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취재] 장애인 시외이동권 현주소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자>] 

"97년도에 버스를 분명히 만든다고, 저상버스. 장애인들 아무나 자유롭게 탈 수 있는 버스 만들어 준다고 분명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저희들을 불법으로 내몰고 있는 건 누구란 말입니까?"

[기자]

2001년 광화문 세종문회회관 앞에서 네 시간의 버스 점거 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현재. 장애인 이동권, 그중에서도 지역과 지역을 오가는 시외이동권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청주에 사는 한승희 씨는 지난해 10월 갑작스러운 부친상을 당했습니다. 

그가 사는 청주에서 고향 진천을 가야 했습니다. 두 지역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습니다. 

청주북부터미널에서 진천종합터미널까지의 거리는 25km.

시외버스로 22분 걸리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는 그가 이용할 수 있는 시외버스는 전국에 한 대도 없습니다. 

국토교통부는 2019년 발표한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계획 변경안을 통해 휠체어를 탄 채 이용할 수 있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를 도입하고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19년 10대로 시범사업을 시작해 2020년에 10대, 2021년에 20대를 늘려 총 40대로 확대하겠다는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휠체어에 탄 채 탑승 가능한 고속버스는 2019년에 시범사업으로 도입한 10대가 전부입니다. 전체 고속버스 1767대 가운데 0.56%에 불과한 데다 노선도 4개뿐입니다.

더구나 실제로 고속버스 예매 사이트에서 예매할 수 있는 노선은 서울에서 당진으로 가는 한 개 노선밖에 없습니다.

다른 노선을 운영하는 버스회사들에서는 휠체어에 탄 채 탑승 가능한 고속버스를 수리중이라며, 기약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서울↔강릉 노선 버스회사 관계자]

“저희는 강릉만 가는데 지금 저희는 차량에 문제가 있어서 수리를 하고 있습니다. (수리가 언제 끝날지는) 기약이 없습니다, 저희도.”

[서울↔부산 노선 버스회사 관계자] 

“차량이 조금 문제가 있어서 정비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 사실상 현재 상태로는 운행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정난도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 운행을 막고 있지만, 정작 정부 지원금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사업 예산 가운데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운행을 지원하는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지원 사업은 매년 예산이 줄고 있는데 올해에는 작년의 십억 원에서 절반이나 삭감됐습니다.

장애인단체들은 지난 2014년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공익소송을 제기해 2심에서 버스 회사가 휠체어 승강설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2월 이 판결이 잘못됐다며 파기환송했습니다.

[윤정노/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휠체어 승강설비를 설치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거냐는 게 이제 당장의 문제인데요, 행정계획을 세우고 그거에 따라서 휠체어 승강설비 등의 도입을 관리·감독하고,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조치도 취하고 그런 것들을 해야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장애에 대한 차별이다라고 하는 게 저희 청구 원인 중에 하나거든요. 그렇지만 대법원에서는 그것이 차별 행위라고 인정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부분도 상당히 좀 아쉽죠.”

결국 휠체어석을 보유한 기차를 타는 것이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외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현재 열차 한 편당 수동 휠체어는 3~4대, 전동휠체어는 최대 2대밖에 수용하지 않습니다. 

[조한진/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장애인들 같은 경우는 5명만 넘어도 목표 지점이 똑같다면 차등을 해서 더 빨리 가거나 해서 하지 않고는 같은 시간에 모일 수가 없는 거니까 이건 상당히 불편한 노릇입니다. 일본은 좌석과 좌석 사이도 넓고. 근데 우리는 특실에서조차 휠체어가 중간에 못 지나갑니다. 좌석 수를 더 늘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또 그렇게 해야 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충북 오송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권은춘 충북장애인파별철폐연대 대표를 동행했습니다. 권 대표는 휠체어석이 좁은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권은춘/충북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이게 비장애인들은 (돌 때) 그냥 여기서 살짝 움직이면 되는데, 저희는 이렇게 돌아 가지고 이렇게 해야 되거든요. 그만큼 확보할 공간이 배로 필요하거든요. (아 이게 휠체어가 돌 때 움직임이 크니까) 네네 근데 비장애인들은 그거를 정확히 모르잖아요. 기계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그런 걸 좀 잘 이해를 못 하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취재진이 줄자로 재본 결과, 권은춘 대표의 전동휠체어는 가로 68cm, 세로 92cm였습니다.

열차 누리로의 경우, 전동휠체어 두 대와 수동휠체어 한 대가 한 번에 들어가는 휠체어석의 세로 폭은 248cm로 세 대의 휠체어가 움직이기 빠듯합니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열차 한 편당 전동휠체어 6대를 수용할 수 있는 신칸센을 새로 도입했습니다.

[오다 유리코/휠체어 이용 정보 앱 WheeLog 대표]

"새로 도입된 신칸센의 경우, 차량에 (휠체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게 확보됐기 때문에 휠체어를 탄 채 U턴이 되고, 센서에 반응해서 문이 열린다거나 하는 일이 없고요. 판매용 카트에 휠체어가 부딪히거나 하는 경우도 사라져서 굉장히 쾌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연희/충북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

“(장애인 시외이동권의 의미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가능성인 것 같아요. 삶의 가능성인데 아직까지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의 기반이 많이 갖춰져 있는 게 별로 많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기 전에 못 할 거라고 포기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시외이동도 그런 포기의 연장선에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이 들어요.”

[기자]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지체장애인의 경우 55% 가량이 후천적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장애인 이동권. 누군가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나 자신의 이동권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국가의 역할이 있습니다.

단비뉴스, 이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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