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1 한국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올해의 데이터 시각화 상 수상작 – KBS 창원 ‘소멸의 땅, 지방은 어떻게 사라지나’

2014년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마스다 히로야 전 일본 총무대신은 자신의 책 <지방 소멸>에서 일본의 896개 지방자치단체가 소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스다 전 총무대신의 경고는 한국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의 수도권 인구 과밀현상은 일본보다 심각했다.

이후 지방 소멸이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됐다. 2020년 <KBS창원> 취재팀은 인구감소를 겪는 지방도시로 향했다. 5개월 동안 1000km가 넘는 거리를 다니며 한국과 일본의 17개 도시를 현장 취재했다. 수많은 지역민들과 10명의 전문가를 만났다. 취재팀은 이야기를 색다른 방법으로 엮었다. 데이터를 시각화해서 인터렉티브 기사를 만들었고, 증언을 모아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기사가 보도되자 반향이 일었다. 지방 소멸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취재팀은 데이터저널리즘 코리아가 주관하는 2021 한국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에서 올해의 데이터 시각화 상을 받았다.

2014년 마스다 히로야 전 총무대신은 책 지방 소멸을 펴냈다. 이후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일본과 한국에 확산됐다. ⓒ KBS
2014년 마스다 히로야 전 총무대신은 책 지방 소멸을 펴냈다. 이후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일본과 한국에 확산됐다. ⓒ KBS

간접체험의 장 ‘인터렉티브 기사’

‘인터렉티브 기사’는 기존 뉴스 형식을 파괴한다. 기자는 글과 영상과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서 기사를 제작한다. 독자는 오감으로 기사를 체험할 수 있다. 그만큼 몰입도가 높다. 취재팀은 시각화된 데이터와 시청각 자료로 인터렉티브 기사를 만들었다.

일반 지도(왼쪽)와 카토그램으로 구현한 지도(오른쪽)의 모습이다. 취재팀은 카토그램 기법으로 수도권 인구집중현상이 기형적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 KBS
일반 지도(왼쪽)와 카토그램으로 구현한 지도(오른쪽)의 모습이다. 취재팀은 카토그램 기법으로 수도권 인구집중현상이 기형적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 KBS

취재팀은 박주용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연구실과 협력했다. 이들은 인구지도를 ‘카토그램’으로 구현했다. 카토그램은 특정 통계를 바탕으로 지도를 왜곡해서 표현하는 공간 시각화 기법이다. 인구가 많은 지역이 크게 나타난다. 취재팀은 인구수를 토대로 카토그램 지도를 그렸다. 국토의 11.5%가 국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나타났다.

취재팀은 공개된 데이터로 시각 자료를 만들었다. 이렇게 축적된 자료를 이용하는 방법을 ‘아카이브 저널리즘’이라 부른다. 취재팀은 통계청의 읍면동 빈집 지도를 인터렉티브 기사에 넣었다. 독자가 지역을 입력하면 그 지역의 빈집 숫자와 빈집이 차지하는 비율이 나타난다. 비율이 높을수록 색이 붉어진다. 빈집은 지방 소멸의 흔적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붉은색이 짙다.

취재팀은 소멸하는 지역을 더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20년 지방 소멸 위험 지도’를 자체 제작했다. 독자는 지도를 통해 고향의 소멸위험 여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지방 소멸을 간접 체험하는 것이다.

데이터와 독자를 연결하는 스토리텔링

데이터로 드러낼 수 없는 현실이 있다. 카토그램이나 빈집 지도는 지방 소멸의 원인을 드러내지 못한다. 문제와 원인은 사람들의 삶에 녹아있다. 취재팀은 이를 드러내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17개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10명의 전문가를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는 인터렉티브 기사와 다큐멘터리 <시사기획창 ‘소멸의 땅’ 지방은 어떻게 사라지나>에 생생하게 담겼다.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버스터미널 앞 거리는 빈 건물만 남아있다. 사람들이 떠나자 상인들은 장사를 그만뒀다. ⓒ KBS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버스터미널 앞 거리는 빈 건물만 남아있다. 사람들이 떠나자 상인들은 장사를 그만뒀다. ⓒ KBS

영상과 증언은 소멸위험지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다큐멘터리 서두에 등장하는 일본 도쿠시마현 나고로 마을은 주민 수가 27명밖에 남지 않았다. 주민들은 사람이 떠난 자리를 인형으로 채웠다. 한국의 지방 중소도시도 마찬가지였다.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젊음의 거리’에는 빈 건물과 노인만 남아 있었다. 대도시도 인구소멸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제2도시인 부산광역시의 영도구는 빠르게 늙어가고 있었다. 50년 전 아이들이 다투는 소리로 시끄러웠던 영도의 한 아파트에는 이제 떠날 수 없는 노인들만 남아있었다.

