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1년 한국방송기자대상 수상작 – MBC '대한민국 나쁜 집주인 리포트'

탐사보도는 이면의 사실을 드러낸다. 이를 위해 실증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취재를 벌인다. 탐사보도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한 기자이자 정밀 저널리즘을 주창한 언론학자인 필립 마이어(Philip Meyer)는 1976년 미국 디트로이트 폭동의 원인을 분석한 기사로 유명하다. 폭동 이후 많은 언론은 교육 수준이 낮은 남부 출신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단정하는 보도를 내놨다. 마이어는 그 판단에 근거가 있는지 의구심을 품었다. 폭동 지역 흑인 거주자 437명을 무작위 표집 방식으로 추출했다. 교육 수준과 폭동 참여 여부, 출신지 등 조사했다. 조사 결과, 통념과 달리 북부 출신이 폭동에 더 많이 참여한 경향이 드러났다. 교육 수준의 차이는 없었다.

이준희 MBC 기획취재팀 기자도 비슷한 의심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종종 발생하는 전세금 미반환 사건의 책임이 관련 서류를 잘 살펴보지 않은 세입자에게 있다는 통념이 만연했다. 그런 인식의 잘못이 무엇인지 반박하고 싶었다고 이 기자는 한국방송기자상 시상식에서 말했다. <대한민국 나쁜 집주인 리포트>(이하 ‘나쁜 집주인’) 보도의 시작이었다.

전세 사기를 다룬 보도는 <나쁜 집주인> 이전에도 많았다. 2019년 ‘전세 보증금 사기’ 키워드로 보도된 기사만 219건(빅카인즈 기준)이었다. 하지만 전세 사기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전세 사기의 책임이 세입자에게 있다는 인식도 유지됐다.

취재팀은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를 찾았다. 모친과 합쳐 900채 가까운 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보증금을 꾸준히 돌려주지 않은 김 씨(44)에 주목했다. 취재 마지막 순간까지 이름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었던 김 씨는 2019년 6월부터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방송으로 보도된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취재팀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김 씨가 소유한 건물을 확인했다. 김 씨와 김 씨 모친 명의로 된 집 900채 가운데 653채의 주소를 파악했다. 그 집마다 우편을 보내 세입자에게 설문조사를 요청했다.

취재팀은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보증공사)가 집계한 보증사고 자료도 입수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수도권 42개 구 가운데 36개 구의 임대사업자 정보를 전수조사했다. 세무 전문가와 함께 보증금을 2회 이상 돌려주지 않은 나쁜 집주인이 누린 세제 혜택을 분석했다.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한 사람만 60명 가까이 됐다.

4명의 취재 기자와 4명의 리서처가 1년에 가까운 시간을 쏟았다. 취재 내용은 지난해 6월 7일부터 사흘 동안 방송 뉴스로 보도됐다. 초반에는 김 씨 같은 나쁜 집주인이 대량의 건물을 구입한 내막을, 후반에는 부동산 생태계와 정부 정책을 조명했다.

3분 길이의 방송 리포트 7개에 담기에는 취재한 정보가 너무 방대했다. 취재팀은 방송 뉴스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보도를 확장했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팩트체크 누리집에 취재 내용을 공개했다. 관련 내용을 담은 인터렉티브 누리집도 따로 만들었다. 인터렉티브 누리집엔 방송 리포트가 나간 뒤 일어난 정책 변화와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추가했다. 일련의 보도로 여러 상을 받았다. 한국방송기자연합회가 주는 한국방송기자대상 뉴미디어부문상, 한국방송기자클럽이 주는 올해의 방송기자상 전문보도부문 대상, 한국조사연구학회가 주는 한국조사보도상 방송부문상 등을 휩쓸었다.

자료 분석과 인터뷰, 현장 아우른 1년여 취재

전세금 미반환 사고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보증공사가 전세보증금 반환을 보증했다가 대신 물어준 건만 2016년 30건에서 2019년 3442건, 2020년 4682건(보증공사 보증사고현황 자료, 20년 12월 30일 기준)까지 치솟았다. 그 이면에 전세보증금을 받아 건물을 구매한 비용을 메꾸는 갭(Gap, 사이) 투기가 있다는 점을 취재팀은 발견했다. 집주인들은 새로운 건물을 구매하자마자 전세를 내놓고 보증금을 받은 뒤, 또다른 건물을 구매했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세금 부담도 피할 수 있었다.

갭 투기자는 매매가 이상의 전세가를 불렀다. 전세보증금을 많이 받아 건물 매매 비용을 대신하면 돈 한 푼 내지 않고 건물을 살 수 있었다. 취재팀은 보증사고를 많이 낸 집주인 소유의 집 가운데 주소를 파악할 수 있는 곳의 등기부 등본을 확보했다. 매매가와 전세가가 명시된 37곳을 비교했다. 전세가가 매매가 이상인 곳이 30곳이나 됐다.

20~30대인 전세사기 피해자 6명은 각자 다른 집주인과 계약했지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나쁜 집주인' 인터렉티브 누리집 갈무리
20~30대인 전세사기 피해자 6명은 각자 다른 집주인과 계약했지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나쁜 집주인' 인터렉티브 누리집 갈무리

취재팀은 나쁜 집주인과 계약한 세입자도 만났다. 특히 김 씨와 계약한 세입자 가운데 절반 이상인 284명을 설문조사했다. 취재팀은 이렇게 모은 세입자의 목소리를 인터렉티브 누리집에 담았다. 김 씨 이외 다른 집주인과 계약했다 피해를 당한 세입자 6명의 사연은 일러스트를 그려 인터렉티브 누리집에 소개했다.

