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김혜윤 한겨레 사진기자

사진으로 진실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 사진기자, 다른 말로 ‘포토 저널리스트’(Photo Journalist)다. 사진기자는 세상의 최일선에서 바라본 것을 사진으로 전한다. 독자는 그 사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여기, 세상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으로 뉴스를 전하는 사진기자가 있다. 김혜윤(31) <한겨레> 사진 뉴스팀 기자다. <단비뉴스>는 지난 1월 3일 저녁 공덕역 근처 한 카페에서 김 기자를 만났다. 만 3년 차 사진기자가 목격한 세계를 그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들려줬다.

2020년 9월 8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가 대량 정리해고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을 당시 김 기자가 노조원의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제공
2020년 9월 8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가 대량 정리해고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을 당시 김 기자가 노조원의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혜윤 제공

세상을 만나는 매개, 사진

김 기자는 대학 시절 처음 카메라를 들었다.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그는 약학전문대학원 편입시험을 준비했다가 떨어졌다. 자신을 설명할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다. 교내 사진동아리에 들어가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다양한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거웠다. 드라마 ‘질투의 화신’ 속 주인공이 기자로서 현장을 누비는 모습에 매료된 영향도 컸다. 사진기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중 전공으로 미디어학부 수업을 듣고, 학보사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2018년에는 6개월간 <한국일보> 인턴 사진기자로 일했다.

김혜윤 한겨레 사진기자가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김혜윤 한겨레 사진기자가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인턴 기자 시절, 그는 항상 선배 기자들에게 물었다. 빛을 보는 방법,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무엇을 찍어야 보도사진이 되는지 등을 배웠다. 그의 사진에 풍경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담기 시작했다. 간절히 사진기자가 되고 싶었다. 정식기자 채용에 대비해 인턴의 일과를 마치고도 늦은 시간까지 공부했다.

학보사 사진기자와 일간지 인턴 사진기자를 거친 그는 2019년 6월 25일 <한겨레> 신입 기자가 됐다. 양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프로페셔널’의 세계로 들어갔다. 두 눈으로 바라봐온 세상을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2020년 5월 27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김 기자(가운데)가 제1441차 일본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를 취재하고 있다. 김혜윤 제공
2020년 5월 27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김 기자(가운데)가 제1441차 일본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를 취재하고 있다. 김혜윤 제공

막내 사진기자가 바라본 사진기자의 세계

김 기자는 <한겨레> 사진 뉴스팀의 막내 기자다. 회식 때마다 찾아오는 건배사 제의를 빼면 막내라서 불편한 점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14명의 선배 기자 중 40·50대가 대부분이고 바로 위 선배와는 5살 차이가 난다. 선배들과 격의 없이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김 기자는 사진 뉴스팀의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다. 그러다가도 일이 생기면 빠르게 움직인다. 사진뉴스팀장이 “혜윤아, 눈 온다”라고 말하면 곧바로 장비를 챙겨 나간다. 팀에서는 막내이지만, 취재현장에 가면 <한겨레>를 대표하는 사진기자로 통한다. 그만큼 많은 현장을 찾아간다.

현장에 나가면 타사 사진기자와 공동으로 하는 취재도 많다. 최근에는 다른 언론사의 신입 사진기자가 늘어, 취재현장의 분위기가 젊어졌다고 그는 전했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도 뉴스룸에서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같은 세대의 사진기자들과 나눌 수 있게 됐다. ‘젊은 기자’의 입장에서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보도사진계의 관행도 보였다.

두 살배기 이지현 어린이가 2019년 11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고 있다. 이 사진은 김 기자가 촬영해 지면에 내보낸 첫 사진이다. 김혜윤 제공
두 살배기 이지현 어린이가 2019년 11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 구세군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고 있다. 이 사진은 김 기자가 촬영해 지면에 내보낸 첫 사진이다. 김혜윤 제공

그중 하나가 연출이다. 일부 기자들이 현장에 직접 개입해 상황을 연출하는 경우를 보았다. 그런 일이 생기면, 김 기자는 그들의 촬영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현장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는다. 처음 지면에 실린 김 기자의 사진도 연출을 피해 찾아갔던 현장에서 촬영했다.

사진기자 수에 비례해 사진 보도의 다양성이 커지진 않는다고 느낄 때도 있다. 대동소이한 현장이나 인물을 여러 언론사가 촬영해 보도하는 경우가 있다. ‘왜 너는 그 사진을 찍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런 접근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보도사진계가 발전하긴 어렵다고 김 기자는 생각한다.

2022년 11월 22일(현지 시각) 카타르 루사일 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C조 1차전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를 김 기자(가운데)가 취재하고 있다. 김혜윤 제공
2022년 11월 22일(현지 시각) 카타르 루사일 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C조 1차전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를 김 기자(가운데)가 취재하고 있다. 김혜윤 제공

가끔 김 기자는 여성이 사진기자를 하기 힘들 것이라는 편견도 마주한다. 인턴 시절에는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라. 어차피 거기 여자 안 뽑는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국내에는 여성 사진기자가 적다.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취재한 한국 사진기자 24명 중 여성 사진기자는 김 기자뿐이었다. 다만, <한겨레> 사진부의 여성 기자는 5명이다. 국내 언론사 중에서 가장 많다. “현장에 가면 (성별 구분 없이) 모두 똑같이 힘들다”라고 김 기자는 말했다.

