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시 고암로4가길은 가정집이 늘어선 주택가다. 골목 사이에 듬성듬성 몇몇 편의점이 있지만, 대부분 마당과 대문이 있는 가정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그 가운데 여느 주택과 다를 바 없는 집 한 채가 있다. 대문은 까맣고 벽돌담은 붉다. 명패인가 싶어 들여다본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제천여자청소년단기쉼터.’

붉은 벽돌집에는 4개의 방이 있다. 그 가운데 3개는 아이들의 공간이다. 침대와 책상, 옷장으로 채워진 방은 여느 가정의 방과 다르지 않다. 방 곳곳에는 연예인의 사진과 그림이 있다. 나머지 하나의 방은 선생님들을 위한 공간이다. 선생님들은 주로 이곳에서 사무를 본다. 거실의 큰 테이블 두 개는 모두가 모여 식사나 회의를 하는 곳이다. 2022년 6월 현재, 7명의 ‘가정 밖 여자 청소년’과 6명의 선생님이 이 집에 있다.

대식구를 건사하는 가장은 노정자 소장(51)이다. 2년 전 이곳의 두 번째 소장으로 부임한 그를 지난 2일 쉼터에서 만나 이야기 나눴다.

제천여자단기청소년쉼터 담벼락에 걸린 팻말. ⓒ 윤준호
제천여자단기청소년쉼터 담벼락에 걸린 팻말. ⓒ 윤준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노 소장이 어린 시절부터 상담사를 꿈꾼 것은 아니다. 1970년, 노 씨는 충청북도 진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2남 4녀의 넷째였다. 그녀는 가난이 싫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마침 괜찮은 운동신경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육상을 했다.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100m, 200m 단거리는 물론 중거리인 1500m까지 뛰었다. 필요하면 높이 뛰기와 멀리 뛰기도 했다.

중학교 때는 필드하키를 시작했다. 노 씨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교복이 사라졌다. 노 씨의 가정 형편으로는 사복을 구매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운동부에 들어가면 무상으로 운동복을 지급해줬다. 숙식도 제공됐다. 교통비와 생활비를 줄일 수 있었다. 그녀는 운동을 열심히 했다. 입상하진 못했지만 소년체전까지 출전하는 등 제법 괜찮은 성과를 냈다.

노 씨의 운동부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무렵, 학교의 필드하키부가 해체됐다. 그녀의 방황이 시작됐다. 갑작스레 운동을 그만두자 혼란이 찾아왔다. 학업을 따라가기 벅찼고, 운동부원이 아닌 이들을 어떻게 친구로 사귀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부모님은 농사일로 바빴다. 노 씨에게 관심을 줄 여유가 부모님에겐 없었다. 그 시절의 학교에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담사도 없었다.

그녀의 방황은 고등학교까지 계속됐다. 이른바 ‘노는 친구들’과 어울려 고교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친구들과 함께 천안으로 가출했다. 일하고 싶어 공장 문을 두드려봤지만, 거절당했다. 그녀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친구들과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첫날, 처음 보는 남성들과 술을 마셨다.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덜컥 겁이 났다. 다음날 친구들과 심각하게 얘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자신들을 수상하게 보던 여관 주인이 신고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노정자 소장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 윤준호
노정자 소장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 윤준호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았어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집으로 돌아가고 난 다음이었죠.” 며칠 동안 집을 나간 딸이 돌아왔지만, 부모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신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돌고 돌아 청소년 상담으로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인천 부평에 있는 작은 병원의 원무과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번듯한 대학을 다닐 집안 형편이 아니었다. 일해서 돈을 벌었다. 일하면서 야간 대학을 다녔다. 법학을 전공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25살 되던 무렵, 결혼하면서 직장과 학교를 모두 그만뒀다. 전업주부의 삶을 택했다.

그 삶도 아주 길게 가진 못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35살 되던 해였다. 자식 둘을 거느린 전업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저 막막했다. 그 무렵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됐다. 신앙심이 생기자 새로운 의욕이 돋았다.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

학생과 가장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시댁의 도움을 빌려 생계를 해결했다. 무사히 학업을 마친 뒤, 충주중앙중학교에서 상담사 일을 얻었다. 그러던 중 다른 청소년 상담사들이 충주시에 청소년 쉼터 개소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곧 노 씨에게도 함께하자는 제안이 왔다. 그녀는 어릴 적 경험을 떠올렸다.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제천여자단기청소년쉼터는 가정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 윤준호
제천여자단기청소년쉼터는 가정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 윤준호

쉬었다 가는 곳이 아닌 ‘집’이 되기 위해

쉼터 업무 중 가장 어려운 일은 청소년들의 생활지도다. 쉼터의 목적은 청소년들의 가정 복귀와 사회 복귀다. 하지만 예민한 청소년들의 복귀를 돕는 건 쉽지 않다. 쉼터 내의 규칙과 공동체 생활에 견디지 못하고 밤에 몰래 도망가는 아이도 있었다. 쉼터를 평범한 가정집처럼 꾸민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소년들이 평범한 일상에 더 잘 적응하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 있는 청소년 쉼터에는 임시, 단기, 중장기 등 세 유형이 있다. ‘임시 쉼터’는 시내에 설치해야 한다. 접근성을 높여 가정 밖 청소년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반면 ‘단기 쉼터’와 ‘중장기 쉼터’는 반드시 주택가에 설치해야 한다. 3개월 이상 아이들이 머무르면서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줘야 한다. 쉼터에서 만난 정나영(20) 씨도 그 점을 좋아했다. 지난해 쉼터에 입소한 그는 제천여자청소년단기쉼터의 생활에 대해 “진짜 가정집 같은 느낌이어서 좋다. 아늑하고 편하다”고 말했다.

