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막걸리 소멸 보고서] ② 그래도 살아남고 싶다

전편:
[풀뿌리 막걸리 소멸 보고서] 프롤로그 막걸리 양조장이 사라진다

[풀뿌리 막걸리 소멸 보고서] ① 사라지는 지역 양조장

지난 1편에서는 2000년대부터 쇠락하기 시작한 막걸리 양조장의 현재를 살펴봤다. 1975년 전국 읍과 면마다 하나씩 있고도 남을 만큼 많았던 ‘풀뿌리 막걸리 양조장’은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85% 이상 사라졌다. 지역 소멸과 수도권 대형 막걸리 공세가 맞물리면서 남은 15% 양조장 주인들은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전국 단위로 납품하는 몇 군데를 빼면 사정은 엇비슷하다. 막걸리 시장 전체가 기울면서 영업이 어렵다. 취재를 거부한 한 양조장에선 “내일 폐업할지, 다음 주에 폐업할지 모른다”고 했다. 이들은 먼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풍천양조장 사장 김명자(75) 씨는 이날 양조장을 찾아온 동네 사람들에게 1만 2000원을 받고 막걸리 10병을 팔았다. 김 씨는 인터뷰가 끝나고 깨를 솎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현경아 기자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풍천양조장 사장 김명자(75) 씨는 이날 양조장을 찾아온 동네 사람들에게 1만 2000원을 받고 막걸리 10병을 팔았다. 김 씨는 인터뷰가 끝나고 깨를 솎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현경아 기자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서 남편 최창수(75) 씨와 함께 풍천양조장을 운영하는 김명자(75) 씨도 “양조장은 우리 대에서 끝난다”고 했다. 양조장 매출이 한 달 15만 원 정도로 떨어지면서 김 씨 내외는 양조장 대신 깨 농사로 생계를 이었다.

그래도 최 씨는 새벽부터 술을 내리고, 김 씨는 깨밭에 일하러 가기 전 오전에 손님을 맞으러 양조장에 나온다. 고추밭에 약 치고 깨밭에 물 주다 찾아오는 동네 사람들이 마실 술이 5평 내외 조그만 냉장창고에 쌓였다. 누군가에겐 일할 때면 생각나는 술, 달큰한 맛의 풍천탁주는 사라질 수밖에 없을까.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 막힌 유통

지역 인구가 감소했어도 읍·면을 벗어나 판매할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에 취재한 풀뿌리 양조장 13곳 가운데 8곳은 유통업체를 끼지 않고 직접 막걸리를 배달하거나 유통했다. 유통이라고 해봐야, 양조장 사장이 직접 트럭에 막걸리를 실어 인근 식당이나 마트에 내다 파는 수준이었다.

이보다 유통망을 넓히려면 유통업체와 계약해 유통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계산이 맞지 않는다. 전북 정읍시 산외면에서 산외양조장을 운영하는 김영일(59) 씨는 얼마 전 만난 유통업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가 만드는 750ml 막걸리의 소매가는 1300원이다. 그 막걸리를 “한 통에 600원 주고 사가겠다”고 유통업자는 김 씨에게 말했다. 900원쯤 되는 생산 단가보다 적은 돈이다. 김 씨로선 유통업자에게 맡긴다고 수익을 보장받을 수가 없다.

그 사정을 충남 아산시 송악면 송악양조장 사장 윤주홍(69) 씨도 잘 알고 있다. 풀뿌리 막걸리 양조장 가운데 드물게도 그는 생산한 막걸리 대부분을 유통업체에 납품한다. 직접 사 가는 사람이 줄었지만, 나이 든 자신을 대신해 배달할 직원도, 그에게 줄 인건비도 없었다. 유통업체 납품은 궁여지책이었다. 그랬어도 판매량은 신통치 않다. “유통업자가 우리 막걸리만 파나. 장수 막걸리, 저기 막걸리 다 팔지.”

유통업체는 전국 유명한 막걸리를 한꺼번에 취급한다. 여기에 더해, 대기업들은 유통업체 말고도 따로 마케팅 요원을 둔다. 식당이나 주점에 다니면서 직접 영업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대기업처럼 유통하는 사람을 붙일 능력이 없다”고 윤 씨는 말했다.

