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이소연 쿠키뉴스 기자

영화 <기생충>에는 반지하와 고급주택이 번갈아 교차한다. 영화 속 반지하의 창문에는 햇살 한 줌이 짧게 스친다. 반면 고급주택의 커다란 통유리창에는 풍만한 햇살이 비치고 그 너머에 푸른 정원이 펼쳐져 있다.

창문 하나로 인간의 삶이 달라진다. 이는 비유적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35조 3항은 쾌적한 주거권을 보장하는 국가의 의무를 밝혔다.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어떨까.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그 질문을 품고 취재를 시작했다. 빈부격차를 고발하겠다는 기사들이 대동소이한 접근 방식을 택했던 것과 달리, <쿠키뉴스> 기자들은 창문에 주목했다. 창문을 기준으로 인간의 삶은 하늘과 땅을 오가고 있었다. 그 결과를 담은 것이 ‘빈부격,창’ 보도다. 지난 2월 3일, <단비뉴스>는 취재팀 중 한 명인 이소연 <쿠키뉴스> 기자(34)를 서울 쿠키뉴스 사옥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의 이소연 기자(34). 이소연 기자 제공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의 이소연 기자(34). 이소연 기자 제공

“세상을 바꾸는 게 쉽지 않더라도 언론이 한 사람의 삶 정도는 바꿀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이 기자는 경기도 화성시의 시골 마을 매향리에서 자랐다. 매화 향기 가득한 매향리에는 ‘쿠니 사격장’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마을은 미군의 사격장으로 사용됐다. 주민들은 소음과 폭격으로 인한 난청, 우울증, 오발 사고로 인한 부상 등을 50년 가까이 겪었다. 1980년대 말 주민들은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싸움은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었고, 2005년 마침내 사격장은 폐쇄됐다. 이 기자는 마을의 변화를 보며 언론의 힘을 느끼게 됐다. 그가 기자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

일상에서 찾은 소재

기자가 된 뒤에는 무엇을 보도할지 항상 갑갑했다. 세상 곳곳에서 기사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걷고 있던 어느 날, 그의 눈에 아파트 창문이 보였다. “창이 정말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이어 대학 시절에 지냈던 원룸이 떠올랐다. 원룸의 창문이 너무도 작았던 기억이 났다.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문제가 이 기자의 뇌리에 박혔다. 창문 하나로도 삶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빈부격,창’의 출발이었다.

2022년 4월, 이 기자를 비롯한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세명대학교 저널리즘 대학원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동 주최한 ‘기획탐사 디플로마 교육과정’에 참가했다. 여기서 저널리즘 대학원 교수진의 조언을 바탕으로 취재 방향을 재정비했다. 그리고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약 두 달 동안, 서울·경기의 쪽방, 고시원, 다세대주택, 아파트, 고급주택을 다니며 창문을 취재했다. 그곳에 사는 200여 명의 거주민도 직접 만났다.

‘빈부격,창’ 인터랙티브 웹페이지. 360도 VR 카메라로 촬영한 쪽방의 구석구석을 독자가 살펴볼 수 있게 편집했다. 빈부격,창 인터랙티브 페이지 갈무리
‘빈부격,창’ 인터랙티브 웹페이지. 360도 VR 카메라로 촬영한 쪽방의 구석구석을 독자가 살펴볼 수 있게 편집했다. 빈부격,창 인터랙티브 페이지 갈무리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5개 유형으로 주거 공간을 나눴다. 유형별로 창문의 크기, 거주 비용, 채광량 등을 조사해 데이터로 표현했다. 더 나아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소방방재학과 교수, 건축 전문가 등에게 자문해 ‘최소 창문 기준’을 만들어 제시했다. 이 모든 내용은 지난해 8월 1일부터 닷새에 걸쳐 <쿠키뉴스> 홈페이지에 실렸다. 연재 기사와 별개로 ‘빈부격,창’ 인터랙티브 페이지도 만들었다. 창문으로 인한 불평등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360도 VR 카메라로 찍은 사진, 쪽방 거주자의 음성, 그래픽 등을 인터랙티브에 담았다.

최소한의 창문을 위한 끈질긴 취재

취재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주로 돌아다닌 곳은 서울역 뒤편 동자동 쪽방촌이었다. 한여름의 낮, 쪽방촌 주민들은 집이 아닌 공원에 있었다. 취재팀은 일주일 동안 인사만 하고 다녔다. 취재 이전에 주민들과 친해지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랬어도 주민들은 쪽방을 잘 보여주지 않았다. 기자들의 요청을 냉담하게 거절하기 일쑤였다. 쪽방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자신이 살고 있는 쪽방을 드러내는 일을 꺼렸다.

