마와 라오스 사이, 히말라야로 이어지는 해발 316미터(m) 고원에 태국 치앙마이(Chiang Mai) 주 치앙마이 시가 있다. 태국 북부에 위치한 치앙마이는 이 나라에서 방콕 다음으로 큰 도시다. 여의도 약 14배 크기(40.2㎢)에 30만 명가량의 시민이 산다. 오랫동안 수도였던 역사와 천혜의 경관 덕에 매년 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치앙마이의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7km가량 떨어진 곳에 국립대학인 치앙마이대학교가 있다.

치앙마이대는 1964년 개교한 태국 최초의 지방 대학이다. 이 대학의 캠퍼스는 4곳에 있다. 학생들이 주로 수업을 듣는 1캠퍼스, 대형 대학 병원이 위치한 3캠퍼스, 연구동과 기숙사로 구성된 4캠퍼스는 서로 인접해 있다. 그런데 2캠퍼스 ‘메히아 캠퍼스’는 차로 10분 거리다.

혼자 뚝 떨어진 메히아 캠퍼스의 주 용도는 강의와 연구가 아닌 쓰레기 처리다. 3600여 평 부지의 핵심 시설은 쓰레기를 분류해 집어넣는 커다란 발효조다. 너비 2미터, 길이 3미터쯤 되는 구덩이 위에 검은 비닐을 씌워 놓은 모양새다. 검은 비닐은 쓰레기에서 발생한 가스로 점점 부푼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에너지연구소(ERDI∙Energy Research and Development Institute)다. 4개 캠퍼스는 물론 치앙마이 도심에서 수집한 쓰레기를 매일 새벽마다 이곳에서 처리한다.

지난 12월 22일, 치앙마이대 에너지연구소(ERDI) 캠퍼스에 있는 발효조(오른쪽)가 쓰레기에서 배출된 바이오가스로 부풀어 있다. 사진 왼쪽에 있는 것은 쓰레기 분류소와 천연 가스 발효 장치다. 이날도 새벽부터 인부들이 캠퍼스에서 나온 쓰레기를 발효조에 채워넣었다. 김창용 기자
지난 12월 22일, 치앙마이대 에너지연구소(ERDI) 캠퍼스에 있는 발효조(오른쪽)가 쓰레기에서 배출된 바이오가스로 부풀어 있다. 사진 왼쪽에 있는 것은 쓰레기 분류소와 천연가스 발효 장치다. 이날도 새벽부터 인부들이 캠퍼스에서 나온 쓰레기를 발효조에 채워넣었다. 김창용 기자

이 발효조를 비롯한 바이오가스 기술은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앙마이대가 내놓은 해법이다. 최근 치앙마이시의 공기가 나빠졌다. 주변 산악 지역에서 마른 바나나 잎 등이 쌓여 발생한 불에 더해, 농민들이 화전으로 밭을 일구면서 미세먼지가 발생했다.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도심의 교통편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도 퍼졌다. 나쁜 공기는 치앙마이의  주요 수입원인 관광산업에 악영향을 끼쳤다. 공학 연구자인 프룩 아가랑시(Pruk Aggarangsi∙44) 치앙마이대 에너지 연구소장이 대안을 내놨다. 농업과 관광업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태울 필요 없이 친환경적으로 재활용하는 길을 연 것이다.

하루 30여 톤의 폐기물이 매일 새벽 2시마다 수거업체 트럭에 실려 에너지 연구소로 온다. 학내에서 발생한 일반쓰레기 15~20톤과 시와 학교에서 배출한 음식물 쓰레기 2~5톤, 캠퍼스 안 농장에서 나온 동식물 부산물 등이다.

폐기물 분류 작업은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작업자 1명이 쌓여 있는 쓰레기를 작은 중장비로 옮기면, 30m 남짓한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며 쓰레기를 펼쳐 놓는다. 이윽고 6~9명의 작업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붙어 서서 쓰레기를 분류한다.

