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제11회 인권보도상 본상 수상작 – 셜록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스물두 살 청년 강도영(가명)은 가난한 형편에도 불치병을 치료하려 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그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비싼 수술을 택했다. 이후 빚더미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다. 2천만 원의 병원비가 청구됐다. 3개월 치 월세와 전기료, 가스비, 인터넷 이용료 등이 연체됐다. 난방이 들어오지 않았고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었다. 간병인을 구할 돈이 없으니 간병도 직접했다. 두 시간마다 아버지를 돌아 눕혔다. 코에 호스를 직접 연결해 음식물을 넘겨줬다. 수시로 대소변이 묻은 기저귀를 갈았다. 그러느라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었다. 생활비를 벌어올 방법이 없었다. 쌀을 살 2만 원도 없었다.

형편을 알아차린 아버지가 말했다. “필요하면 부를 테니 그때까지는 방에 들어오지 말아라.” 뇌출혈로 사지가 마비된 아버지는 아들의 간병을 말렸다. 2021년 5월 8일 어버이날, 강도영은 방 안에서 숨진 채 누워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강도영은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강도영이 형을 선고받은 날 국내 주요 언론은 ‘아버지를 굶겨 사망케 한 20대 아들’ 등의 헤드라인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가 내린 판결을 토대로 한 기사였다.

강도영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필요하면 부를 테니 그때까지는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 ⓒ 셜록
강도영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필요하면 부를 테니 그때까지는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 ⓒ 셜록

탐사보도 전문 매체 <셜록>의 박상규 기자는 강도영과 그의 주변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박 기자는 강도영이 살던 집의 주인, 그가 잠시 일했던 편의점의 사장, 그가 도움을 요청했던 행정복지센터, 아버지가 수술을 받았던 병원 관계자, 그리고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정보의 원천에 접근해 이를 여러 차례 검증하는 취재를 통해 15화에 걸친 탐사 연재 기사,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를 보도했다. 박상규 기자는 이 기사로 올해 2월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수상하는 제11회 인권보도상을 수상했다.

원천보도가 바꾼 사회의 흐름

이 기사 제목만 봤다면 패륜 사건으로 알았을 것 같아요. 자세히 보도해 주셔서 도영 씨에게 두 번의 상처 주지 않게 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 (YTN <김혜민의 이슈&피플> ‘박상규 기자 편’에서 청취자가 보낸 문자 메시지 2021. 11. 05)

고정관념이 아닌 사실에 기초한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왜곡되거나 조작되지 않은 정보의 원재료가 취재와 보도의 대상이 돼야 한다. 박상규 기자는 1심 재판 이후 강도영과 약 1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강도영의 동네 이웃과 집주인을 만나고, 아르바이트 현장을 찾았다. 강도영의 동의를 받아 우편함에 쌓인 빚 독촉 우편물도 열어봤다. 2천만 원의 병원비 가운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돌려주는 본인부담금 환급금은 2040원뿐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더 많은 의문이 생겼다.

강도영의 어머니가 가출한 초등학교 1학년부터 그가 아버지와 둘이 살았고, 대학교를 휴학하고 입대를 앞둔 상태였다는 것을 박 기자는 확인했다. 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국민의료보험 적용 후에도 병원비가 2천만 원이나 청구되면서 둘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중 비급여 항목이 750만 원이었고, 국가가 지원하지 않는 간병비가 600만 원이었다. 10살 이하의 두 아이를 둔 삼촌이 몰래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병원비를 부담하다가 결국 가정불화를 겪게 됐다. 그렇게 벼랑 끝에 몰린 강도영은 아버지의 퇴원을 결정한 것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기간 박상규 기자는 강도영과 10여 통 이상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 셜록
재판이 진행되는 기간 박상규 기자는 강도영과 10여 통 이상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 셜록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1화 보도 이후 독자들이 강도영 사건에 관심이 쏟기 시작했다. 독자들은 <셜록>에 강도영을 돕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셜록>은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고 이에 6천 명이 넘는 시민이 동참했다. 대선 주자들을 비롯해 정치권도 관심을 가지면서 ‘영 케어러’(young carer)라 불리는 청년 간병인 지원정책 모색에 나섰다. 직장도 없는 젊은 청년이 아픈 가족에 대한 부양 의무를 모두 홀로 떠안아야 하는 고장 난 사회시스템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른 단 한 명이라도 강도영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강도영 씨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엄한 처벌을 하는 게 타당하다면, 경제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청년에게 간병 노동을 떠넘긴 우리 공동체는 어떤 벌을 받아야 할까요? 재판장님, 제가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저는 자신 없습니다.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의무는 한가득이었으나, 가진 건 아무것도 없던 청년을 선처해 주십시오.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4화 <22세 ‘간병 청년’ 강도영의 선처를 바랍니다>에 보도된 탄원서 내용 중 일부)

