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 숙박업소 무단 복제에 ‘무죄’ 선고된 이유 따져보니

첫 화면 위에 추천, 국내숙소, 즐길거리, 교통/항공, 해외여행으로 나뉜 목록이 있다. 아래에는 최근 본 상품과 인기여행지가 펼쳐져 있다. ‘국내숙소’를 누르자 모텔, 호텔, 펜션/풀빌라, 리조트, 글램핑 등 원하는 숙소 형태를 선택하는 페이지가 나온다. ‘모텔’을 선택하고 지역을 고르면 수많은 모텔업소가 스크롤 아래로 쏟아진다. 날짜와 인원을 선택하면 더 정확한 업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애견 동반이나 수영장 유무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으로 들어간 숙박업소 예약 플랫폼 ‘야놀자’의 모습이다.

애플리케이션으로 들어간 ‘야놀자’의 모습이다. 국내숙소, 모텔을 순서대로 누르고 제천/단양지역을 선택하면 이 지역에 있는 수많은 모텔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야놀자 애플리케이션 갈무리
애플리케이션으로 들어간 ‘야놀자’의 모습이다. 국내숙소, 모텔을 순서대로 누르고 제천/단양지역을 선택하면 이 지역에 있는 수많은 모텔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 야놀자 애플리케이션 갈무리

2016년 ‘야놀자’가 경쟁사인 ‘여기어때’를 고소했다. 야놀자가 체계적으로 관리하던 정보를 여기어때 측이 무단 복제한 혐의였다. 여기어때는 웹 페이지의 정보를 통째로 긁어오는 ‘크롤링(Crawling) 프로그램’을 활용해 야놀자의 숙박업소 이름, 주소, 금액, 할인금액, 입퇴실시간 등 정보를 264차례에 걸쳐 대량 복제했다. 일반 이용자는 야놀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7~30km 범위 안의 숙박업소만 검색할 수 있지만, 이 프로그램은 반경 1000km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검찰은 무단 복제행위 관련 저작권법 위반과 더불어 업무방해,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여기어때 심 전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부정경쟁행위로 다퉜던 민사재판 1심에서도 여기어때는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형사 사건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항소심은 먼저 ‘여기어때’가 ‘야놀자’의 노력에 의한 결과를 이용해 이익을 얻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쟁시장에 관한 후발주자의 정보수집 행위를 다른 특별한 사정없이 ‘데이터베이스제작자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지난 5월 12일, 대법원이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이 무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데이터베이스를 복제한 것은 맞지만, 모든 복제가 위법은 아니라는 판결이었다. 항소심에서부터 판결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데이터베이스의 법률상 개념부터 살펴보자.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데이터베이스

원칙적으로 숙박업체 이름, 주소 등의 사실정보는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대상이 아니다. 사회 공동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보를 수집해 체계적으로 배열해 놓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야놀자는 이른바 ‘플랫폼’(Platform) 기업이다. 숙박업소를 직접 운영하지 않고, 업체와 소비자 사이에서 ‘예약’만 담당한다. 이런 형태의 기업은 등록된 숙박업소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소비자가 업체를 편리하게 찾을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수많은 업소를 어떤 목록으로 분류할지, 어떤 정보를 첫 화면에 띄우고 어느 정보를 숨길지, 필수옵션과 선택옵션은 무엇으로 할지 등을 구상하는 게 플랫폼 기업의 핵심인 셈이다. 여기서 업체정보를 포함한 다양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배열 또는 구성한 편집물”을 법률용어로 데이터베이스라고 한다.

