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소리뉴스] ㉓ 효율화 현황과 과제 (상)

고층아파트들이 빼곡한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2017년 12월 야트막한 공동주택단지가 새로 들어섰습니다. 하얀 건물 외벽과 옥상에 파란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고, 세대마다 밖으로 돌출한 투명 발코니가 있어 단박에 눈에 띕니다. 7층짜리 공동주택 3동에 106세대, 연립주택 1동에 9세대, 단독주택 2동에 2세대, 합벽주택 2동에 4세대가 입주할 수 있습니다. 이 단지는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에너지제로 공동주택’인 노원 이지하우스(EZ House)입니다.

국내 1호 에너지제로 주택단지, 노원 이지하우스

노원 이지하우스는 2013년 9월 노원구와 서울시, 명지대 산학협력단이 컨소시엄을 이뤄 국토교통부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의 발주를 받아 건설했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정책의 하나로 장차 국내에 에너지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제로에너지 건축을 의무화하는 것이 손꼽힙니다. 이에 앞서 실증단지를 만들자는 취지로 이지하우스는 지어졌습니다.

컨소시엄은 39㎡(12평), 49㎡(15평), 59㎡(18평) 크기에 2~3개의 방을 갖춘 121가구를 건설해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했습니다. 건물의 정면과 측면 벽, 옥상 등 곳곳에 설치한 1284개 태양광 패널에서 연간 40만 7000킬로와트시(kWh)의 전기를 생산하고, 지하에 있는 지열설비에서도 냉난방, 온수공급 등으로 연간 36만7000kWh 전력량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만듭니다.

이 공동주택의 난방·온수·냉방·조명·환기 등 5대 에너지소비량이 연간 약 33만kWh인데, 이론적으로는 그 2배가 넘는 에너지를 자체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단지 설계와 건설에 참여한 명지대 제로에너지건축센터 이응신 교수는 “태양광 전기를 지열 히트펌프 가동 등에 쓰기 때문에 실제 전력생산량은 수요량에 근접하는 정도”라고 설명했습니다.

‘독일 패시브하우스 인증’ 6가지 기준 충족

태양광과 지열로 에너지를 자체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에너지제로하우스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빈틈없는 단열입니다. 환경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주택을 포함한 건물과 건축부문은 지구 최종 에너지소비량의 36%를 차지합니다. 서울의 경우는 건물부문이 전체 에너지소비의 56%, 전력소비에선 83%나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건물부문에서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는 일이 시급함을 알 수 있습니다.

노원 에너지제로주택은 2018년 9월 에너지절약 건축물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진 독일패시브하우스(PHI)연구소의 인증을 받았습니다. 독일 패시브하우스의 설계기준으로 건물 외벽 단열, 높은 수준의 공기차단(고기밀), 자연채광의 극대화, 여름 냉방을 위한 외부 블라인드, 발코니 같은 시설물의 열기누출 차단, 3중유리 시스템창호 및 열회수형 환기장치 적용 등 6가지가 꼽힙니다. 이렇게 깐깐한 기준을 이 주택이 충족한 것입니다.

노원 에너지제로주택은 홍보관인 노원이지센터와 체험주택을 운영하면서 이와 같은 주택단열시스템과 재생에너지의 원리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1박 2일 동안 최대 8명이 이용할 수 있는 체험주택은 1층에 주방, 거실, 화장실이 있고 2층에 침실, 화장실이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노원이지센터에서는 에너지제로주택의 설계노하우와 건축자재, 일반 아파트·주택과의 차이, 에너지절감 방법 같은 내용을 배울 수 있습니다.

3중 유리와 외벽재 등 빈틈없는 단열

2018년 10월 10일 노원이지센터를 찾은 <단비뉴스> 취재팀은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일반 주택과 에너지제로주택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일반 건축물은 유리 창호의 틈과 모서리에 우레탄 폼을 쏘고 습기 방지를 위해 실리콘을 발라주지만 에너지제로주택은 독일산 기밀테이프로 안팎의 공기를 더욱 촘촘하게 차단합니다.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틈새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 실리콘이 떨어지거나 곰팡이가 생기는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리도 얇은 금속산화물을 코팅한 로이(Low-E) 3중유리를 사용해 단열 성능을 크게 높였습니다.

벽면의 경우 일반 건축물은 공사 편의를 위해 콘크리트 외벽이 바깥쪽에 있고 단열재가 안에 있는 내단열로 지어집니다. 여름에는 콘크리트 외벽이 데워져 냉방에너지 소비량이 많고 겨울에는 콘크리트가 차가워져 고온다습한 안쪽과의 차이로 결로(물방울), 곰팡이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패시브하우스는 콘크리트벽 바깥에 단열재를 입혀 이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별도 냉난방장치 없이 여름 26, 겨울 20도 유지

단열효과를 극대화한 에너지제로주택은 가스히터, 에어컨 같은 일반적인 냉난방 장치 없이 여름 26도(℃), 겨울 20도를 유지하도록 설계됐습니다. 냉난방과 온수는 지하 160m 지점에 천공(구멍뚫기)을 하고 지열히트펌프 130개를 설치해 공급합니다. 땅 밑 깊은 곳은 계절과 관계없이 15도 정도의 온도가 유지되는데, 지상과의 온도 차를 이용해 여름엔 냉방을, 겨울엔 난방을 제공하는 원리입니다.

