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막걸리 소멸 보고서] ① 사라지는 지역 양조장

전편: [풀뿌리 막걸리 소멸 보고서] 프롤로그 – 양조장 사장의 소망

수도권 도시철도 1호선 끝자락에 위치한 충남 아산 시내에서 30분 정도 차를 달리면 둔포면이 나온다. 도로 주변은 온통 논이다. 둔포면 전체 41제곱킬로미터(㎢)의 절반 이상 지역에서 벼를 기른다. 논으로 둘러싸인 둔포면 구도심의 북쪽에 둔포면사무소가 있다. 양옆으로 보건지소와 파출소를 끼고 있는 면사무소에서 100여 미터(m) 떨어진 곳에 건물 한 채가 있다. 제법 큰 270여 평 규모지만, 벽과 지붕의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문은 다 부서졌고, 어딘가에 내걸렸던 간판은 바닥에 떨어져 먼지를 뒤집어썼다. 간판에 ‘둔포양조장’이라 적혀 있다. 바닥에 뒹구는 막걸리 빈 병 수십 개가 예전을 짐작게 한다.

1979년부터 둔포양조장 사장이었던 최덕영(75) 씨는 이 양조장의 전성기를 1997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그해, 둔포양조장 직원 수는 10명이 넘었다. 술 내리는 기술자, 배달원, 경리까지 함께 일했다. 둔포면에서 가장 큰 사업체였다. 마을의 현금이 양조장을 중심으로 돌았다. 한 말에 250원짜리 막걸리가 하루 200말 넘게 나갔다. 교사 월급이 1만 5천 원이던 어느 시절엔 양조장 한 달 매출이 130만 원을 넘었다. 둔포에서 손꼽히게 많은 세금을 내고 직원 월급을 넉넉히 챙겨줘도 돈이 남았다.

최덕영(75) 씨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에서 지난 2017년까지 둔포양조장을 운영했다. 2001년 지역 판매 제한이 해제되면서 양조장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만 해도 하루 200말 이상 나갔던 막걸리가 폐업을 앞두고는 하루 10말도 팔리지 않았다. 윤준호 기자
최덕영(75) 씨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에서 지난 2017년까지 둔포양조장을 운영했다. 2001년 지역 판매 제한이 해제되면서 양조장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만 해도 하루 200말 이상 나갔던 막걸리가 폐업을 앞두고는 하루 10말도 팔리지 않았다. 윤준호 기자

쇠락은 2000년대에 시작됐다. 2001년, ‘탁주의 공급구역제한’을 규정한 주세법 5조 3항이 삭제됐다. 1962년 제정되어, 막걸리를 판매할 수 있는 지역에 제한을 뒀던 규정이 사라진 것이다. 읍·면 단위마다 서로 다른 막걸리를 팔았던 시절도 끝났다. “그때부터 쳐들어왔다”고 최 씨는 말했다. 충남 아산시 둔포면에 처음 ‘쳐들어온’ 외지 막걸리는 경기도 포천 이동막걸리였다.

그래도 그는 특허까지 받은 자신의 발효기술을 믿었다. 누룩과 효모를 손수 만들어 빚는 막걸리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술 잘 만든다고 치러낼 경쟁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이동막걸리는 전국적 공급망을 확보해 물밀듯이 시골 마을의 식당과 주점을 장악했다. 이후 둔포에 공급된 다른 지역 막걸리는 20종을 넘겼다.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며 최 씨는 그 시절을 회고했다. 매출이 급감하여 양조장을 접기 직전엔 하루 10말의 막걸리를 팔아 6만 원을 벌었다. 2017년 결국 폐업했다. 최 씨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면사무소에서 1.4km 떨어진 외곽의 양조장에 취직했다. 사장이 자본과 유통을 책임지면, 최 씨가 막걸리를 만들었다.

이제 그마저 그만두게 됐다. 양계업으로 돈을 벌어 막걸리로 사업을 확장했던 사장은 최 씨에게 월급 주기도 어려운 양조장을 접기로 했다. 2022년 9월 30일, 최 씨의 막걸리 인생도 막을 내렸다. “이제 여기를 내줘야 해.” 양조장 건물에 소시지 공장이 들어설 것이라는 이야기를 최 씨는 들었다. 특허받은 기술을 이제 어디에 쓸지 최 씨는 알지 못한다. “내가 허송세월한 거 같아.” 최 씨는 착잡하게 말했다.