개별 정보를 체계적으로 배열 또는 구성해놓은 것을 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른다. 생산, 유통하지 않고 업체와 소비자 간 거래만 매개하는 플랫폼 기업에게 업체정보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놓은 데이터베이스는 특히 중요하다. ⓒ 게티이미지뱅크
개별 정보를 체계적으로 배열 또는 구성해놓은 것을 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른다. 생산, 유통하지 않고 업체와 소비자 간 거래만 매개하는 플랫폼 기업에게 업체정보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놓은 데이터베이스는 특히 중요하다. ⓒ 게티이미지뱅크

개별 정보와 달리 데이터베이스는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저작권법은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갱신하는 데 “인적 또는 물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한” 자를 데이터베이스 제작자로 규정한다. 플랫폼 기업은 개별 업체와 제휴를 맺고,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화면을 지속적으로 갱신하고, 자체서비스를 개발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면 데이터베이스 제작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에게는 “데이터베이스의 전부 또는 상당한 부분을 복제, 배포, 방송 또는 전송할 권리”(제93조 1항)가 있다. 이에 따라 개별 데이터에 대한 복제는 괜찮지만, 데이터베이스의 전부 또는 상당한 부분을 복제하는 건 제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다. 따라서 크롤링 행위를 두고 법적 분쟁이 일어나면 업체가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상당한 투자’를 한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에 해당하는지, 복제한 부분이 ‘상당한 부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또한 상당한 부분의 복제가 아니더라도 “반복적이거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체계적으로” 복제해서 “데이터베이스의 통상적 이용과 충돌하거나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는 경우”(제93조 2항)는 데이터베이스의 상당 부분 복제로 본다. 연구, 시사보도 등 공공복리를 위한 크롤링은 저작권법 위반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조항은 경쟁업체 사이에 실질적인 이익 침해가 일어났는지 확인할 때 적용된다.

저작권법 제 93조는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의 전부 또는 상당한 부분을 복제하거나, 특수한 목적을 위해 반복적으로 복제하여 통상적 이용과 충돌한다면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저작권법 제 93조는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의 전부 또는 상당한 부분을 복제하거나, 특수한 목적을 위해 반복적으로 복제하여 통상적 이용과 충돌한다면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폭넓게 인정받아온 제작자 권리

이전 판례는 크롤링 행위를 어떻게 판단했을까? 보통 재판부는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를 폭넓게 인정해왔다. 취업사이트를 운영하는 경쟁업체인 ‘잡코리아’와 ‘사람인’은 10년 동안 공방을 벌였다. 사람인은 잡코리아 웹 페이지에 게재된 채용정보를 그대로 복제해 자신의 웹 페이지에 게재했다. 잡코리아는 사람인을 상대로 채용정보 복제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고, 법원은 사람인에게 정보를 복제해 게재하지 말라며 강제 조정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사람인이 무단 복제와 게시를 이어가자 잡코리아는 부정경쟁방지법과 데이터베이스 제작자 권리침해 혐의로 강제집행 소송을 제기했다.

선두업체인 잡코리아는 3심에서 모두 승리했다. 재판부는 잡코리아 웹 페이지에 여러 업체의 채용정보가 체계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므로 데이터베이스에 해당하고 잡코리아 내부에 정보시스템 운영팀, 사업관리팀 등을 두고 ‘한큐 채용공고 생성기’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인적, 물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했으므로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마케팅 비용과 당기순이익 등 재무자료를 활용해 사람인의 크롤링 행위로 제작자의 이익이 침해당했다고 판결했다.

잡코리아가 자체 개발한 ‘한큐 채용공고 생성기’는 구인업체들이 채용정보 내용을 웹 페이지 체계에 맞춰 쉽게 입력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다. 이는 잡코리아가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관리한 근거가 됐다. ⓒ 잡코리아 누리집 갈무리
잡코리아가 자체 개발한 ‘한큐 채용공고 생성기’는 구인업체들이 채용정보 내용을 웹 페이지 체계에 맞춰 쉽게 입력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이다. 이는 잡코리아가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관리한 근거가 됐다. ⓒ 잡코리아 누리집 갈무리

손해배상 판결이 났던 야놀자-여기어때 사이의 민사재판에서도 야놀자는 숙박업소의 선두주자로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여기어때 측은 제휴 숙박업소 정보를 애플리케이션이나 개별 접촉으로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방대한 정보를 모아서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한 내용까지 공개되거나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건 아니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 민사 소송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앞선 무죄판결이 민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받고 있다.