청년들은 지방 소멸의 원인을 증언했다. 청년들은 보통 수능이 끝난 뒤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이동한다. 이때 낙오된 사람들은 대학 졸업 뒤 일자리를 찾아서 다시 상경을 시도한다. 청년 인구가 유출되면서 기업들도 빠져나간다. 유능한 인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도권으로 떠나는 기업을 따라 다시 청년이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 결과, 지방의 위상은 계속 떨어졌다. 한때 서울 명문대 부럽지 않았던 경북대학교의 위상도 낮아졌다. 대기업은 경상북도에 신규 투자를 하지 않았다. 출판업계로 나아가려는 한 경북대학교 학생은 경기도 파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취재팀이 만난 신혼부부는 아이를 키울만한 신혼집을 구할 수 없었다. 서울 집값이 지나치게 비쌌기 때문이다. ⓒ KBS
취재팀이 만난 신혼부부는 아이를 키울만한 신혼집을 구할 수 없었다. 서울 집값이 지나치게 비쌌기 때문이다. ⓒ KBS

그러나 서울로 옮겨 사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상경한 청년들은 서울 집값에 치인다. 취재팀이 만난 한 신혼부부는 원룸에 신혼집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더 넓은 집을 구하려면 2억 원 이상이 필요했다. 집을 구할 여력이 없는 신혼부부는 아이를 낳는 것도 미뤘다. 아이 낳는 것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젊은 부부가 늘어나면서 저출생 문제가 생겼다. 저출생 문제는 인구감소를 가속화했다. 서울은 지방 인구를 흡수하면서 인구 증가를 억누르는 도시가 됐다.

지방 소멸에 대한 한 편의 백서

취재진은 마강래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등 10인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방 소멸의 원인을 조명했다. 수도권 집중개발로 교육기관과 기업이 서울 인근에 집중됐다. 인재를 찾는 기업들이 수도권으로 모여들었다. ‘용인 라인’과 ‘기흥 라인’ 등 기업이 내려갈 수 있는 지역의 한계선이 생겼다. 기업은 인재를 구하기 위해 한계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은 어쩔 수 없이 수도권으로 모였다. 지방의 인구 유출이 심화했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됐다.

취재팀은 마강래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등 10명의 전문가를 만났다. 전문가들은 지방 대도시까지 인구감소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KBS
취재팀은 마강래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등 10명의 전문가를 만났다. 전문가들은 지방 대도시까지 인구감소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KBS

역대 정부의 지방 소멸 대응은 실패로 돌아갔다. 공기업 등 수도권 자원을 분산하는 혁신도시는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졌다. 수도권 인구 분산을 유도할 만한 규모를 이루지 못했다. 직장인들은 수도권에서 혁신도시까지 통근했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균형발전 정책은 뒤집혔다. 수도권이 균형발전 정책 대상에 들어가기도 했다. 지방 소멸은 더 심각해졌다. 일관성 없고, 무분별한 정책이 지방 소멸을 악화시켰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처럼 <KBS창원> 취재팀은 지방 소멸 현상부터 근본 원인까지 조명했다. 이 문제를 인터렉티브 기사와 다큐멘터리로 다채롭게 드러냈다. 취재팀의 이형관 기자는 <신문과방송> 9월호에서 한 연구소가 이번 보도를 ‘지방 소멸에 대한 한 편의 백서’라고 평가했다고 소개했다.

다만, 취재팀이 내놓은 ‘지방 소멸 백서’에는 새로운 대안이 포함되지 못했다.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거점 도시를 구축하자는 방안과 일본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쳤다. 지금까지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을 만큼 지방 소멸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의 분석과 시민들의 증언, 수집한 데이터로 취재팀은 명확한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했다. 이미 지방은 소멸하고 있다. 지금 공생을 도모하지 못하면 우리는 공멸한다.

* 기사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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