쉼터 거실에는 공지사항이나 일정이 적힌 칠판이 있다. ⓒ 윤준호
쉼터 거실에는 공지사항이나 일정이 적힌 칠판이 있다. ⓒ 윤준호

턱없이 부족한 청소년 쉼터

아이들에게 아늑한 쉼터를 마련해주려는 노 소장의 업무는 쉽지 않다. 1년에 단 하루라도 청소년 쉼터에 선생님이 없어선 안 된다. 아이들을 위한 보호자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근무량이 항상 많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제천에 오기 전까지 일했던 충주 여자 청소년 쉼터에서는 한동안 임금도 받지 않았다. 지자체는 민간에 청소년 쉼터의 운영을 맡기는데, 시의 위탁을 받으려면 실적을 평가받아야 한다. 충주 쉼터는 처음 개소하는 곳이었고 실적도 없었다. 시의 지원금 없이 쉼터를 운영하느라 선생님들은 임금을 미루고 유지비를 스스로 조달했다.

제천여자단기청소년쉼터의 상황도 비슷하다. 쉼터 운영은 민간 법인이 하지만, 건물을 매입하고 소유하는 건 제천시다. 위탁 운영 협약이 종료된다면 법인은 건물뿐만 아니라 가구와 집기 등을 모두 두고 나와야 한다. 시 예산으로 사들인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

청소년복지 지원법 제16조 1항에 따르면 여성가족부장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청소년의 가출을 예방하고 가출한 청소년의 가정·사회 복귀를 돕기 위하여 청소년 쉼터의 설치 등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 2022년 제천시의 청소년 쉼터 보조금 예산은 2억 5800여만 원이다. 여기에 후원금과 법인전입금 등을 합쳐 3억 3000여만 원으로 쉼터 살림을 꾸려 간다. 아이들 7명의 생활비와 6명의 선생님 임금을 부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24시간 운영해야 하는 쉼터 특성상, 선생님들의 밤샘 근무와 휴일 근무가 잦다. 그만큼 임금도 늘어난다. 작년 쉼터 전체 세출의 73.2%가 인건비였고, 21.9%가 아이들의 생계비를 포함된 사업비였다. 노 소장은 “(제천시) 보조금만으로는 입소 청소년들을 위한 생계비와 교육비 등을 충당하기 어렵다. 후원금과 외부공모사업을 통해 사업비를 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정자 소장이 청소년 쉼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윤준호
노정자 소장이 청소년 쉼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윤준호

이런 사정 때문에 노 소장이 일하는 제천여자단기청소년쉼터는 제천시 유일의 청소년 쉼터다. 남자 청소년을 위한 쉼터는 없다. 일시 쉼터와 중장기 쉼터도 없다. 일시 쉼터는 일주일까지 머무를 수 있으며 주된 역할은 가정 밖 청소년들을 찾아내 쉼터로 인도하는 것이다. 중장기 쉼터는 최대 2년까지 머무를 수 있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보호가 가능하다. 예산이 부족하므로 그런 쉼터를 더 만드는 것은 아직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대신 제천여자단기청소년쉼터가 인근 지역까지 포괄하는 일시 쉼터와 장기 쉼터의 역할까지 떠안고 있다.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청소년 쉼터는 2022년 1월 기준 135개소다. 그마저도 서울 16개소, 경기도 33개소로 수도권에 집중돼있다. 2021년 국회입법조사처의 ‘홈리스 청소년 지원 입법·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가출 경험이 있는 학생은 11만 5741명이다. 이는 학업 중단 청소년이 제외된 조사로, 실제 가출 청소년의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또 가정 밖 청소년 4명 중 1명은 가출 이후 노숙 경험이 있었다. 더 많은 청소년 쉼터를 더 많은 지역에 설치해야 할 절실한 이유다.

장애인 임상 심리에서 다시 청소년 쉼터로

노 소장은 청소년 상담·복지의 길에서 잠시 이탈하기도 했었다. 충주시 청소년 쉼터에서 ‘번아웃’을 겪었기 때문이다. 시 보조금이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주야간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식사와 청소까지 도맡았다. 주말 휴식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당시 쉼터에는 3명의 선생님이 일했다.

자녀와 갈등도 있었다. “첫째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나도 쉼터 아이들처럼 똑같이 관심받고 엄마 밥 먹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내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죠.” 그 후 노 씨는 쉼터 일을 그만두고 1년간 쉬었다.

