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휠체어 장애인의 조문할 권리

어른들의 말씀 중에 “결혼식은 못 가도 장례식은 꼭 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장례식이 중요하게 인식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우리는 가끔 뜻하지 않게 주변 사람의 부고 소식을 접한다. 하지만 친지의 부고를 접하고도 혼자 조문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이다. 장례식장 접근부터 분향소 입구의 턱까지, 장애물을 넘어야 비로소 분향소에 들어갈 수 있다.

조문은 사회적인 의무인 동시에 권리다. 누구나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할 권리가 있다.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는 접근권을 명시하고 있다. 장애인 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장애인 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하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넘기 힘든 10cm의 턱

초등학교 때부터 근육병을 앓고 있는 중증장애인 정영만(43) 씨는 2003년부터 19년째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20여 년 전보다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개선돼 건축물 입구에 경사로가 마련돼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정 씨는 여전히 방문이 어려운 곳으로 장례식장을 꼽았다. 정 씨는 1년에 1~2번, 많게는 3~4번 장례식장에 간다. 가까운 지인이나 지인의 가족,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다. 그런 장례식장을 갈 때마다 가장 걱정되는 건 장례식장 건물 입구보다 분향소 바로 앞에 있는 얕은 ‘턱’이다. 10cm 내외의 턱을 넘으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9일 촬영한 서울의 한 장례식장 분향소 앞, 휠체어 장애인이 오르기 어려운 단차가 있다. ⓒ 이주연
지난달 9일 촬영한 서울의 한 장례식장 분향소 앞, 휠체어 장애인이 오르기 어려운 단차가 있다. ⓒ 이주연

장 씨는 아내의 도움으로 앞바퀴를 들어 올리고는 뒤에서 밀어 올라가는 요령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턱이 낮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수동휠체어는 비교적 가벼워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지만, 전동휠체어는 사람이 앉아 있으면 100kg이 훌쩍 넘는다. 양쪽에서 두 명이 들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장례식장에 경사로를 요청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경사로는 장례식장의 필수 구비 품목이 아니다. 미리 장례식장에 전화해 확인해야 한다. 장 씨는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못 하고 돌아온 적이 두 번 있다고 했다. 가까운 사람의 장례에는 턱 앞에서 업혀 올라간 적도 있다고 했다. 업혀서 올라간 곳에서는 꼼짝도 할 수 없다. 장 씨는 분향소 바닥에 앉아 “비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절반 이상이 ‘예외’인 장례식장 편의시설 의무설치

현행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제7조는 장례식장을 편의시설 설치 의무대상으로 두고 있다. 외부의 주 출입구 접근로뿐 아니라 내부의 출입구, 복도 등에도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명시된 편의시설 설치기준에 위반될 때 시설주관기관은 시설주에게 시정명령 조치를 할 수 있으며, 시정명령을 받고도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은 시설주에게 3천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대상시설에 예외 조항이 있다. 대표적으로 의료시설의 부수시설에 해당하는 장례식장이 이 예외에 해당한다. 문제는 절반 이상의 장례식장이 ‘의료시설의 부수시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e-하늘 장사정보’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장례식장은 모두 1137곳이다. 이 중 병원 부설 장례식장은 635곳으로 55.8%다. 절반이 넘는 장례식장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17%만의 결과인 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

이 사각지대는 장애인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정부는 지자체와 함께 5년마다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를 전수조사해야 한다. 가장 최근인 2018년 조사를 보면 장례식장의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율은 81.4%로 적정설치율인 74.2%를 웃돌고 있다. 장례식장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말만 전수조사일 뿐 실제로 조사가 이뤄진 대상시설수는 338곳뿐이다. 2018년 당시 장례식장 수가 1949곳임을 고려하면 17%에 해당하는 일부의 건물만이 조사대상이 됐다. 의료시설의 부수시설이 제외됐고, 바닥면적 500제곱미터 이상의 공공이용시설만 의무 조사대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2012년 8월 24일 이후 신축이나 증축 등이 된 장례식장만 조사 대상에 해당한다.