설문조사 결과 282명 중 절반인 131명은 계약 당시 김 씨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전력이 있다는 점을 몰랐다. 살고 있는 집이 가압류 또는 압류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경우도 많았다. 응답자 가운데 134명은 김 씨 또는 그 대리인과 아예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규모가 작은 빌라의 세입자였다. 설문에 답한 90%가 2억 5천만 원 이하의 전세보증금을 주고 김 씨 소유의 집에 들어왔다.

방대한 자료를 파고든 집요한 취재

세입자 가운데 70%는 20~30대였다. 아파트를 구매할 여력이 없어 작은 평수의 빌라를 택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등기부 등본을 미리 확인했고, 계약과 동시에 주민센터에 전입을 신고하고 확정일자를 받았다. 그래도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집주인의 행패에 속수무책이었다. 보증공사의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입자 가운데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려고 대출을 낸 경우가 90%였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세입자도 적지 않았다.

부동산 업자는 무자본으로 건물을 구매할 수 있다며 갭 투기를 부추긴다. '나쁜 집주인' 인터렉티브 누리집 갈무리
부동산 업자는 무자본으로 건물을 구매할 수 있다며 갭 투기를 부추긴다. '나쁜 집주인' 인터렉티브 누리집 갈무리

취재팀은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현장도 찾았다. 신축 빌라 갭 투기에 관심이 있는 빌라 매수자와 전세금을 낼 세입자를 중개해주는 부동산 업자들을 직접 만났다. 부동산 업자들은 세입자에게 높은 금액의 전세보증금을 받아냈다. 원래 건축주로부터 건물을 매입하고도 상당한 차액이 남으면, 그 돈을 새로운 건물주가 된 갭 투기자와 부동산 업자가 나눠 가졌다. 부동산 중개인이 적극적으로 갭 투기를 조장하면서 ‘나쁜 집주인’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조직적으로 전세 사기를 조장하고 방관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책임을 데이터로 입증하다

나쁜 집주인 김 씨는 정부가 임대사업자 혜택을 확대한 4년 동안 600채 가까운 집을 구매했다. '나쁜 집주인' 인터렉티브 누리집 갈무리
나쁜 집주인 김 씨는 정부가 임대사업자 혜택을 확대한 4년 동안 600채 가까운 집을 구매했다. '나쁜 집주인' 인터렉티브 누리집 갈무리

취재팀은 나쁜 집주인 김 씨가 사들인 집의 개수와 위치를 시기별로 정리했다. 김 씨는 2015년 9월부터 2018년 2월까지 30개월 동안 매달 평균 20채의 집을 샀다. 정부는 2015년부터 주거 안정을 위한다면서 주택임대사업자 세제 지원을 확대했다. 소형주택 임대사업자의 소득세와 법인세 감면율이 높아졌다. 2017년 들어서는 1년 동안 3억 이하 소형주택 전세보증금에 과세하지 않겠다는 정책도 내놨다. 소형주택 임대사업 혜택이 커진 틈을 타고 나쁜 집주인들이 소형 빌라를 사들였다. 취재팀은 이를 그래프로 나타냈다.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정부 정책과 전세 사기 사이 긴밀한 연관이었다.

'나쁜 집주인' 보도는 영국 런던 시 정부에서 운영하는 ‘나쁜 집주인/부동산 정보 공개 서비스’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런던 시 정부 누리집 갈무리
'나쁜 집주인' 보도는 영국 런던 시 정부에서 운영하는 ‘나쁜 집주인/부동산 정보 공개 서비스’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런던 시 정부 누리집 갈무리

전세 사기를 막기 위한 정책도 있었지만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2011년 개정된 임대주택법은 전세계약을 할 때 가압류나 압류, 밀린 세금 내역을 알려야 한다고 명시했다. 취재팀이 만난 세입자 모두 계약 당시 이를 고지받지 못했다고 했다. 법이 바뀌어 고지가 의무인 줄 몰랐다고 주장한 부동산 중개인도 있었다.

2019년 12월에는 ‘임대보증금 미반환 등으로 임차인의 피해가 명백한 경우’, 임대사업자 등록을 지자체장이 말소할 수 있는 규정이 발표됐다. 취재 결과, 시행 6개월 동안 등록이 취소된 임대사업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압류 이후 1년 이상 걸리는 경매 과정도 정책의 빈틈이었다. 집주인은 압류당해 경매가 진행되는 집에도 초단기 월세 세입자를 받았다. 본인 명의로 월세를 받을 수 없으니 중간 모집책을 끼우고 이들과 수익을 나눴다.

1년 넘게 후속 보도하며 촉구한 변화

올해의 방송기자상 시상식에서 이준희, 장슬기 MBC 기자가 전문보도 부문 대상 상패를 들고 있다. MBC 유튜브 갈무리
올해의 방송기자상 시상식에서 이준희, 장슬기 MBC 기자가 전문보도 부문 대상 상패를 들고 있다. MBC 유튜브 갈무리

MBC 취재팀은 최근까지 전세 사기 관련 보도를 하는 중이다. 지난달에는 나쁜 집주인의 의도성을 조명한 집중취재물을 보도했다. 보증공사의 여러 제도를 추가로 살펴보고, 제도에도 불구하고 늘어나고 있는 피해를 확인해 보도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엔 대통령 인수위원회의 주장대로 임대차 3법이 전세값 폭등의 배경인지를 검증 보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나쁜 집주인 리포트'는 끝나지 않았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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