대학의 쓰레기를 대학의 자원으로

치앙마이대학교 ERDI 캠퍼스 안 쓰레기 처리장에서 인부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치앙마이대학교 ERDI 캠퍼스 안 쓰레기 처리장에서 인부들이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이 작업은 폐기물 활용에 필수다. 태국에는 분리수거법이 없다. 학내에선 분리수거를 권장하고 있지만, 도심에서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는 마구 섞인 채로 온다. 일일이 쓰레기를 분류하여 재활용 가능한 것은 재가공한다. 일반 쓰레기는 압축해 화력발전원으로 활용한다. 음식물과 나뭇잎 같은 유기 물질은 발효조에 넣는다. 박테리아가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발생하는 가스에서 암모니아 등을 거르고 메탄을 남기면 천연가스로 활용할 수 있다. 4곳에 흩어진 치앙마이대 캠퍼스를 오가는 셔틀버스 4대가 이 가스를 연료 삼아 달린다. 교직원과 학생, 그리고 방문자를 위한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비용을 쓰레기 재활용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쓰레기 처리는 4년 전부터 시작된 ‘지속가능한 캠퍼스’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다. 치앙마이대는 당시 1년에 70만 톤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었다. 아가랑시 교수는 2019년 연구팀을 꾸려 폐기물을 활용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를 대학에 제안했다.

이후 학생 2만 6천여 명, 교직원 1만여 명, 병원 방문자 1만여 명이 매일 배출한 방대한 쓰레기를 에너지연구소가 책임져왔다. “책임진다는 건, 쓰레기 처리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다른 곳으로 떠넘기지 않다는 뜻”이라고 아가랑시 교수는 설명했다. “폐기물을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아닌 자원으로 보는” 이 프로젝트는 캠퍼스가 배출하는 탄소를 매년 5천 톤씩 감축해왔다. 이제 올해부터 ERDI 캠퍼스는 ‘탄소 중립’을 실현할 예정이다.

대기오염 키우는 농작물 소각, 타협도 어려워

2020년 12월 30일, 추수를 마친 치앙마이주 멧젬 지역의 광활한 옥수수밭에 마른 옥수숫대가 남아 있다. 멧젬 지역에서만 연간 120만 톤의 옥수숫대 폐기물이 나온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태국∙플라이 아오 통수왓 제공
2020년 12월 30일, 추수를 마친 치앙마이주 멧젬 지역의 광활한 옥수수밭에 마른 옥수숫대가 남아 있다. 멧젬 지역에서만 연간 120만 톤의 옥수숫대 폐기물이 나온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태국∙플라이 아오 통수왓 제공

‘지속가능한 캠퍼스 프로젝트’의 비전은 대학을 넘어 지역 전체를 향하고 있다. 특히 지역 대기 오염 문제의 해결에 이 모델을 적용하려는 게 아가랑시 교수의 구상이다.

치앙마이 외곽의 산간 지역에는 농민들이 산다. 추수를 마친 뒤 옥수숫대와 잎을 불태워 새 씨앗을 뿌릴 땅을 개간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런데 기후 변화로 인해 이들이 놓은 불이 대형 화재로 번지는 일이 잦아졌다. 세계자원연구소(WRI) 자료를 보면, 대표적인 옥수수 농업 지역인 치앙마이주 멧젬(Mae Chaem)에서는 지난해 22만 제곱미터(㎡)만큼의 녹지가 화재로 소실됐다. 화재로 인한 미세먼지는 지역 전체에 번졌고, 관광업에 종사하는 도심 시민들의 불만도 높아졌다. 지역 간에 갈등과 긴장이 생겨난 것이다.

도시민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에겐 대안이 없다. 비탈진 산간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수확을 끝낸 옥수수대를 없애야 하는데, 그걸 일일이 뽑아낼 재력이 없다. 재배 작물을 바꾸려 해도 돈이 든다. 농민들이 불을 지르지 못하게 막으려는 태국 정부의 감시∙단속이 강화됐지만, 농부들은 처벌받을 위험을 감수하고 여전히 밭에 불을 놓고 있다.

치앙마이 지역의 대기질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숨 의회’(Breath council)의 아오 통수왓(Plai Auw Thongsuwat∙65) 부대표는 “대기오염의 원인에는 산간 화재와 농업 화재가 섞여 있다. 그 대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월 23일, 치앙마이시 외곽 왓캣(Wat Ket)에서 만난 플라이 아오 통수왓 ‘숨 의회’ 부대표가 “우리 모두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뜻의 태국어가 적힌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단비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민 기자
지난 12월 23일, 치앙마이시 외곽 왓캣(Wat Ket)에서 만난 플라이 아오 통수왓 ‘숨 의회’ 부대표가 “우리 모두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뜻의 태국어가 적힌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단비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민 기자

관광업과 농업이 상생할 대안을 찾다

지역 갈등이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2021년 초, 대학과 시민단체가 나서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농민들이 잔여물을 태울 수 있는 시기나 정도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협의체 ‘5분(Five minutes)’이 만들어졌다. 협의체에는 치앙마이대의 연구자, 숨 의회 소속 활동가, 농림부와 산림부 공무원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농민들이 폐기물을 제때 처리하되 화재로 번지지 않도록 돕는다. 당장 유기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농민의 입장을 고려한 치앙마이대학의 적극적인 개입과 객관적인 연구가 합의를 도왔다.

