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윤기은 경향신문 기자

한 사람이 두 명의 역할을 하며 상황극을 펼친다. 양갈레 머리를 한 딸과 그를 깨우는 엄마가 번갈아 등장한다.

“기은아! 지금 8시야, 지각임.”

“등교 9시까진데…. 아 맞다, 8시까지로 바뀌었지?”

경기도 등교 시간 자율화 논의를 소개한 1분짜리 ‘틱톡’(TikTok) 영상이다. 이 영상을 본 사람은 80만 명,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5만 명이다. 댓글은 6천 건 가까이 달렸다.

틱톡은 최근 전 세계 10대 청소년과 20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다. 편리한 기능들을 활용해 짧은 영상을 직접 제작하고 공유할 수 있다. 2022년 1분기 기준 앱 누적 다운로드 수가 35억 건을 돌파하면서 전 세계 1위 소셜미디어가 됐다.

그 흐름을 놓치지 않은 젊은 기자가 있다. 윤기은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기자다. 입사한 지 올해로 3년 차인 윤 기자가 최근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연기 실력이 늘었다’이다. 지난 1년여 동안, 그는 <경향신문>의 여러 기사를 일인 다역 상황극으로 재구성해 틱톡으로 전해왔다. ‘2022년의 기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매일같이 고민한 결과다.

9월 24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윤기은 경향신문 기자가 자신이 출연한 틱톡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유제니 기자
9월 24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윤기은 경향신문 기자가 자신이 출연한 틱톡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유제니 기자

톡톡 튀는 연기로 독자 사로잡다

윤 기자는 여느 사건팀 기자와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바쁘다. 최근에는 신당역에서 벌어진 스토킹 살인사건을 취재했다.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사건에 달라붙어 취재 보도한 것은 물론 한국 사회의 스토킹 문제 전반을 기획 기사로 다뤘다. 얼마 전에는 식자재 가격 상승의 여러 원인을 취재하려고 서울의 시장을 돌며 도매상, 배달 기사, 식당 사장, 시민 등을 만났고, 급기야 충남까지 내려가 논밭에서 농민도 여럿 만났다. 그렇게 하루에도 많게는 서너 건의 기사를 쓴다.

그런데도 윤 기자는 만족하지 못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쓴 기사의 조회수가 겨우 수십 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고생해서 만든 보도가 독자에게 도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혼란과 회의를 느꼈다. 윤 기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신의 기사를 독자에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경향신문> 뉴콘텐츠팀 양다영 PD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두 사람은 짧은 영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숏폼’(short form) 콘텐츠를 떠올렸고, 곧바로 기획에 돌입했다. 그렇게 틱톡 채널 ‘암호명3701’이 탄생했다. <경향신문>이 만든 첫 틱톡 채널이었다.

경향신문 틱톡 채널 ‘암호명3701’ 메인 화면 갈무리. 유제니 기자
경향신문 틱톡 채널 ‘암호명3701’ 메인 화면 갈무리. 유제니 기자

2021년 8월 개설한 채널은 지금까지 세 번의 시즌을 거쳤다. 시즌 1에서는 국제뉴스, 시즌 2에서는 기후위기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지금은 시즌 3인 ‘1분 식(食)톡’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밥상에서 나누는 사회 이슈가 콘셉트다. ‘못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틱톡 사용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윤기은 기자의 톡톡 튀는 연기가 큰 몫을 했다. 그는 가발과 의상, 다양한 소품 등을 활용해 일인 다역을 완벽히 소화해낸다.

‘소통’하는 뉴스 실현하다

틱톡 채널을 개설한 언론사가 국내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보도된 영상과 기사를 재활용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윤 기자는 완전히 다르게 접근했다. 우선 타깃을 분명히 했다. ‘신문을 보지 않는 10대 청소년’의 이목을 사로잡는 구성으로 그들이 시사 이슈를 접하도록 이끌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래서 ‘암호명3701’이 다루는 주제는 가볍지 않다. ‘외고 폐지’, ‘신당역 살인사건’, ‘태풍 힌남노’, ‘타투 합법화’,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을 다뤘다. 대신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밌게 만들었다. 이를 위해 시도한 것이 ‘시사 이슈에 관해 대화하는 일인 다역의 상황극’이었다. 온갖 취재로 바쁜 와중에도 윤 기자는 지난 1년여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영상을 올렸다.

9월 29일 경향신문 본사 뉴미디어 스튜디오에서 윤기은 기자가 실내외 공연장 마스크 착용에 관한 틱톡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유제니 기자
9월 29일 경향신문 본사 뉴미디어 스튜디오에서 윤기은 기자가 실내외 공연장 마스크 착용에 관한 틱톡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유제니 기자

이제 채널의 팔로워는 1만 6000명을 넘었고, 개별 영상의 평균 조회수는 수십만 회에 이른다. 뉴스에 관심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10대들이 윤 기자의 틱톡 채널을 통해 뉴스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남긴 댓글도 가볍거나 장난스럽지 않다. 진지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남기는 독자들이 늘었다. 궁금한 현안을 영상으로 제작해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들도 많다. 윤 기자는 이런 독자와의 소통이 자신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뉴미디어? 새로운 거 아니고 당연한 거!