2017년 폐업한 충남 아산시 둔포양조장의 바닥에 막걸리 빈 병이 뒹굴고 있다. 박동주 기자
2017년 폐업한 충남 아산시 둔포양조장의 바닥에 막걸리 빈 병이 뒹굴고 있다. 박동주 기자

최초로 확인한 풀뿌리 막걸리 양조장 현황

둔포 양조장과 같은 풀뿌리 양조장의 예전 규모를 추정할만한 가장 오래된 자료는 1975년 5월 16일 <동아일보> 보도다. ‘주조업 정리 매듭’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당시 전국 막걸리 양조장을 1519개소라고 보도했다. 국세청이 약 2년 동안 ‘주류 행정 혁신 사업’을 펼쳐, 탁주 양조장은 2097개소에서 1519개소, 약주는 199개소에서 45개소, 기타주류는 202개소에서 82개로 통폐합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랬어도 양조장은 매우 많았다. 1519개의 막걸리 양조장은 당시 전국 읍·면 1468곳에 하나씩 있고도 남을 만한 규모다.

이후 변천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자료는 1950년 창립한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이하 중앙회) 회원 명단이다. 중앙회는 1966년 3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주세법에 따라 주류 제조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했던 조직이다. 판매 지역에 제한을 뒀던 시절, 읍·면마다 있던 전국 양조장들이 모두 가입한 단체였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2002년 중앙회 회원 명단을 입수했다. 의무가입 규정이 사라진 직후의 회원 명단이기도 했다.

이 명단에는 2002년 당시 중앙회에 가입한 전국 1026개 양조장의 상호와 주소가 있다. 집계한 출처는 다르지만, <동아일보> 보도와 비교해보아 1975년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500여 곳의 풀뿌리 양조장이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70년대 이후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막걸리 출고량(파란색 선)이 감소한 만큼 맥주(초록색 선)와 희석식 소주(노란색 선)의 출고량이 증가했다. 2021년 현재 출고량 비율을 보면 탁주가 10%, 맥주가 51%, 희석식 소주가 23%다. 그래픽 윤준호
1970년대를 기점으로 막걸리 출고량(파란색 선)이 감소한 만큼 맥주(초록색 선)와 희석식 소주(노란색 선)의 출고량이 증가했다. 2021년 현재 출고량 비율을 보면 탁주가 10%, 맥주가 51%, 희석식 소주가 23%다. 그래픽 윤준호

한 걸음 더 나아가,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얼마나 더 많은 양조장이 폐업했는지 조사했다. 이를 정확히 알려주는 공식 자료가 없어, 여러 간접 자료를 비교 분석했다. 우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운영하는 정보공개 사이트 ‘식품 안전나라’에 현재 영업 중인 곳으로 등록된 557개의 생막걸리 생산업체 목록을 확보했다. 이 목록에는 공장식 막걸리를 생산하는 대기업, 최근 창업한 이른바 ‘프리미엄 막걸리’ 업체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 목록을 2002년 중앙회 회원 명단과 비교했다. 두 목록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업체의 경우, 2002년 이전부터 읍·면 지역에서 양조장을 운영해온 것으로 판단했다. 판매 지역 제한이 해제된 2001년 이후 새로 창업한 풀뿌리 양조장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해 보니, 두 목록에 겹치는 양조장은 268곳이었다. 그런데 풀뿌리 양조장 가운데 일부는 대기업 규모로 성장했으므로 이런 업체들을 다시 추려냈다. 농림축산식품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의 사이트를 통해 최근 3년 사이 268개 업체의 연매출을 확인해, 5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양조장을 제외했다. 이상의 분석을 거쳐, 2002년 이전에 창업했고 지금까지 지역 읍·면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연매출 5억원 이하인 풀뿌리 양조장은 현재 230곳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마을마다 있었던 풀뿌리 막걸리 양조장이 1975년과 비교해 약 85%, 2002년과 비교해 약 77%나 급감한 것이다.

전국 막걸리 양조장 개수를 알려주는 정부의 공식 자료는 없다. 1934년 일제강점기 조선 주류업에 관한 공식 기록을 엮은 서적 조선주조사, 1975년 5월 16일 동아일보 기사, 2002년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 회원 명단, 그리고 2022년 식약처 데이터베이스 등을 함께 검토해 막걸리 양조장의 변화를 추산했다. 현재 전국 풀뿌리 양조장은 230곳으로 추정된다. 그래픽 윤준호
전국 막걸리 양조장 개수를 알려주는 정부의 공식 자료는 없다. 1934년 일제강점기 조선 주류업에 관한 공식 기록을 엮은 서적 조선주조사, 1975년 5월 16일 동아일보 기사, 2002년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 회원 명단, 그리고 2022년 식약처 데이터베이스 등을 함께 검토해 막걸리 양조장의 변화를 추산했다. 현재 전국 풀뿌리 양조장은 230곳으로 추정된다. 그래픽 윤준호