준공 후 1년간 노원이지하우스 에너지 현황을 모니터링한 이응신 교수는 2018년 12월 14일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까지 입주민들이 패시브하우스에서 에너지 절약을 하며 실내를 쾌적하게 만들 수 있는 행동에 익숙하지 않아 (에너지 절약이) 생각만큼은 안 됐습니다. 그래도 타 건물에 비해 (에너지 사용량을) 절반 정도로 줄인 점에 만족하고 에너지 절약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과정입니다. 실증단지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보고 다음에는 더 완벽하게 제로에너지건물을 짓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노원이지센터를 운영하는 노원환경재단의 원영준 팀장은 “우리나라의 기후환경과 문화 등을 고려해 한국형 패시브하우스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여름의 폭염이나 겨울의 강추위처럼 기온변화가 급격할 때는 기존 패시브하우스 시설만으로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공기난방을 하는 서구와 달리 온돌을 써온 우리나라에서는 바닥 난방에 대한 수요가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향후 에너지제로주택 설계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입주민들의 반응은 긍정적입니다. 김기정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여름에 에어컨을 따로 설치하지 않고 중앙에서 공급되는 지열냉방과 선풍기 하나만 틀고 지냈어요. 에너지를 절약하면서도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집이 에너지제로주택이잖아요. (에너지제로 공공임대주택은) 최저임금제도처럼 주거복지와 에너지복지를 위해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20년 공공, 2025년 민간건축물 에너지제로 의무화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제로건축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우선 2017년 1월부터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를 도입해 모범적인 건물에 각종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녹색건축물 조성지원법 제2조는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건축물’을 ‘제로에너지빌딩’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로에너지건축물로 인증을 받으려면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1++이상’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 설치’ ‘에너지 자립률(에너지소비량 대비 신재생에너지 생산량) 20% 이상’을 충족해야 합니다. 에너지 자립률에 따라 1~5등급을 부여하는데, 등급이 높으면 신재생에너지 설치 보조금 등 각종 정부지원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국토부는 인증제에 이어 2020년부터 공공건축물에 대해 제로에너지빌딩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민간부문 건축물은 2025년부터 의무화할 예정입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22년 7월 1일 기준으로 제로에너지빌딩 인증을 받은 건축물은 총 233곳이며, 이 가운데 ZEB(제로에너지건축물) 1등급은 60곳이 받았습니다.

출연: 정승현 김은송 나종인 심미영 기자

편집: 김은송 기자

출처: <마지막 비상구> (제정임 엮음)

디지털 시대의 멀티미디어 실험에 앞장서는 <단비뉴스>가 ‘소리뉴스’를 시작합니다. 2020년 ‘올해의 환경책’으로 선정된 <마지막 비상구>를 환경부 기자들이 목소리로 전합니다.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연재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를 엮어낸 것입니다. 석탄·석유·원전 등 기후위기와 방사능재난을 부르는 ‘위험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했습니다. 소리뉴스는 이 책 중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부터 시작합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현장을 조명하고, 파국을 막을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탈원전 논란과 에너지정책을 다룬 1, 2부는 그다음에 이어집니다. 이 기사들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올해의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 더 많은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시작하는 단비 소리뉴스. 주 1회 <단비뉴스>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실립니다. (편집자)

① ‘기후붕괴 시대’ 위협받는 삶의 현장

② ‘세계 4대 기후 악당’ 한국이 받는 벌

③ ‘트럼프의 훼방’에서 파리협정 살리기 

④ 달려가는 유럽, 끌려가는 한국

⑤ 화석연료 줄여도 경제는 쑥쑥 성장

⑥ ‘1달러 골리앗 크레인’ 탄식 뒤의 기적

⑦ 실업자 없는 에너지 자립촌 펠트하임

⑧ 재생에너지가 이끄는 유럽 최강 경제

⑨ 태양광·풍력으로 프랑스에 전기 수출

⑩ 석유파동 후 세계 1위 풍력기업 탄생

⑪ 거리엔 자전거 물결, 국민 건강은 '쑥쑥'

⑫ 태양열과 소금으로 밤에도 전기 생산

⑬ 금융위기에 흔들린 재생에너지 강국 스페인 

‘바람은 모두의 것’ 제주의 실험

⑮ ‘주민 배제’가 ‘결사반대’ 낳았다

⑯ 해상풍력 잠재력, ‘조선업 이상’

⑰ '원전 줄이기' 시동 건 햇빛발전협동조합

⑱ 의도적 허위정보가 반감 조장

⑲ 옥상·주차장·도로 등 태양광 설치할 곳 수두룩

⑳ 무심코 쓴 일회용품이 기후재난 재촉한다

㉑ 플라스틱 등 자원 순환에 인공지능도 출동

㉒ 내가 버린 플라스틱, 내 식탁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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