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본 현장] 약사법 개정 10년, 상비약 못 사는 지역 여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24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은 2012년 편의점 판매 허용 이후 꾸준히 매출이 올랐다. ⓒ 박동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24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은 2012년 편의점 판매 허용 이후 꾸준히 매출이 올랐다. ⓒ 박동주

안전상비의약품 매출은 지난 2020년 456억 원을 넘었다. 안전상비의약품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13종의 의약품이다.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비상약 위주다. 안전성이 인정돼 약사의 복약 지도 없이 살 수 있도록 허용되면서 편의점 효자 상품이 됐다. 1인 가구가 늘고,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상비약 수요가 늘었다. 이런 약은 편의점에서 누구나 간편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편의점에도 ‘급’이 있다.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하려면 반드시 24시간 운영하는 점포여야 한다.

편의점에서 약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건 2012년 약사법 개정을 통해서였다. 2000년 의약 분업 후로 약국 가기가 어려워졌다.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약을 조제하게 되자 약국은 의료기관 근처로 몰렸다. 영업시간도 의료기관 진료 시간에 맞추는 경우가 많아졌다.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의 약국은 하나둘 사라졌다. 병원이 닫는 시간엔 일반 의약품 사기도 어려워졌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약사회는 2010년 7월부터 심야약국 시범사업을 진행하며 대안을 모색했지만 참여한 약국이 많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2011년 6월 의약품 구입 과정에서의 불편을 해소할 방안을 발표했다. 전문가 간담회와 공청회를 거쳐 같은 해 9월 국회에 약사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거주지 주변’에서, ‘심야나 공휴일’에도 의약품을 살 수 있도록 약국이 아닌 장소에서도 특정 의약품을 판매하게 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의약 분업으로 생긴 의약품 구매의 공간적, 시간적 공백을 모두 채우는 게 개정안의 취지였다.

그러나 2012년 2월 보건복지위원회는 검토 보고서에서 해소해야 할 국민 불편을 ‘심야나 공휴일’로만 한정했다. ‘거주지 주변’이라는 표현은 제외됐다. 보건복지위는 일반 소매점으로 의약품 판매를 확대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한국이 외국에 비해 인구당 약국 수가 많아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이 나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2011년 당시 인구 1만 명당 약국 수는 4.22개, 지금은 4.65개로 OECD 평균 2.9개를 넘는다.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하는 약국 외 장소를 연중무휴 없이 24시간 영업하는 점포로 한정하자는 보건복지위의 의견은 약사법 개정안에 그대로 반영됐다.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의 조건을 24시간 연중무휴 점포를 갖춘 자로 하는 수정안이 2012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전국 광역자치단체별 약국 분포. 지난 2022년 3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조사한 전국 약국은 약 2만 4천 개다. ⓒ 박동주
전국 광역자치단체별 약국 분포. 지난 2022년 3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조사한 전국 약국은 약 2만 4천 개다. ⓒ 박동주
전국 광역자치단체별 편의점 분포. 2020년 통계청이 조사한 프랜차이즈 가맹점 중 편의점은 약 4만 6천 개다. ⓒ 박동주
전국 광역자치단체별 편의점 분포. 2020년 통계청이 조사한 프랜차이즈 가맹점 중 편의점은 약 4만 6천 개다. ⓒ 박동주

안전상비의약품 편의점 판매가 허가된 2012년 이후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은 개선됐다. 편의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24시간 운영 비율이 늘었다. 2020년 기준 가맹 편의점 수는 전국에 4만 6000개다. 2012년 대비 2만 개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약국은 3000개 늘었다. 2012년 당시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 비율은 50% 수준이었다. 2014년에는 본사가 가맹점에 심야 영업을 강제하지 못하게 하는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정도로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이 늘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24시간 연중무휴 점포 덕에 사람들은 공휴일과 심야에도 편하게 안전상비약을 살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이 편의가 도시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2만 4000개 약국 가운데 1만 개 이상이 수도권에, 6000개가 광역시 여섯 곳에 몰려 있다. 수도권과 광역시에만 66% 이상의 약국이 있는 것이다. 편의점도 4만 6000개 중 수도권에 2만 개, 여섯 개 광역시에 1만 개로 전체의 65% 이상이 도시에 몰려 있다. 약국과 편의점 모두 인구 밀집 지역에 집중됐다.

이처럼 지역 편차가 생기면서 약을 사기 어려운 곳이 생긴다. 약을 판매하는 편의점은 약국이 적거나 없는 지역에서는 약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약국이 없는 지역일수록 편의점 자체가 적어 24시간 연중무휴 편의점도 찾기 어렵다. <단비뉴스>는 약국과 24시간 편의점이 없어 안전상비의약품을 사기 어려운 지역을 찾아봤다.