어느 주민은 ‘기사를 써도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취재팀은 끈질기게 설득했다. 보도가 끊임없이 나와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비 오는 날까지 동네를 찾아가 인사하니, 그제야 몇몇 주민이 마음을 열었다. 취재팀은 주민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여름이면 공원에 나와 앉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알게 됐다.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쪽방의 불편함을 술술 말했다. 냉방이 되지 않아 갑갑한 탓에 집보다는 공원이나 심지어 길바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는 곳의 창문은 손바닥 두 개 크기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옆 건물까지 거리는 고작 1m였다. 이 때문에 작은 창문으로 바람조차 드나들지 않았다. 유리창이 얇아 소음도 막을 수 없었다. 겨울이 되면 추위와 칼바람을 막을 수 없었다.

큰 창문이 설치된 집을 취재할 때는 다른 어려움을 겪었다. 창문이 커서 어떤 점이 좋은지 물었으나, 그들은 답하지 못했다. 그런 질문 자체를 의아해했다.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볕과 공기를 누리면서도 이를 특별한 일로 여긴 적이 없었던 것이다. 중산층 이상의 거주 공간을 취재하려면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서울 용산구의 부촌을 취재했던 기자들은 용산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아파트 도면을 받아 직접 창문의 크기를 확인했다. 부동산 유튜브 채널에 연락해 매물로 나온 고급주택을 둘러보며, 창문 크기를 측정하기도 했다.

이소연 기자가 ‘햇살 값 데이터’를 산출할 때 정리한 엑셀 파일을 보여주고 있다. 김아연 기자
이소연 기자가 ‘햇살 값 데이터’를 산출할 때 정리한 엑셀 파일을 보여주고 있다. 김아연 기자

쪽방과 부촌을 오가며 느꼈던 창문의 격차를 어떻게 독자에게 전달할지 취재팀은 고민했다. 그 결과, 독창적인 데이터를 마련했다. 바로 ‘햇살 값’이다. ‘햇살 값’은 창문 1㎡당 누릴 수 있는 햇살의 가격이다. 창의 총면적 대비 월 주거비용으로 계산했다.

역설적인 수치가 나왔다. 주거 면적, 창 크기, 재질이 좋아질수록 햇살 값은 저렴해졌다. 반면 빈곤한 주거 공간일수록 햇살 값이 비싸졌다. 1㎡당 쪽방이 사는 주민이 누리는 햇살 값은 월 50만 원이었다. 쪽방 지역에서 1㎡의 창문을 가지려면 50만 원의 월세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고급주택의 주민이 즐기는 햇살 값은 월 6만 원이었다. 넓고 비싼 동네에 살수록 충분한 햇살을 누리는 일이 일상의 기본이 된다는 뜻이다.

측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직접 조도계와 온도계, 공기질 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주거 환경을 조사했다. 창문의 크기, 유리의 소재 등에 따라 집 안의 환경은 달라졌다. 쪽방에서는 낮이라 해도 실내등을 켜지 않으면 방 전체가 깜깜해졌다. 반면, 큰 창문이 있는 아파트에서는 불을 켜지 않아도 햇볕이 충분하여 오히려 전기세를 아낄 수 있었다.

이는 에너지 비용의 불평등을 만들었다. 쪽방의 얇은 유리창은 겨울 찬바람을 통과시켜 난방비 부담을 늘렸다. 쪽방의 작은 유리창은 한여름의 열기를 내보내지 못하므로 하루 종일 선풍기를 켜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목소리

촘촘한 데이터에 더하여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열심히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을 기록했다. 취재팀은 빈곤 주거 공간에 살고 있는 30명을 만나 우울-스트레스를 진단하는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글을 보기 어려운 이들에겐 질문항을 읽어주며 조사했다. 정상 범위에 있는 이는 단 2명이었다. 우울과 스트레스 지수가 중증에 해당하는 이는 17명, 심각한 수준인 이가 9명이었다.

이들의 삶이 나아지려면, 최소 주거 기준의 하나로 창문 규격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취재팀은 생각했다. 이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답을 ‘빈부격,창’ 취재팀이 최초로 내놓았다. 하루에 적어도 4시간 동안 햇살이 들어올 수 있는 창, 성인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창 크기, 옆 건물과 최소 3m의 이격 거리 등을 ‘최소 창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해외 사례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다.

‘빈부격,창’ 기획은 보편적 문제를 새로운 접근으로 풀어냈다. 이미 누군가 썼다거나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라는 이유로 보도를 포기하지 말라고 이 기자는 <단비뉴스>의 기자들에게 조언했다. “어떻게 하면 다르게 쓸 수 있을지 궁리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을지 고심하면 언제나 더 훌륭한 기사를 보도할 수 있어요.”

이 기자는 2016년 5월 <쿠키뉴스>에 입사했다. 그는 기자로 7년을 살았어도 여전히 기자라는 직업의 가치를 믿는다. 기자는 누군가를 대신해 목소리 내어 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번 기획에서 ‘창문 크기’에 주목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정보와 데이터를 모아 그 의미를 계속 분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데이터를 통해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목소리를 기사로 담는 것”이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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