윤 기자는 초등학생 때까지 책벌레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가거나 집에 돌아와 소설, 논픽션, 신문 등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시대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갔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좋아하는 아이돌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했다. 글로는 접할 수 없는 그들의 춤동작이나 표정, 웃음소리를 생생히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윤 기자는 영상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교내 방송 동아리에 들어갔다.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다양한 시사 콘텐츠를 매달 한 편씩 제작했다. 가끔 직접 출연도 하며 끼와 재능을 발산했다. 그 시절에 쌓은 경험과 노하우는 신문 기자가 된 뒤에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게 됐다. 선배 기자들이 낯설어하는 뉴미디어, 소셜미디어, 영상미디어 등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난 9월 2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사옥의 스튜디오에서 만난 윤 기자는 아무렇지 않게 촬영 작업을 즐기고 있었다. 이날 윤 기자는 실내 마스크 착용 규제, 디지털 성범죄, 반려동물 등에 대한 이슈를 소개하는 영상을 찍었다. 네 벌의 옷을 갈아입었다. 얼굴에 강아지 분장을 하고 인서트도 촬영했다. 촬영 도중에 선배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회부 사건기자의 모습으로 잠시 돌아가, 그동안 취재한 내용을 전달하고 급하게 기사를 고쳤다. 그리고는 다시 촬영에 임했다.

윤기은 기자가 틱톡 채널의 독자들을 향해 ‘반려동물 면허시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있다. 유제니 기자
윤기은 기자가 틱톡 채널의 독자들을 향해 ‘반려동물 면허시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있다. 유제니 기자

즐기면서 일하고 있지만, 아쉬움도 있다. 방송사에 비해 영상 제작 인력과 시설·장비 인프라에 한계가 있다고 윤 기자는 말했다. ‘암호명3701’은 양다영 PD와 윤기은 기자가 운영하고 있다. 조사, 소품과 의상 준비, 연출과 촬영, 편집 등 모든 일을 두 사람이 해내야 한다. 윤 기자는 매주 한 차례, 약 두 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시간을 할애해 콘텐츠를 제작한다.

“뉴미디어팀을 따로 마련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모든 기자가 뉴미디어 제작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누구나 효율적으로 콘텐츠를 제작, 생산할 수 있도록 신문사가 체계를 갖추면 좋겠어요. 그런 시스템이 마련되면, 취재 기자들도 눈치 안 보고 충분히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거든요.”

반려동물 관련 콘텐츠의 마지막 컷을 촬영하기 위해 윤기은 기자가 강아지 분장을 하고 있다. 유제니 기자
반려동물 관련 콘텐츠의 마지막 컷을 촬영하기 위해 윤기은 기자가 강아지 분장을 하고 있다. 유제니 기자

도전의 핵심은 구체적 실행안

언론의 역할은 타인의 삶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윤 기자는 생각한다. 특종을 발굴하고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도 필요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언론이 사회 구조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역할을 잘 해내려면, 기자는 이야기를 잘 정돈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 신념 아래 윤 기자가 발견한 것이 틱톡이었다. 그는 틱톡을 통해 읽히는 기사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생각을 뉴스룸에 내놓으려고 한 달 동안 공부했다. 관련 논문, 연구 자료, 기사를 읽었다. 해외 언론사의 틱톡 채널도 분석했다. 직접 틱톡을 사용하면서 댓글과 태그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식도 연습했다. 그렇게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기획서를 완성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윤 기자는 스스로 공부해 뉴콘텐츠팀장을 찾아가 설득했다.

“제 기획서를 본 선배들이 (틱톡 채널 운영의) 성공을 확신해서 허락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당장 실행해볼 수 있도록 매우 구체적으로 기획서를 작성했기에 승낙을 받은 거 같아요. 일단 해보라는 거였죠. 다행히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자리를 잡았어요. 운이 따라줬죠.”

9월 29일 경향신문 본사 뉴미디어 스튜디오에서 윤기은 기자(왼쪽)와 양다영 PD(오른쪽)가 대본을 수정하며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유제니 기자
9월 29일 경향신문 본사 뉴미디어 스튜디오에서 윤기은 기자(왼쪽)와 양다영 PD(오른쪽)가 대본을 수정하며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유제니 기자

그래서 윤 기자는 알게 됐다. 도전의 핵심은 설득이라는 것을.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일을 함께 하거나 도울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세세한 실행안을 설정해 상대를 안심시킬 수 있다면, 그제야 본격적인 도전이 가능하고 그에 따른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미래의 기자들에게 조언했다.

“기존의 업무 패턴에 갇히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을 따로 들여 연구하고 공부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원하는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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