사라지는 풀뿌리 막걸리

지역 소멸은 풀뿌리 막걸리가 쇠락한 원인 중 하나다. 경남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에서 배둔양조장을 운영하는 최규열(51) 씨도 그 현실을 알고 있다. 그는 6년 전 아버지의 양조장을 물려받았다. “그래도 밥 굶을 일은 없을끼다.” 아버지의 그 말을 이제 최 씨는 의심하고 있다. 아들 최 씨는 한 달에 1200원짜리 막걸리 300병을 판다. 최 씨가 일하는 시간만큼의 최저임금을 번다. 정확히 얼마를 버는 것인지 최 씨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인건비, 재료비 제외하면 한 병에 300원 남는다”고만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한 달 순수익은 9만 원이다.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의 2002년 회원 명부와 식품의약처 데이터베이스를 대조해 지금까지 남아 있는 풀뿌리 양조장 230곳을 지역별로 분류했다. 대부분의 풀뿌리 양조장이 주로 농촌 지역에 분포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픽 윤준호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의 2002년 회원 명부와 식품의약처 데이터베이스를 대조해 지금까지 남아 있는 풀뿌리 양조장 230곳을 지역별로 분류했다. 대부분의 풀뿌리 양조장이 주로 농촌 지역에 분포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픽 윤준호

왜 이 지경이 된 것인지 배둔리 읍내를 잠시 걸어보면 알 수 있다. 저녁 8시, 읍내 한복판에 아무도 없다. 지난 10년 사이에만 200명 넘는 주민이 이곳을 떠났다. 이제 배둔리 인구는 2300여 명에 불과하다. 최 씨가 어렸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농사짓는 사람들이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자전거에 막걸리 통을 키보다 높게 매단 배달원들이 초상집과 잔칫집을 돌았다. 양조장 주인은 지역의 대표적인 부자로 통했다.

그 사람들이 떠났다.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이앙기와 콤바인이 농사를 짓는다. 몸이 덜 고되니 막걸리와 새참도 필요 없다. 아들 최 씨는 “양조장을 안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40년 동안 아버지와 아들이 양조장을 지켰다. 여전히 양조장을 찾는 마을 사람들도 있다. 최 씨는 그들을 “가족 같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명절 때마다 여기 들러 막걸리 사가는 추억까지 없어져 버리면….”  최 씨는 말끝을 흐렸다.

경남 고성군 배둔면의 배둔양조장 사장 최규열(51) 씨는 6년 전 아버지 돌아가신 뒤, 양조장을 이어받았다. 사진 윤준호
경남 고성군 배둔면의 배둔양조장 사장 최규열(51) 씨는 6년 전 아버지 돌아가신 뒤, 양조장을 이어받았다. 윤준호 기자

풀뿌리 막걸리 소멸 보고서는 2회로 이어진다. ‘2회-그래도 살아남고 싶다’ 편에서는 활로를 찾는 지역 양조장을 살펴본다. 큰돈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된 시장에서 계속 막걸리를 만들고 싶다는 이들의 바람을 보도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전국 1400여 곳의 읍·면사무소 소재지 대부분에 막걸리 양조장이 있었다. 읍·면의 생산자가 만들어 읍·면의 소비자들이 마셨던 이 막걸리는 글자 그대로 ‘풀뿌리 막걸리’였다. 이른바 ‘프리미엄 막걸리’가 젊은 세대 또는 도시인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는 요즘, 정작 풀뿌리 막걸리는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막걸리 시장이 요동치는 동안, 지역의 풀뿌리 막걸리 양조장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운영 중인 곳은 어디인지, 이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알려주는 자료는 전혀 없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공식 조사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총 6개월에 걸쳐, 사라져가는 풀뿌리 막걸리의 실상을 직접 취재했다. 우선, 식품의약품안전처,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 농림축산식품부, 중소벤처기업부, 그리고 포털 주소·지도 검색 서비스의 자료를 확보하고 교차 분석하여, 읍·면 단위의 풀뿌리 막걸리 양조장 현황을 추산했다.

또한, 전국 102곳 풀뿌리 막걸리 양조장에 일일이 전화하여 현장 방문 및 인터뷰를 의뢰했다. 여러 차례 전화에도 응답하지 않는 곳, 사정이 어렵다며 취재를 거절한 곳이 많았으나, 설득 끝에 경북, 경남, 전북, 충남 지역에서 20년 이상 풀뿌리 막걸리를 만들어 온 양조장 13곳을 취재했다.

정부와 단체의 공식 사이트 및 문서 외에도 <조선주조사> <술문화 조사 보고서> <전통주조 백년사> 등 단행본, 논문, 보고서 등 1000쪽 이상의 문헌을 참고했다. 또한, 관련된 과거 기사, 1949년 입법 이후 62차례 개정된 주세법의 연혁 등을 조사했다. 한국막걸리협회장, 한국전통민속주협회장,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자 등 6명의 전문가를 전화와 서면으로 인터뷰하여 지역 양조장의 실태와 미래를 물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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