약 살 곳 없어 읍내 간다… “약국 사라진 지 20년”

전국 시군구 중 약국과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는 편의점을 합해 20개 미만인 지역은 모두 10곳으로 조사됐다. ⓒ 박동주
전국 시군구 중 약국과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는 편의점을 합해 20개 미만인 지역은 모두 10곳으로 조사됐다. ⓒ 박동주

<단비뉴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공한 약국 현황과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업소 현황을 조사했다. 약국과 약을 파는 편의점을 합한 수가 20개 이하인 지역은 전국 시군구 기초자치단체들 가운데 모두 10곳이었다. 경상북도에 군위, 봉화, 영양, 울릉, 청송 5곳으로 가장 많았고 전남에 구례와 신안, 전북에 장수와 진안으로 각각 두 곳씩 있었다. 인천에는 옹진군 한 곳이 있었다.

약국이 적은 지역이더라도 인구수 대비 약국 수를 계산하면 대부분 OECD 평균인 인구 1만 명당 2.9개소는 넘어선다. ⓒ 박동주
약국이 적은 지역이더라도 인구수 대비 약국 수를 계산하면 대부분 OECD 평균인 인구 1만 명당 2.9개소는 넘어선다. ⓒ 박동주

인구 대비 약국 수로 보면 이 10곳의 약국 공백은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인구 대비 의료기관 수는 의료공백을 가늠하는 지표다. 인구 대비 의료기관 수가 많을수록 의료 접근성이 높다고 본다. OECD 보고서는 약국이 지역 사회에서 의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살펴본 10곳의 1만 명당 약국 수는 평균 3개꼴로 OECD 평균인 2.9개보다 많다. 심지어 구례군과 청송군은 1만 명당 약국 수가 4.1개를 넘는다. 의약품에 대한 높은 접근성을 보여주는 결과지만 이 10개 지역엔 뚜렷한 약국 공백이 보인다. 지역 안에서도 인구가 집중된 중심지에 쏠린 약국과 편의점의 분포 때문이다.

중심지를 제외하면 약국과 24시 편의점이 없어 약을 사기 어려운 전라북도 진안군과 전라남도 구례군 지도다. 한 위치에 여러 개가 몰려 있는 경우에도 한 개 아이콘으로 표시하고 약을 사기 어려운 지역의 인구를 함께 표기했다. ⓒ 박동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재가공)
중심지를 제외하면 약국과 24시 편의점이 없어 약을 사기 어려운 전라북도 진안군과 전라남도 구례군 지도다. 한 위치에 여러 개가 몰려 있는 경우에도 한 개 아이콘으로 표시하고 약을 사기 어려운 지역의 인구를 함께 표기했다. ⓒ 박동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재가공)

전북 진안군과 전남 구례군에선 약을 살 수 있는 곳의 쏠림이 가장 심하다. 진안군은 1개 읍과 10개 면, 구례군은 1개 읍과 7개 면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진안군과 구례군 모두 읍 지역에만 약국과 약을 파는 편의점이 있다.

진안군과 구례군 읍 밖에 사는 면 지역 주민은 보건소에서 약을 짓거나 먼 약국까지 가서 약을 산다. 몇 없는 약국에 더해 면마다 위치한 보건소가 의약품 공백을 채우지만, 여전히 몇몇 마을 생활권 안에는 약을 살 곳이 없다.

인구 2만 4000명이 사는 진안군에는 약국 9개와 24시 편의점 11개가 있다. 1만 명당 약국은 3.6개로 OECD 평균을 웃돈다. 하지만 이 20개 약품 판매소가 있는 곳은 모두 진안읍 읍내다. 진안읍에서 직선으로 15km 이상 거리인 안천면 주민 1천 명은 약을 살 곳이 없다. 마이산을 넘어가면 있는 마령면엔 2천 명이 산다. 작은 슈퍼가 하나 있지만 24시간 연중무휴 점포가 아니라 약을 팔지 못한다. 그 너머 1천 8백 명이 사는 성수면, 마이산 아래 2천 명이 사는 백운면에도 약을 살 곳이 마땅치 않다.

인구 2만 7000명이 사는 전남 구례군의 약국 11개와 24시 편의점 5개도 구례읍에 몰려 있다. 인구 대비로 보면 1만 명당 약국이 4.07개지만 구례읍 말고는 약국이 없다. 약을 못 파는 편의점 네 곳이 있는 구례군 산동면에는 올해 기준 2970명이, 약을 못 파는 편의점 한 곳이 있는 토지면에는 2664명이 산다. 토지면에선 5km 이상 떨어진 구례읍에서 약을 살 수 있다. 구례읍까지는 차로 30분이 걸린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평도 마을 이장인 한경안 씨는 토지면에 있던 마지막 약국은 20년 전쯤 사라졌다고 회고했다. 2000년 의약 분업 이후 약국이 의료시설 주변으로 옮기기 시작한 시기다. 75명이 사는 평도 마을엔 노인이 60%다. 약이 필요하면 20km 거리인 구례읍까지 가거나 면내 보건소에서 약을 받는다. 보건소는 출장이 잦아 오전에 주로 연다. 불편하긴 하지만 여기 약국이 생기면 돈이 안 될 게 뻔하다는 게 한 씨의 생각이다.