전북 정읍 산외면 산외양조장의 사장 김영일(59) 씨가 누룩을 빚는 오동나무 틀 앞에서 제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 씨는 38세인 아들과 함께 양조장을 운영 중이다. 사진 현경아
전북 정읍 산외면 산외양조장의 사장 김영일(59) 씨가 누룩을 빚는 오동나무 틀 앞에서 제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 씨는 38세인 아들과 함께 양조장을 운영 중이다. 현경아 기자
충남 아산시 송악면 송악양조장 사장 윤주홍(70) 씨는 아침 7시부터 막걸리 내리는 작업을 한다. 윤 씨는 10년 전부터 송악양조장을 인수해 동업자와 운영하고 있다. 2014년부터 막걸리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조성우 기자
충남 아산시 송악면 송악양조장 사장 윤주홍(70) 씨는 아침 7시부터 막걸리 내리는 작업을 한다. 윤 씨는 10년 전부터 송악양조장을 인수해 동업자와 운영하고 있다. 2014년부터 막걸리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조성우 기자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가 직접 온라인으로 판매하면 어떨까. 농림수산식품부는 막걸리 주종 전체를 전통주로 편입하는 ‘전통주산업법’(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엔 정기국회에 제출하지 못하고 해를 넘겼지만,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막걸리 전체가 전통주로 편입되어 풀뿌리 막걸리도 온라인 통신 판매가 가능해진다.

현재 온라인 막걸리 판매망을 장악한 것은 이른바 ‘프리미엄 막걸리’다. 주로 30~40대의 젊은 층이 막걸리 제조법을 익혀 한 병에 5000원 이상의 높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데, 이런 막걸리는 도시 지역의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풀뿌리 막걸리를 빚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프리미엄 막걸리는 온라인 유통 시장의 대형 막걸리다. ‘장수 막걸리’, ‘지평 막걸리’ 등 막걸리 업계의 대기업이 오프라인 유통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온라인 유통으로 눈을 돌려도 프리미엄 막걸리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풀뿌리 막걸리는 프리미엄 막걸리와 경쟁할 능력이 부족하다. 온라인 유통을 위해선 디자인과 브랜딩 등 전문적인 마케팅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한 투자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시 신창양조장 사장 주영진(56) 씨의 사무실 책장 꼭대기에는 병 공장에서 받아온 병 샘플 대여섯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아이디어를 짜내는 중”이라고 주 씨는 말했다. 막걸리 포장 디자인을 바꿀 심산이었다. 전문 업체에 맡기면 잘 해내겠지만, 새로 디자인하여 병을 만들려면 적어도 5000만 원을 들여야 한다. 그 돈이 없는 주 씨는 어떻게든 혼자 해볼 요량이었다. “젊은 층은 예쁘고 새로운 걸 원하거든요.” 젊은이들이 원하는 새 막걸릿병을 그가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충남 아산시 신창면의 신창양조장 사장 주영진(56) 씨는 매형이 운영하던 양조장을 이어받은 지 20년째다. 양조장 단골은 8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단골 가운데 절반 가까운 이가 최근 10년 사이에 돌아가셨다고 주 씨는 말했다. 현경아 기자
충남 아산시 신창면의 신창양조장 사장 주영진(56) 씨는 매형이 운영하던 양조장을 이어받은 지 20년째다. 양조장 단골은 8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단골 가운데 절반 가까운 이가 최근 10년 사이에 돌아가셨다고 주 씨는 말했다. 현경아 기자

풀뿌리 막걸리의 진퇴양난

전국 13개 양조장을 방문해 각자의 상황을 상세히 취재했다. 이들 대부분은 한때 많은 직원을 고용했지만, 이제는 혼자 또는 가족의 도움으로 양조장을 겨우 운영하고 있다. 그래픽 박동주
전국 13개 양조장을 방문해 각자의 상황을 상세히 취재했다. 이들 대부분은 한때 많은 직원을 고용했지만, 이제는 혼자 또는 가족의 도움으로 양조장을 겨우 운영하고 있다. 그래픽 박동주

전북 정읍시 정우양조장 사장의 아들 최충남(35) 씨는 요즘 생각이 많다. 아버지가 40여 년 동안 운영해온 양조장을 이어받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아버지는 편찮으시다. 할머니, 고모와 함께 아들 최 씨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임시로 채우고 있다. 가업을 이어받을 것인지 결정할 시기가 왔다.

양조장을 이어받는다면, 최 씨는 좀 새롭게 해보고 싶다. 쇠락해가는 다른 양조장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 우선, 일손이 필요 없는 자동화 설비부터 들이고 싶다. 양조장 건물도 깨끗하게 새로 짓고 싶다. 그렇게 하면, 식품 안전성을 보증하는 해썹(HACCP)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동 설비를 갖춘 새 건물에서 해썹 인증을 받은 막걸리를 대량 생산한다면, 전국은 아니라도 경기도까지 막걸리를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 씨는 계산해 봤다. 건물을 짓고 설비를 사는 데 10억 원은 필요하다. 그 자금이 있다면 40년 된 막걸리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 그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 아들 최 씨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이다.

