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특강]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기자라는 직을 가지고 있으면 저널리즘과 비즈니스, 기술, 이 세 가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되면 ‘내가 돈 벌러 다닐 것도 아닌데 (비즈니스에) 영향을 받겠나’라고 생각을 하시고 싶으시겠지만 결코 그렇게 안 된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국내 뉴미디어 업계에서 대표적 동향분석가로 꼽히는 이성규(46) 미디어스피어 대표는 지난달 27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에서 열린 저널리즘특강에서 ‘저널리스트의 삼각 지배’라는 도표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초청으로 ‘최신 뉴미디어 흐름에서 발견하는 기회’를 주제로 강연한 이 대표는 기자들이 미디어 기술 발전과 언론사 수익구조 변화를 잘 알고 대응해야 흔들림 없이 저널리즘을 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오마이뉴스> <매일경제> 기자를 거쳐 다음, 메디아티, 구글 등에서 미디어 기획과 교육을 담당했으며, 창작자들의 활동과 수익창출을 돕는 미디어스피어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구독 경제’로 들썩거리는 각국 미디어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가 지난달 27일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저널리즘특강에서 ‘최신 뉴미디어 흐름에서 발견하는 기회’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손민주 기자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가 지난달 27일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저널리즘특강에서 ‘최신 뉴미디어 흐름에서 발견하는 기회’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손민주 기자

이 대표는 언론사 비즈니스 동향과 관련해 전 세계가 ‘구독 경제’로 들썩인다고 소개했다. 광고의 비중이 줄고 콘텐츠 유료화가 증가하는 흐름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중앙일보>가 주요 종합일간지 가운데 처음으로 유료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플러스’(Plus) 표시가 붙은 콘텐츠는 유료 구독자만 볼 수 있다. <조선일보>도 유사한 유료구독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한겨레>는 자사의 저널리즘을 후원하는 서포터즈 ‘벗’을 지난해 6월 출범시켜 1년 동안 누적 8억 원대의 후원금을 받았다. 이 대표는 “해외 미디어도 광고가 줄고 이커머스(전자상거래)나 펀딩(프로젝트에 기부를 받는 형태)의 비율이 늘고 있다”며 “기자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비즈니스의 흐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미디어 비즈니스의 변화를 ‘수익 다각화’와 ‘비영리 모델의 확장’ ‘뉴스스타트업 활성화’로 요약했다. 그는 “주 수익원이 광고가 아니라 다각화한 매체일수록 조금 더 독립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들의 광고 외 수익원은 지적재산권(IP) 활용, 콘텐츠관리시스템(CMS) 판매, 비영리모델 등으로 다양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국제신문 이동윤 기자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죽어도 자이언츠>는 언론사가 IP를 활용한 대표적 사례다. 이 작품은 지난달 27일 개봉 첫날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이 대표는 “국제신문이 쌓아온 ‘롯데 자이언츠 관련 기사 데이터베이스’와 ‘취재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성공이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또 미국의 잡지사 <디애틀랜틱>은 2021년 1월 미국 의사당 습격 사건 관련 분석 기사를 활용해 <섀도우랜드>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피콕(Peocock)에 내보냈다. 이 대표는 저널리즘이 다뤘던 수많은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계열로 다시 한번 재조합하게 되면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들이 아주 많다고 말했다.

뉴스를 상품으로 보는 ‘프로덕트 씽킹’의 시대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들이 이성규 대표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를 통해 외부 청강생도 참여했다. 손민주 기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들이 이성규 대표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를 통해 외부 청강생도 참여했다. 손민주 기자

“디지털로 넘어오게 되면 뉴스를 하나의 상품(product)으로 보는 관점을 갖게 되고, 가져야만 합니다. 이게 기자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불쾌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뉴스가 상품이야’라고 하는 순간부터 ‘그러면 기자는 공장에서 상품 제조하는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접근법이 없으면 독자들한테 (기사가) 수용될 수 있는 거리를 좁히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뉴스룸에서 뉴스를 상품으로 여기고 독자를 소비자로 보는 ‘프로덕트 씽킹’(product thinking)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로덕트 씽킹은 저널리즘이 직면한 문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한 언론사가 뉴스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에 직면했다면, 뉴스라는 상품을 잘 팔기 위해서 사용자 환경을 개선하는 대안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한 뒤 긴 기사 중간에 ‘해설 박스’를 넣어볼 수도 있다.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 역할은 ‘프로덕트 매니저’가 맡는다. 이 대표는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 결과 프로덕트 매니저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포털에서 뉴스 소비가 많이 되는 한국 언론계에는 아직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게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대표는 저널리즘의 형식 실험의 성공적인 사례로 미국 스타트업 액시오스(Axios)의 ‘스마트 브레비티’(Smart Brevity)를 소개했다. 특정 뉴스에 관해 ‘무엇이 새로운가’ ‘왜 그것이 중요한가’ ‘그다음은 무엇인가’ 등을 간명하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런 형식은 모바일로 뉴스를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한 ‘프로덕트 씽킹’에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액시오스가 도입해 큰 반향을 일으킨 뉴스 전달 방식, 스마트 브레비티. 이성규 대표 제공
액시오스가 도입해 큰 반향을 일으킨 뉴스 전달 방식, 스마트 브레비티. 이성규 대표 제공

보도의 편향성 문제를 뉴스 형식으로 해결한 매체도 있다. 이 대표는 미국의 스타트업 세마포(Semafor)가 선보인 ‘더욱 정직하게’(more honest)를 소개했다. 이 형식에는 보통의 기사에서 쓰지 않는 기자의 관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까지 함께 담는다. 세마포의 창업자 벤 스미스는 이런 시도가 “자체 보도 편향을 완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뉴스 소비 행위 자체를 극단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국내외에서 기자 출신들의 미디어 스타트업 창업이 늘고 있다”며 미디어 기술의 발전도 진입 장벽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과 ‘메이크 어 비디오’(Make A Video) 같은 인공지능 기반 영상 서비스는 텍스트(글)를 넣으면 관련 있는 이미지와 동영상으로 전환하는 서비스로, 미디어 제작자들의 시각화 작업을 훨씬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관행을 깨려 애쓰지 말고 새 관행을 만들어라

미디어 비즈니스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기자 지망생에게도 이런 변화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적인 언론사에 들어가서 관행을 깨기 위해서 너무 힘 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대신 새로운 관행을 만드는 데 애쓰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뉴스레터 제작을 맡는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성공사례를 만들고 이를 통해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라는 것이다.

이성규 대표가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손민주 기자
이성규 대표가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손민주 기자

강의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정호원(26·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씨는 “국내 언론사의 탈플랫폼 전략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해외 언론사와 페이스북의 관계를 예로 들어 해외 언론사들이 ‘탈플랫폼’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페이스북의 정책 변화에 따라 언론사의 생산 관행과 리소스 투입이 계속 출렁였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이 특정 콘텐츠의 노출 비중을 높이면 언론사는 해당 콘텐츠를 많이 생산하게 되는데, 나중에 정책을 바꾸면서 언론사가 큰 타격을 입게 됐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탈플랫폼이 해외 언론사들의 반복된 경험과 학습을 통해 도달한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여전히 포털이 끼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당분간 탈플랫폼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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