그러나 장기적인 대안도 필요하다. 농민들이 옥수수 잔여물을 태우는 영역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멧젬 지역에서만 2005년 2만 톤이던 옥수수 생산량이 2020년 9만 톤 가까이 늘었다. 관광업계에서 호소하는 피해도 함께 커졌다. 관광객 사이에서 11월부터 5월까지,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공기가 나쁘니 치앙마이를 찾지 말라는 조언이 이미 퍼져 있다. 1년의 절반 동안 지역 관광업이 타격을 받는 셈이다. 숨 의회 팀원이자 농업 전문가인 프리사나 포롬마(Prissana Phromma∙50)는 “관광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농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항의하진 않지만, 미세먼지에 영향을 받고 손해를 입는 입장이라 대기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ERDI 캠퍼스 지도를 보면, 멜론∙수박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쌀∙토마토∙커피 등을 키우는 농지가 보인다. 6번 건물 아래의 땅은 연구 목적으로 소, 돼지, 염소 등 동물을 키우는 곳이다. 치앙마이대 누리집 갈무리
ERDI 캠퍼스 지도를 보면, 멜론∙수박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쌀∙토마토∙커피 등을 키우는 농지가 보인다. 6번 건물 아래의 땅은 연구 목적으로 소, 돼지, 염소 등 동물을 키우는 곳이다. 치앙마이대 누리집 갈무리

그런 점에서 치앙마이대가 도입한 쓰레기 재활용 방식은 관광업과 농업이 상생할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산간 지역에서 발생하는 유기성 폐기물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하여 화재 걱정 없이 농사를 짓게 하고, 그 부산물을 도심의 대중교통에 사용할 에너지로 전환하는 동시에 대기오염까지 막는 경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 등 바이오 폐기물을 활용해 천연가스를 만들거나 발전하는 시설은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이렇게 지역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모델로 적용한 곳은 없다.

대학 재정 문제와 시민 복지 증진을 함께 푸는 열쇠

치앙마이대학의 여러 캠퍼스를 잇는 학내 미니 버스가 출발하고 있다. 이 버스는 캠퍼스에서 나온 쓰레기를 발효해 만든 천연가스를 연료로 움직인다. 김창용 기자
치앙마이대학의 여러 캠퍼스를 잇는 학내 미니 버스가 출발하고 있다. 이 버스는 캠퍼스에서 나온 쓰레기를 발효해 만든 천연가스를 연료로 움직인다. 김창용 기자

치앙마이대학의 프로젝트는 대기오염 문제의 해결을 넘어 지역 전체의 ‘탄소 중립’ 구현까지 이어진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2019년 이후, 치앙마이대학은 전기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4곳 캠퍼스의 350개 건물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고, ERDI 캠퍼스의 저수지에는 수상 태양광 패널이 떠 있다. 또한, 쓰레기 또는 메탄가스를 원료로 삼은 화력발전을 통해 전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전기는 대학 전체 전력 사용량의 22%를 차지한다.

그 비중을 높여 대학 재정과 시민 복지에도 기여하겠다는 게 아가랑시 교수의 구상이다. 태국 정부가 생산한 전기 가격은 1킬로와트시(kw/h)에 5밧(한국돈 185원)인 반면, 치앙마이대학이 직접 생산한 전기는 1킬로와트시에 4밧(148원)으로 훨씬 저렴하다. 지금은 자체 생산한 전기를 대학 내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생산량을 늘리면 청정 전기를 시민들에게 싼값에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치앙마이 대학은 치앙마이시가 당면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변화가 왜 필요한지 설득하고, 변화의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서 구현하고 적용한 여러 대안을 토대로 대학이 지역의 정치인과 시민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다 보면, 농업과 관광업이 서로 상생하면서 고질적인 대기 오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가랑시 교수는 기대하고 있다. 태국어로 치앙마이는 ‘새로운 도시’라는 뜻이다.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일을, 치앙마이대학이 선도하고 있다.

 

*이 기사는 제천시와 세명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떠난 2022 자기설계 해외배낭연수의 결과물로 작성됐습니다.
*이 기사는 제천시와 세명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떠난 2022 자기설계 해외배낭연수의 결과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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