오히려 여성 기자여서 취재가 잘 이뤄질 때도 있다. 여성 취재원을 만나서 “사진기자가 여자라서 정말 좋아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존재이구나, 이 바닥에서 오래 버텨야겠다고 생각한다”고 김 기자는 말했다.

마음속 현장 우크라이나

“혜윤 씨, 여권 있지?” 지난해 3월, 사진부장이 김 기자에게 말했다. 물론 여권이 있었다. 문제는 결심이었다. ‘가겠다’고 김 기자는 덤덤하게 말했다.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인 프셰미실(Przemysl)로 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주일이 지난 3월 5일이었다.

프셰미실 역은 물밀듯 밀려오는 난민으로 가득했다. 주로 여성과 아이들이 국경을 넘어왔다. 그들이 임시로 정착하는 난민 대피소를 찾았다. 대피소에서 김 기자의 시선은 어린아이들을 향했다. 그가 만난 아이들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평범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아빠 얘기가 나오면 아이들은 슬퍼했다.

지난해 3월 17일(현지 시각), 난민의 신분증 역할을 하는 ‘페셀(PESEL)’ 번호를 발급하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구청 앞에서 김 기자는 두 살배기 아이 앤드루를 만났다. 엄마, 이모, 형들과 함께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 르비우에서 탈출한 앤드루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김 기자가 자동차 놀이를 함께 하고 있다. 김혜윤 제공
지난해 3월 17일(현지 시각), 난민의 신분증 역할을 하는 ‘페셀(PESEL)’ 번호를 발급하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구청 앞에서 김 기자는 두 살배기 아이 앤드루를 만났다. 엄마, 이모, 형들과 함께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 르비우에서 탈출한 앤드루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김 기자가 자동차 놀이를 함께 하고 있다. 김혜윤 제공
지난해 3월 10일 낮, 폴란드 프셰미실에서 크라쿠프로 향하는 열차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 안나(37)가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다. 전쟁이 나기 전, 키이우에서 사진작가로 일했던 그는 김 기자에게 "언제쯤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혜윤 제공
지난해 3월 10일 낮, 폴란드 프셰미실에서 크라쿠프로 향하는 열차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 안나(37)가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다. 전쟁이 나기 전, 키이우에서 사진작가로 일했던 그는 김 기자에게 "언제쯤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혜윤 제공

키이우(Kyiv)에서 온 여성 사진작가 안나(37)도 만났다.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과거 시제를 썼다. “나도 사진작가였어요.”(I was a photographer) 그 한마디에서 안나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 쏠린 국내 여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많은 한국에 우크라이나의 슬픔과 절박함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를 김 기자는 고민했다. 그가 보고 느낀 것을 독자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셔터를 눌렀다. 현지에서 밤을 지새우며 사진을 추려 기사를 썼다.

지난해 6월에는 폭격으로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부차(Bucha)와 이르핀(Irpin)에도 갔다. 김 기자는 부차 시청 직원을 만나 그의 가족과 이웃 주민들이 아파트 지하에서 생활했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키이우에 있는 ‘사회치료 위기 센터’도 취재했다. 심리적으로 절박한 상태의 시민들이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센터를 찾아왔다. 김 기자가 만난 트라우마 센터장은 의료진 또한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웃으며 일상을 보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들 속에서 여전히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를 김 기자는 사진으로 전했다.

우크라이나를 계속 기억하자는 의미로 김 기자는 손목에 해바라기 문양을 새기고 돌아왔다. 그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지금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시각을 표시하는 시계가 움직이고 있다.

2022년 12월 2일(현지 시각)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 시작 전, 김 기자가 관중석을 촬영하고 있다. 그의 오른손 팔에는 우크라이나를 기억하자는 뜻의 해바라기 문양이 새겨져 있다. 김혜윤 제공
2022년 12월 2일(현지 시각)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 시작 전, 김 기자가 관중석을 촬영하고 있다. 그의 오른손 팔에는 우크라이나를 기억하자는 뜻의 해바라기 문양이 새겨져 있다. 김혜윤 제공

아직 가보지 못한 세상의 경계를 향해

김 기자는 앞으로도 “남들이 보지 못하고 가지 않는 경계로 다가가 나만의 독특한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중요한 역사 현장이자 분쟁지역인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에도 가보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그는 보도사진을 인체 기관인 ‘해마’에 비유했다. 대뇌 측두엽에 자리한 해마는 오래전 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보도사진은 사회의 기억을 오랫동안 기록하는 해마와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사진기자의 길을 이제 그는 확신한다. “사회의 중요한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게 나의 일임을 매 순간 확실히 느낀다”고 김 기자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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