‘출입구(문)’의 단차는 2cm 이하여야 하지만, 분향소로 들어가는 입구는 이 ‘출입구(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 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 갈무리
‘출입구(문)’의 단차는 2cm 이하여야 하지만, 분향소로 들어가는 입구는 이 ‘출입구(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 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 갈무리

장례식장 조문을 가장 어렵게 하는 단차에 대한 법적 기준도 모호하다. 편의시설의 구조나 재질 등에 관한 장애인등편의법의 세부기준에 따르면 주접근로에 단차는 2cm 이하로 제한된다. 하지만 분향소나 식당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장애인등편의법 상의 ‘출입구(문)’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로 문이 있지 않기 때문에 ‘내부’로 인식되는 것이다. 건물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나 출입문에서 휠체어가 통과 가능한 최소한의 간격인 1.2m 범위 안에만 단차가 없으면 되고 문에서부터 안으로 1.2m 이상 들어간 곳부터는 이런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뭉뚱그려진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여부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은 전국 장례식장의 장애인편의시설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각 장례식장의 시설정보에 장애인 표시가 되어 있으면 장애인편의시설이 있다는 의미다. 전체 장례식장 1137곳 중 53.8%인 612곳에 장애인편의시설 표시가 있다. 절반이 조금 넘는 수치다. 하지만 장애인편의시설 표시가 되어 있어도 어떤 장애인편의시설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관계자는 “장례식장에서 정보를 보내오기 때문에 어떤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애인편의시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각 장례식장에 전화해 문의해보는 수밖에 없다.

장례식장 1137곳에 대한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여부. 612곳의 장례식장에 장애인편의시설 표시가 있다. ⓒ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갈무리
장례식장 1137곳에 대한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여부. 612곳의 장례식장에 장애인편의시설 표시가 있다. ⓒ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갈무리

‘편의’가 아닌 접근성에 대한 ‘기본 권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지난해 11월 조문이 어려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크게 장애인등편의법을 개정하는 것과, 다른 법에서 편의시설 의무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다. 장애인제도개선솔루션의 장유진 간사는 “장애인등편의법의 대상시설에 포함된 장례식장의 예외조항이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원부설 장례식장도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 설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문이 따로 없이 열린 공간에 단차만 있는 장례식장 분향소 특성상 문이 없는 곳이라도 단차가 없어야 한다는 규정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애인등편의법 외에 다른 법을 통한 구체적 기준 마련도 필요하다. 장 간사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도 장애인 편의시설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법에는 장사의 방법과 장사시설의 설치·조성에 관한 사항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언급은 없다. 장 간사는 당장 모든 건물에 현실적으로 단차를 제거하기는 어렵지만 법 조항을 통해 이동식 경사로 등 장애인 편의를 위한 장치를 구비하도록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지난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접이식 식탁, 이동식 경사로 등을 구비하도록 명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 장 간사는 “장례식장 편의시설 필요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을 이유로 꼽았다. 일상적으로 다니는 곳이 아니다 보니 편의시설을 마련해달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영만 씨는 장애인등편의법이라는 법의 명칭에서부터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장례식장 시설 등을 이용하는 것은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장소에 대한 접근은 인간이 가진 기본권이다. 편의시설이라 이름 붙은 시설들은 고령자, 영유아, 임산부 등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시설이다. 정 씨는 장애인 이동권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장례식장 시설 문제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장애 때문에, 턱 때문에, 마지막 길에 조문할 수가 없었을 때 오히려 상처를 받고 돌아왔다”며 “최소한 30~40만 원 하는 이동식 경사로라도 구비되도록” 제도가 개선되길 바란다고 했다. 장 간사는 “비장애인만 갈 수 있는 곳은 없어야 한다”며 “장애인 편의시설 마련 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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