나머지 지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중심지로 약국과 24시 편의점이 함께 쏠리면서 지역에는 아직 약을 사기 위해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곳들이 남아 있다. 이 지역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일 방법은 없을까. 기존 법에서 해결책을 찾아봤다.

지역에 남은 약국 공백, 해결책은?

1971년 5월 보건사회부(지금의 보건복지부)는 약사법 부칙에 따라 ‘특수 장소 의약품 취급소’를 지정해 고시했다. 위급상황에 대비해 열차나 항공기, 선박 안에서 의약품을 팔 수 있게 하고, 군부대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판매를 허용했다. 당시로써는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약을 판매하는 유일한 제도였다.

2012년 약사법 개정으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소가 생긴 뒤에는 이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 제도도 보완됐다. 이런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소가 없는 곳도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를 지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소까지 포함해서 시와 읍은 3km 이내, 면은 2km 이내에 약을 살 곳이 없는 곳에 의약품 취급소 한 곳을 지정할 수 있게 됐다. 2019년에는 약국의 휴업이나 폐업으로 주민이 의약품을 살 수 없는 경우 관할 시장이나 군수, 구청장의 직권으로 의약품 취급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개정됐다.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에선 안전상비의약품으로 지정된 13개 의약품 외에도 일정한 일반의약품 판매를 허용할 수도 있다. 지정된 취급소 인근에 있는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가 실제로 취급소를 운영할 대리인을 지정해 의약품을 취급하는 방식이다. 마을 이장의 집, 구멍가게, 상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약을 판매한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 보완도 지역의 의약품 공백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가 11개로 가장 많은 봉화군 지도다. 산간지역이라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을 빼면 약을 살 곳이 잘 분산되어 있다. ⓒ 박동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재가공)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가 11개로 가장 많은 봉화군 지도다. 산간지역이라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을 빼면 약을 살 곳이 잘 분산되어 있다. ⓒ 박동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재가공)

관할 보건소에 확인한 결과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는 봉화군에 11개, 신안군에 6개, 청송군과 진안군에 5개, 영양군에 2개, 장수군과 구례군에 1개가 설치되어 있다. 연평도 등 군사지역이 포함된 옹진군에는 군부대 4군데를 포함해 9군데가 지정됐다. 군위군과 울릉군에는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군위군 관계자는 “군 안에 의원급 병원도 없어 군민 대부분이 근처 대도시인 대구나 구미로 나가서 치료를 받는다”며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 필요가 크지 않아 설치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 지정 고시에 따른 취급소 설치는 온전히 지방자치단체장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가 전국적으로 적절히 설치됐는지를 점검하는 중앙 기관은 없다.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가 지정된 지역에서도 취급소는 낯선 개념이다. 면사무소 등 관할 행정기관에서도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를 잘 알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면 내 약국이라며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소를 언급하기도 했다.

단비뉴스가 분석한 의약품 구매장소가 20곳 미만인 다른 지역들에 약 못 파는 소매점이 퍼져 있는 것이 보인다. 순서대로 청송군, 장수군, 군위군, 신안군, 옹진군, 울릉군, 영양군. ⓒ 박동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재가공)
단비뉴스가 분석한 의약품 구매장소가 20곳 미만인 다른 지역들에 약 못 파는 소매점이 퍼져 있는 것이 보인다. 순서대로 청송군, 장수군, 군위군, 신안군, 옹진군, 울릉군, 영양군. ⓒ 박동주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재가공)

안전상비의약품을 24시간 운영하지 않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같은 소매점에서도 팔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도 방법이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하는 소매점 수는 약 4만 1000개다. 이 소매점엔 고속도로 휴게소, 지역 마트도 포함된다. 올해 코로나19 자가진단 키트를 판매한 가맹 편의점은 5만 개 이상이었다. 전국 1만 개 이상의 편의점이 24시 점포가 아니라는 이유로 안전상비의약품을 팔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의 동네 슈퍼들까지 합치면 더 많다. 24시간 점포로 제한하지 않고 안전상비의약품을 팔 수 있게 한다면 위에서 본 10개 지역의 의약품 판매망 공백은 더욱 개선된다.

안전상비약을 약국 외에서도 팔 수 있도록 한 지금 제도는 심야나 공휴일 등에 약을 사려는 사람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해결하지 못한 불편도 있다. 24시간 연중무휴 편의점이나 약국이 주변에 없어 최소한의 비상약조차 사기 어려운 지역민의 불편이다. 이를 해소할 수도 있는 방법이 있지만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의약품 구매 공백을 채우겠다던 약사법 시행 10년, 오늘도 전국에는 동네에서 비상약을 사지 못해 먼 길을 나서야 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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