임원양조장 사장 박경태(54) 씨도 새 건물을 지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다만 그 결이 조금 다르다. 임원양조장은 강원도 삼척에 남은 마지막 양조장이다. 박 씨는 9년 전 아버지의 양조장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이 자리에서 48년 전부터 술을 빚었다. 그 비법을 전수하여 여전히 손으로 술을 빚는 아들 박 씨는 “오래된 건물에 고유한 곰팡이가 스며 있다”는 것을 안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면 같은 맛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충남 아산시 영인면에 한국 전쟁 이전부터 있었던 양조장을 이상조(65) 씨의 시아버지가 1980년 매입하면서 다원주가를 창업했다. 1984년 시집온 이 씨가 양조장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씨가 매입 당시부터 관리해온 고객 장부를 보여주고 있다. 조성우 기자
충남 아산시 영인면에 한국 전쟁 이전부터 있었던 양조장을 이상조(65) 씨의 시아버지가 1980년 매입하면서 다원주가를 창업했다. 1984년 시집온 이 씨가 양조장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씨가 매입 당시부터 관리해온 고객 장부를 보여주고 있다. 조성우 기자

물론 온도, 습도, 공정까지 자동으로 돌아가는 공장을 지으면 맛을 완전히 균일하게 내면서, 식약처의 높은 위생 기준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 생산에만 매달리는 대신 영업할 시간도 벌 수 있다. 다만 돈이 없다. 공장을 짓는 데는 최소 5억 원이 필요하다. 지금 건물에 기계를 들이고 새로 꾸민다 해도 1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영세한 양조장은 (자동화 자체가) 힘들다”고 박 씨는 말했다.

자금을 마련해도, 여전히 벽이 높다. 충남 아산시의 다원주가 대표 이상조(65) 씨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온갖 궁리를 다 하고 있다. 농협과 협약을 체결해 새로운 막걸리를 개발했다. 공격적으로 투자해 대형 공장도 세웠다. 그러나 설립 2년 만에 공장을 닫았다. 막걸리가 팔리지 않았다. 이 씨의 사업은 전성기 시절과 비교해 1/3까지 축소됐다.

대기업처럼 마케팅을 잘하지 못하면 경쟁할 방법이 없다고 이 씨는 생각한다. 막걸리 업계의 대기업으로 통하는 ‘서울 탁주’나 ‘지평 주조’는 디자인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두고 있다. 막걸리뿐만 아니라 공병과 뚜껑을 생산하는 공장도 있다. 어느새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게 된 막걸리 시장에서 이 씨의 궁리도 복잡해지고 있다.

사라질 일만 남았나

풀뿌리 막걸리에 당장 필요한 지원은 뭘까. 이름 밝히기를 꺼리며 익명을 요청한 한 양조장 주인은 “지역 내 판권이라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충남 아산시 신창면의 신창양조장 사장 주영진(56)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하다못해, 지역 마트에 풀뿌리 막걸리 전용 매대라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주 씨는 지역 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마트에 막걸리를 납품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지역 농협 담당자는 마트에 매대 자리가 없다며 거절했다. 그 매대에는 외지에서 생산된 막걸리가 가득 쌓여 있었다. “지역 농업인 단체인 농협까지 지역 막걸리를 배제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주 씨는 말했다.

풀뿌리 막걸리가 지역에서조차 활로를 잃어가는 동안, 막걸리 시장은 요동쳤다. 2001년 막걸리 판매 지역 제한이 사라진 이후, 수도권에 위치한 대규모 양조장들은 마케팅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판매 범위를 넓혔다. 특히 2010년에는 CJ 등 대기업이 대규모 막걸리 업체의 유통과 마케팅을 위탁받아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0년대 들어 활성화된 온라인 시장에서는 소량을 생산해 고가로 판매하는 프리미엄 막걸리가 득세했다.