마냥 끈을 놓지는 않았다. 청소년 쉼터 일을 하면서 겪었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임상 심리 자격증을 취득했다. 아이들의 심리를 더 잘 알게 됐다. 정신질환에 관해서도 공부했다. 직접 임상 심리를 경험하기 위해 장애인 시설에서 일했다. 그러나 청소년들과 긴 시간을 보낸 노 씨에게 장애인 시설은 너무 정적이었다. “뭐랄까,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열망이 내 마음속에 있더라고요. 더 큰 성취와 효능감이 필요했어요.”

마침 충주시 청소년 쉼터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가 제천시 여자청소년쉼터를 추천했다. 쉼터에는 새 소장이 필요했다. 그렇게 그는 제천시여자청소년쉼터의 소장으로 취임했다. 휴직과 임상 공부, 장애인 시설을 거쳐 다시 청소년 쉼터로 돌아왔다. 2년 전의 일이다.

쉼터 담벼락에는 청소년들이 직접 그린 벽화가 있다. ⓒ 조성우
쉼터 담벼락에는 청소년들이 직접 그린 벽화가 있다. ⓒ 조성우

봄의 아이들

쉼터에는 1년 동안 평균 20~25명의 가정 밖 청소년이 다녀간다.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아이들을 포함하면 연 50명 정도가 이곳을 거친다. 쉼터 내 자리가 없어 머물지 못하거나 정신질환 등의 병력이 있어 입소를 거절할 수밖에 없는 경우는 연 20건 정도다.

쉼터에 입소하는 아이들은 대개 중고등학생이다. 중학생은 30%, 고등학생은 50% 정도다. 성인이 되어서도 쉼터를 찾는 경우가 있다. 쉼터에 머물 수 있는 연령은 만 9세부터 만 24세까지다.

아이들이 이곳을 찾아오는 이유는 대부분 가정 내 문제이다. 학대나 폭력 등을 경험한 아이들이 많다. 뒤늦게 찾아온 부모의 설득으로 퇴소하지만, 쉼터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가끔 자립에 성공하는 사례도 있다. “쉼터에 머물다가 공무원이 된 아이가 있어요. 적은 금액이지만 기부도 하고, 종종 먹을 걸 사 들고 와요.” 그 말을 하면서, 노 소장은 흐뭇하게 웃었다.

선생님도, 상담사도 아닌 ‘작은 엄마’

아이들에게 쉼터는 집이다. 집을 나온 아이들에게는 집뿐만 아니라 부모도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쉼터에 선생님이 없는 걸 싫어한다.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는 것처럼 허전하기 때문이다.

쉼터 청소년들은 마당에서 직접 채소를 키운다. ⓒ 윤준호
쉼터 청소년들은 마당에서 직접 채소를 키운다. ⓒ 윤준호

“밥을 챙겨주는 거에 대해서 아이들이 마음의 안정을 많이 얻어요. 먹든 안 먹든 밥 차려주고 치워주는 것, 먹을 때 같이 바라봐주는 것, 이런 관심으로부터 안정감을 얻는 거죠.” 노 소장은 쉼터를 나간 아이들의 밥도 챙겨준다. 자립한 아이 중 하나는 생활이 어려워 가끔 밥을 먹으러 쉼터에 온다. 그럴 때면 쌀과 김치, 고추장 등 먹을거리를 손에 들려 보낸다. 인사말도 덧붙인다. 명절에도 꼭 찾아오라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노 소장은 쉼터 아이들의 학교를 찾아가 담임 교사를 만난다. 혹여라도 시설에 머무르는 아이라고 홀대받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쉼터 사람들이 모여 영화를 보러 갔다. 쉼터 아이 중 한 명이 친구를 데려왔다. 노 소장은 그 친구에게 자신을 “○○의 작은 엄마”라고 소개했다. 노 소장과의 관계를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쉼터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또한, 노 소장 스스로 쉼터 아이의 엄마라고 자각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떨어져 아빠와 사는 쉼터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크죠. 그만큼 나도 아이들에게 자식 같은 애착을 느껴요.”

쉼터에 머무는 청소년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직접 십자수로 만들었다. ⓒ 조성우
쉼터에 머무는 청소년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직접 십자수로 만들었다. ⓒ 조성우

쉼터의 목표는 명확하다. 아이들이 원하는 직업을 찾고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것이다. 특히 충분히 자립할 수 있게 경제 교육 프로그램을 쉼터에서 진행하는 것이 노 소장의 목표 중 하나다. 다만 거기서 그치진 않는다. “욕심내자면, 아이들이 자립한 뒤에 남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받은 만큼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게 또 다른 목표죠.” 엄마는 아이의 성공을 바란다. 동시에 바른 사람으로 크길 바란다. 노 소장의 마음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제천시여자단기청소년쉼터의 정식 이름은 ‘봄’이다. 쉼터는 2년 전 봄에 개소했다. 돌봄, 마주봄, 바라봄, 해봄, 쳐다봄, 들여다봄 등의 뜻도 갖고 있다. 제천시 봄 청소년쉼터에는 돌보고 마주 보며 봄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

후원계좌 농협 351-1072-9996-43 예금주: 제천여자단기청소년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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