‘상당한 부분’은 질적으로도 판단해야

형사 2심의 결과가 이전 판례와 달라진 건 권리침해에 관한 새로운 기준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상당한 부분’의 복제를 판단할 때 양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복제된 데이터의 규모뿐 아니라 성질, 사용 용도, 공개 유무, 수집의 난이도 등을 종합해서 실질적으로 제작자의 권리가 침해된 게 맞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놀자가 숙박 예약 영업의 선두주자로서 상당한 투자와 노력, 시간을 들여 정보를 체계화했고 여기어때가 야놀자의 성과에 편승해 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야놀자가 체계화한 숙박업소 목록 등은 많이 알려진 정보라 수집에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이 들지 않았을 것이고, 수집한 정보는 데이터베이스의 일부에 불과하며, 애플리케이션에서도 볼 수 있게 공개된 정보라는 점 등을 이유로 여기어때 직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은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이익침해를 판단할 때 복제된 정보의 ‘질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복제 자체가 아니라 복제된 정보의 유형과 특성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 목은수 (flation,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재가공)
항소심은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이익침해를 판단할 때 복제된 정보의 ‘질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복제 자체가 아니라 복제된 정보의 유형과 특성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 목은수 (flation,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재가공)

이번 형사 판결로 합법적인 크롤링 범위가 넓어졌다. 그간 사회의 모든 분야가 데이터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인정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많은 자본을 투자해서 한꺼번에 데이터를 끌어모을 수 있는 대기업이나, 사업을 먼저 시작한 사업체만 법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데이터베이스 제작자가 맞는지에 집중했던 이전과 달리 복제된 데이터의 종류와 특징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제작자의 권리가 침해됐는지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불법 크롤링의 기준은 불분명하다는 한계가 있다.

가치화된 정보 보호가 대안

사실 크롤링의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기준이 모호한 것은 공적 자산인 개별 데이터와 사적 소유물인 데이터베이스를 분리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특성 때문이다. 데이터베이스를 복제한다는 것은 결국 데이터베이스 안에 있는 개별 소재인 ‘데이터’를 복제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김현숙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정책법률연구소장은 진보하는 기술 발전을 이해하면서도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가치화된 숫자의 집합’에 한해서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데이터를 모아놓은 게 아니라,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데이터를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된 경우에 한해서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는 권리침해에 해당하는 복제는 질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말과도 상통한다.

이미 ‘상당한 부분’을 질적으로 판단한 판례가 있다. 지난 2007년 건설공사 원가계산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업체가 사단법인 ‘한국물가정보’에서 발행하는 물가정보지의 정보를 무단 복제한 사건이 있었다. 업체는 추출한 물가 정보를 데이터파일로 만든 다음, 업체 프로그램에서 가격을 비교하는 자료로 유료회원들에게 배포했다. 업체는 물가정보지의 개별 소재를 사용했고, 데이터베이스의 일부만 복제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1~100위 사이에 이르는 가격정보를 복제한 사실에 주목했다. 2010년 서울고등법원은 단순히 정보를 모아놓은 게 아니라, 1~100위라는 새롭게 정제되고 가치가 창출된 데이터를 수집했으므로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야놀자-여기어때 사건에 이 기준을 적용하면 어떨까? 숙박업체 이름, 주소 등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공개된 데이터로 개별 소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야놀자 자체 개발 서비스인 ‘마이룸(현 무한쿠폰룸)’ 여부, 제휴점의 ‘zone’ 광고 형태, 할인금액, 이용시간 등의 정보는 야놀자에서 가치를 만들어낸 정보이므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성장하고 데이터가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되면서 불법 크롤링을 현명하게 구분할 필요성이 커졌다. 데이터의 수집과 이용은 폭넓게 허용하되, 개별 소재와 가치가 창출된 데이터를 구분해서 판단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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