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박진영 KBS 기자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는 열 명의 노인이 있다. 폐지를 실은 각 리어카는 하루 평균 13킬로미터(km)를 갔다. 이들이 6일 동안 일하고 받은 폐지 값은 총 64만 2,000원이었다. 노인들은 하루 평균 11시간 20분을 일했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948원이다. 2022년 최저시급 9160원의 10% 수준이다.

리어카에 GPS를 달자, 한 시간 꼬박 일해도 바나나 우유 하나 사 먹을 수 없는 폐지 수집 노동의 실태가 드러났다. KBS 대구방송총국 박진영 기자가 지난 3월 보도한 <GPS와 리어카: 폐지수집노동 실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된 이 보도는 제49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단비뉴스>는 지난달 26일 박진영 기자를 세명대학교 문화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박진영 KBS 대구방송총국 기자가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에서 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박진영 KBS 대구방송총국 기자가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박 기자의 원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대학 시절, 연극영화학을 전공했다.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 영화를 만들던 그는 의경 복무를 거치며 기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박 기자는 거의 매일 집회와 시위 현장을 목격했다. “그런 사람들을 현장에서 직접 계속 만나면서, 우리나라에 힘든 사람이 참 많다는 걸 느꼈어요.” 그때부터 그는 준비와 제작 기간이 긴 영화보다 당대의 현실을 발빠르게 전하는 저널리즘의 문법에 약자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졌다.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2016년 가을, 스물아홉의 나이로 세명대학교 저널리즘 대학원에 입학했다.

저널리즘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도 영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취재한 내용을 텍스트뿐만 아니라 영상으로도 전했다. 당시 <단비뉴스> TV뉴스부 앵커로 활동하던 그는 1인칭 다큐멘터리 <나는 영화감독 이창환이다>를 제작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영화감독 이창환 씨를 담은 18분 분량의 다큐멘터리였다.

서른을 넘긴 때인 2019년 1월 1일, 그는 KBS 대구방송총국에 입사했다. 방송 기자가 된 이후에도 대학원에서 시도했던 실험은 계속 됐다. 틀에 박힌 단신 리포트의 형식을 넘어 장기간에 걸친 취재와 뉴스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형식에 도전했다. 그 결실 가운데 하나가 <GPS와 리어카: 폐지수집노동 실태 보고서>였다.

‘사랑의 손수레’에서 시작한 기획

기획의 시작은 지난해 가을, 대구 북구청에서 나온 한 보도자료였다. 보도자료에는 구청이 한 봉사단체로부터 리어카를 받아 폐지를 줍는 노인들에게 전달하는 기증식을 열었다는 미담이 담겨 있었다. 가난한 노인들이 폐지를 더 잘 주울 수 있도록 ‘더 가볍고 안전한’ 리어카를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보도자료를 본 박 기자는 당혹스러웠다. 이런 일을 미담이라며 보도자료로 배포하는 구청의 인식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대구 북구청이 지난해 폐지 수집 노인들에게 4대의 리어카를 전달했다. KBS 갈무리
대구 북구청이 지난해 폐지 수집 노인들에게 4대의 리어카를 전달했다. KBS 갈무리

자세한 내용을 구청에 문의한 결과,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한 구청 차원의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도자료에 등장한 4대의 리어카는 구청 직원들과 자주 교류하던 노인들에게 전달됐다. 그런데 정작 이런 리어카가 필요한 폐지 수집 노인이 몇 명인지를 구청이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가난한 노인에 대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폐지 수집 노동은 말 그대로 길거리에 방치되어 있었다.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지 않고, 그 실체를 직접 검증하기로 결심하던 무렵인 2021년 10월, 박 기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세명대학교 저널리즘 대학원이 공동 주최한 ‘2021 기획탐사 디플로마 교육과정’에 참가했다. 여기서 대학원 교수진과 함께 취재보도의 기획안을 준비하고 다듬었다. 한 달 동안 기획한 뒤, 지난해 11월부터 취재원 섭외에 돌입했고, 올해 1월부터 두 달 동안 폐지 줍는 노인 열 명을 직접 만나 취재했다.

취재가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다. 얼굴이 드러나는 영상 촬영에 응해줄 노인을 섭외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폐지를 모으는 자신의 처지를 남에게 드러내기 싫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거절당하면서도 설득하는 일을 두 달여 동안 거듭한 뒤에야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물질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는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 교수진의 조언도 큰 참조가 됐다. 박 기자는 고심 끝에 각 리어카마다 위치추적장치를 달기로 했다. 가볍고 장시간 추적이 가능하며 분 단위로 위치를 기록하는 GPS 장치를 찾느라 다시 한번 고생했다.

GPS가 리어카를 추적하자 폐지 수집 노동의 실태가 처음으로 가시화됐다. 노인 10명이 6일 동안 걸은 거리는 총 743km였고, 일한 시간의 합은 677시간이었다. 노인들은 시간당 약 950원어치의 노동을 위해 끼니를 거르며 일했다. 노동환경 또한 위험했다. 현행법상 리어카는 사륜차로 구분된다. 폐지 수집 리어카는 인도가 아닌 차도로만 다녀야 하는데, 막상 차도에 나서면 다른 자동차로부터 항상 위협을 받는다.

오래 들여다본 폐지수집 노동의 단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난의 깊이가 깊어서 깜짝 놀란 경험이 많았어요.”

취재했던 지난겨울을 돌아보며 박 기자가 말했다. 취재에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깊이 들여다봤다는 것이었다. 여러 번 만나고 대화하다 보니 노인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2분 분량의 일반적인 방송 리포트를 만들 때는 절대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한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라면을 20끼 이상 먹었다. 집에서는 봉지라면을 주로 먹었다. 박 기자가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라면 봉지만 가득했다. 다른 것을 살 돈이 없으니 라면만 먹는데, 보관할 데가 없어서 냉장고 안에 라면을 넣어둔다는 것이었다.

KBS 취재진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전국 180여 자치단체로부터 ‘보호장구를 지급한 노인 명단’ 등의 자료를 확보했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자치단체별 인구, 노인 인구, 평균 소득,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를 변수로 이용해 전국의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 인구를 추산했다. KBS 갈무리
KBS 취재진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전국 180여 자치단체로부터 ‘보호장구를 지급한 노인 명단’ 등의 자료를 확보했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자치단체별 인구, 노인 인구, 평균 소득,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를 변수로 이용해 전국의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 인구를 추산했다. KBS 갈무리

그렇게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는 노인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박 기자는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처음으로 내놓았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공동으로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한 결과, 전국에 14,954명 정도의 폐지 수집 노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단순히 리어카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여태껏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폐지 수집 노동에 대한 통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보도 이후 박 기자는 폐지 줍는 노인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이 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폐지 수집 노동의 심각성을 많은 분들이 알게 된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약자의 어려움 발굴하는 직업”

<GPS와 리어카: 폐지수집노동 실태 보고서>를 보도한 뒤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약한 자의 이야기를 저널리즘에 담고 싶다는 그의 꿈은 여전하다. 박 기자는 최근 ‘해고 노동자’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 해고 노동자가 겪는 이야기를 들춰내고 싶다고 했다. 감독을 지망하던 시절부터 기자의 꿈을 품은 시절,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선은 항상 조명받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있다.

“기자는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발굴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직업이니까요. 그런 이들을 쉽게 지나치지 말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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