취재팀이 만난 전문가들 대부분은 이런 환경에서 풀뿌리 막걸리의 소멸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봤다. 이대형 경기농업기술원 연구원은 “(풀뿌리 막걸리가) 막걸리 시장 전체를 끌고 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경일 우리술문화원 부원장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일정 부분은 정리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문가 가운데는 지역 농산물을 사용해 전통 방식으로 빚는 지역 특산주를 보존하는 것이 풀뿌리 막걸리 지원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일본식으로 정착된 양조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 풀뿌리 막걸리의 보존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2019년 현재, 막걸리 시장 절반가량을 상위 3개 업체인 서울탁주, 지평주조, 국순당이 점유하고 있다. 그래픽 윤준호
2019년 현재, 막걸리 시장 절반가량을 상위 3개 업체인 서울탁주, 지평주조, 국순당이 점유하고 있다. 그래픽 윤준호

풀뿌리 양조장 사장들도 그 미래를 크게 부정하진 않았다. 빠르면 10년, 길어도 20년이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읍·면의 양조장들이 모두 사라질 거라고 예측하는 이들이 많았다. 식약처 정보공개사이트 식품안전나라의 자료를 분석해 보면, 풀뿌리 양조장으로 파악된 230곳 가운데 생산 주종이 2개 이하인 곳은 188곳으로 81%를 차지했다. 예전부터 만들던 막걸리만 근근이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구조의 근본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 자기 막걸리를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풀뿌리 양조장도 있다. 전북 정읍시 옹동면의 옹동양조장 사장 백순일(78) 씨는 “아들이 엊그제 새 막걸리 제조 허가를 받았다. 아들이 이 양조장을 계속 이어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군가 길을 찾는다면

충남 아산시 둔포면의 양조장 사장이었던 최덕영(75) 씨는 아산시 조기축구회 회원이다. 인근 17개 읍면동 주민이 모여 체육대회도 자주 했다. 최 씨는 그때마다 막걸리 스무 말을 들고 와 사발로 나눠줬다. 이제 조기축구회 사람들은 최 씨의 술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한다. 마을 이장이 된 조기축구회 후배가 얼마 전 최 씨에게 말했다. “제가 꼭 (양조장) 만들어 드릴 테니까 (막걸리 들고 조기축구회에) 오기만 하세요.”

고마웠다. 그래도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양조장을 다시 하려면 최소 2억 원은 필요하다. 다시 시작해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품질엔 자신 있지만, 막걸리 시장에선 다른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 최 씨는 안다. 그 후배에게 하지 못한 말을 최 씨는 취재팀에게 들려줬다. “새로운 이들이 길을 찾겠다면, 나도 더 좋은 막걸리를 만들도록 일심으로 돕고 싶어.” 그런 사정을 모르는 둔포면 주민들은 요즘도 가끔 최 씨에게 전화를 건다. 그가 담던 풀뿌리 막걸리를 찾는 전화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 1400여 곳의 읍·면사무소 소재지 대부분에 막걸리 양조장이 있었다. 읍·면의 생산자가 만들어 읍·면의 소비자들이 마셨던 이 막걸리는 글자 그대로 ‘풀뿌리 막걸리’였다. 이른바 ‘프리미엄 막걸리’가 젊은 세대 또는 도시인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는 요즘, 정작 풀뿌리 막걸리는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막걸리 시장이 요동치는 동안, 지역의 풀뿌리 막걸리 양조장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운영 중인 곳은 어디인지, 이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알려주는 자료는 전혀 없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공식 조사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총 6개월에 걸쳐, 사라져가는 풀뿌리 막걸리의 실상을 직접 취재했다. 우선, 식품의약품안전처,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 농림축산식품부, 중소벤처기업부, 그리고 포털 주소·지도 검색 서비스의 자료를 확보하고 교차 분석하여, 읍·면 단위의 풀뿌리 막걸리 양조장 현황을 추산했다.

또한, 전국 102곳 풀뿌리 막걸리 양조장에 일일이 전화하여 현장 방문 및 인터뷰를 의뢰했다. 여러 차례 전화에도 응답하지 않는 곳, 사정이 어렵다며 취재를 거절한 곳이 많았으나, 설득 끝에 경북, 경남, 전북, 충남 지역에서 20년 이상 풀뿌리 막걸리를 만들어 온 양조장 13곳을 취재했다.

정부와 단체의 공식 사이트 및 문서 외에도 <조선주조사> <술문화 조사 보고서> <전통주조 백년사> 등 단행본, 논문, 보고서 등 1000쪽 이상의 문헌을 참고했다. 또한, 관련된 과거 기사, 1949년 입법 이후 62차례 개정된 주세법의 연혁 등을 조사했다. 한국막걸리협회장, 한국전통민속주협회장,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자 등 6명의 전문가를 전화와 서면으로 인터뷰하여 지역 양조장의 실태와 미래를 물었다. (편집자 주)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