검증이 짚어준 가난의 맥락

검사의 공소장과 재판장의 선고 내용에 담기지 못한 것이 있었다. 가난의 맥락이었다. 재판부는 아버지를 돌보는 기간에 강도영이 친구들과 멀쩡하게 카톡을 하거나 술 약속을 잡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판결에 반영했다. 간병의 진정성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판단에 의문을 품은 박상규 기자는 강도영의 친구들을 접촉했다. 강도영은 평소 친구들에게 어려운 형편은 알렸지만, 지독한 가난에 대해선 숨겼다. 자기 이야기를 좀체 하지 않았고, 가까운 이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다고 친구들은 말했다. 군대에 있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5만 원만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을 뿐,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 자체를 어려워했다.

재판부는 또 강도영이 주민센터를 방문해 생계지원과 장애 지원을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여기에도 맥락이 있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도움을 받으려면 장애 진단서가 필요했다. 장애 진단서를 받으려면 5만 원이 필요했다. 강도영에게는 그 돈이 없었다. 결국 아버지의 장애 입증을 포기했다.

이렇게 모든 건 강도영의 책임과 잘못이 됐다. 가난한 주제에 주민센터를 찾아가지 않은 것도, 금방 죽어도 어색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친구들에게 부담 주기 싫어 자기 처지를 숨긴 것도, 모두 그의 잘못이 됐다. 근데, 그가 소리쳐 울고 떠들었다면 우리 사회는 제대로 경청이나 했을까? “친구들과 카톡 할 시간에 울고불고 가난을 입증했어야지!” 하며 질책하는 건, ‘가난한 사람 다움’을 요구하는 또 다른 폭력이 아닐까?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12화 <가난한 청년은 카톡도 하면 안 되나요?>

대법원은 강도영의 상고를 기각하고 존속살해에 대한 원심판결을 유지해 그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 셜록
대법원은 강도영의 상고를 기각하고 존속살해에 대한 원심판결을 유지해 그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 셜록

재판부는 시신으로 발견된 당시 체중을 기준으로 강도영이 아버지를 굶겨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판단했다. 박상규 기자는 검찰과 재판부가 단정한 사망의 인과관계를 직접 검증하기 위해 병원 경과 기록지, 시체검안서와 사망 보고서 등을 살피고, 의과대학 교수 등 여러 의료인을 찾아 소견을 물었다.

사망원인을 ‘영양 실조증에 의한 내인사’로 추정한 시체검안서는 사망 추정 일시를 명확하게 표기하지 않고 있었다. 요양병원에서 입수한 경과 기록지에 따르면 병원에서 퇴원했을 당시에도 부친은 이미 영양실조 상태였다. 박 기자가 인터뷰한 의료인도 부친이 방치 결과로 사망한 것인지 원래 지병으로 사망한 것인지 특정하기 어려워 사망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1심, 2심 재판에선 의료인이 증인으로 나온 적 없다. 아버지 시신과 건강상태, 의료기록 등은 쟁점이 되지 않았다. 검찰 공소장과 재판부의 판단에 일부 오류가 있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오직 강도영의 방치만 문제됐고, 그만 처벌 받았다.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13화 <부패한 시신과 파리 유충.. ‘강도영 사건’ 뒤집힐까>

탐사 저널리즘 넘어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미국의 언론인 수잔 베네치(Susan Benesch)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특정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보도’라고 정의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문제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해, 사회 구성원 각자가 주체가 돼 능동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이끄는 보도 방식이다. 탐사로 시작한 <셜록>의 보도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조금씩 바꾸며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발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셜록>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도 원심을 유지해 강도영에게 존속살해죄 유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셜록>의 탐사보도 이후 수천 명의 시민이 탄원서에 동참하는 등 가난한 이들의 간병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간병 부담을 사회화하는 방법을 포함해 ‘영 케어러’를 위한 구체적 제도 마련에 정치권도 나섰다.

<셜록>의 보도는 판결을 뒤집지 못했고, 강도영을 구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 보도를 통해 우리는 사소한 사실들을 간과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법이 짚어내지 못한 맥락을 짚어보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공론장을 형성했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고장 난 사회 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허물기 시작했다.

올해 2월 셜록은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 –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연재 보도로 인권보도상 본상 수상작에 선정됐다. ⓒ 셜록
올해 2월 셜록은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 –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연재 보도로 인권보도상 본상 수상작에 선정됐다. ⓒ 셜록

*기사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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