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㉝ 그린 리모델링 성공사례 편백경로당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구립 노인정 편백경로당은 얼핏 평범한 단독주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에너지를 100% 스스로 만들어 쓰는’ 제로에너지 건축물이다. 지난해 1월 ‘그린 리모델링’을 마친 이 건물은 한국에너지공단에서 제로에너지 건축 1등급 인증을 받았다. 또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선정한 그린 리모델링 우수 사례로 상을 받기도 했다. 이 건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 쓰는 집’이 될 수 있었을까.

‘단열’ 개념 거의 없었던 마흔 살 건물

▲ 그린 리모델링으로 제로에너지 건물이 된 편백경로당의 전경과 대문, 앞마당, 건물 입구 모습.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이 보인다. © 잘그린건축연구소
▲ 그린 리모델링으로 제로에너지 건물이 된 편백경로당의 전경과 대문, 앞마당, 건물 입구 모습.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이 보인다. © 잘그린건축연구소

편백경로당은 원래 대지 187제곱미터(㎡), 건축면적 82.31㎡의 1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노원구청이 이 건물을 사들여 불법 증축된 부분을 걷어내고 부엌을 넓히면서 에너지 소비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설비도 갖췄다. 1981년 지어진 이 주택은 단열이 매우 취약했다. 외벽과 지붕의 단열재 두께가 50밀리미터(mm)에 불과해 집안의 열이 밖으로 샜다. 기밀(공기차단)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리모델링을 맡은 민현준(43) 잘그린건축연구소장은 “집의 중심 공간인 거실에는 단열재가 아예 들어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태양광 등 자체 생산한 재생에너지로 필요한 전기수요 등을 감당하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건물 전체를 외단열(단열재를 바깥쪽으로 설치)로 감싸고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얹었다. 단열재 두께는 외벽과 바닥의 경우 100mm, 지붕은 150mm로 키웠다. 창문도 단열성과 기밀성이 높은 것으로 교체했다. 환기 부분에서도 폐열 회수 장치를 설치해 건물 안의 공기를 내보내고 바깥 공기를 들여오면서 발생하는 열 손실을 최소화했다.

▲ 편백경로당 곳곳에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설계 요소가 반영돼 있다. 지붕과 바닥 단열을 강화하고 폐열회수장치를 도입했으며, 단열과 기밀 성능이 좋은 창문을 달았다. © 잘그린건축연구소
▲ 편백경로당 곳곳에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설계 요소가 반영돼 있다. 지붕과 바닥 단열을 강화하고 폐열회수장치를 도입했으며, 단열과 기밀 성능이 좋은 창문을 달았다. © 잘그린건축연구소

냉난방·조명·급탕 등 소비 에너지 100% 자체 생산

이런 공사의 성과는 ‘에너지자립률 100.1%’라는 성적표였다. 건물이 냉·난방, 조명, 급탕, 환기 등에 소비하는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는 에너지가 감당하고도 약간 남는다는 얘기다. 편백경로당의 에너지소비량은 연간 1㎡당 115.5킬로와트시(kWh)인데, 생산량은 115.7kWh로 나왔다. 이 건물의 에너지효율등급은 전체 10단계 가운데 가장 높은 1+++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현재 건물에서 쓰는 에너지가 모두 재생에너지인 것은 아니다. 태양광으로 충분한 전기를 생산하지만, 경로당 사용자들이 취사용으로 가스레인지를 원해 도시가스 등을 일부 쓰고 있다.

민 소장은 “원래 설계사무소와 노원구청 측은 부엌에 전기 인덕션을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경로당을 주로 사용하는 분들의 연령대가 높아 가스를 쓰게 됐다”며 “그 부분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피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 편백경로당 거실 부분을 촬영한 열화상 촬영 장면. 창문의 단열 성능이 외벽에 견줄 만큼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이종록 잘그린건축연구소 주임연구원(37)은 설명했다. © 잘그린건축연구소
▲ 편백경로당 거실 부분을 촬영한 열화상 촬영 장면. 창문의 단열 성능이 외벽에 견줄 만큼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이종록 잘그린건축연구소 주임연구원(37)은 설명했다. © 잘그린건축연구소

편백경로당을 포함, 그린 리모델링 사업에 두 차례 참여했다는 민 소장은 “제로에너지 건축 리모델링을 알릴 수 있는 ‘앵커 사업’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이나 노인정, 숙박시설, 도서관 등 관련 사례를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면 그린 리모델링의 필요성에 관한 인식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아직은 갈길 먼 제로에너지 건축 리모델링

제로에너지 건축의 공식적인 정의는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여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건축물’이다. 지난 4월 기준 제로에너지 건축 인증(에너지자립률 20% 이상)을 받은 건축물은 전국에 186개다. 이 중 에너지자립률이 100%를 넘어 1등급 본인증을 받은 건물은 경기도 화성 동탄7동도서관(왕배푸른숲도서관)과 경기도 과천 위버필드 아파트단지 내 게스트하우스 등 12곳이다.

제로에너지 건축은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 면적이 1000㎡를 넘어가는 공공건축물은 2020년에 이미 제로에너지 건축이 의무화됐으며, 2023년부터는 500㎡ 이상 규모로 확대된다. 2025년부터는 면적이 1000㎡를 넘는 민간건축물에도 의무사항이 적용된다. 스웨덴에서는 2021년부터 모든 건물의 제로에너지 건축이 의무화됐다. 미국은 2020년부터 일반주택에 제로에너지 건축을 의무화했고, 공공건물과 상업건물은 2030년부터 의무화 규정이 적용된다.

신축건물뿐 아니라 기존 건축물도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20년 발표한 ‘그린뉴딜’ 계획에서 공공건축물과 공공임대주택 등을 대상으로 한 그린 리모델링 추진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개인 소유 건물의 그린 리모델링은 진전이 별로 없다. 리모델링 과정이 까다롭고 비용도 적지 않은데 지원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세대 건축공학과 이승복 교수는 28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기존 빌딩들의 성능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절대로 탄소중립을 이룰 수가 없는데 현재로선 인센티브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 유엔환경프로그램과 국제건물건설산업연합(GABC)은 건축물과 건설산업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과제에 관한 리포트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 UNEP
▲ 유엔환경프로그램과 국제건물건설산업연합(GABC)은 건축물과 건설산업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과제에 관한 리포트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 UNEP

독일처럼 과감한 인센티브 필요

유엔환경프로그램(UNEP)과 국제건물건설산업연합(GABC)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에너지 수요에서 건물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36%, 탄소배출은 37%였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건물 부문의 에너지 효율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독일의 경우 개인이 주택의 난방 시스템과 창문 교체, 지붕과 외벽 단열 강화 같은 에너지 효율화 리모델링을 하면 비용의 20%만큼 3년간 세금을 깎아주는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또 에너지 성능이 좋은 집을 짓거나 리모델링하면 낮은 이자로 최대 12만 유로까지 빌려주는 등 금융지원도 하고 있다. 석유나 가스 난방을 친환경 시스템으로 바꾸면 45%까지 교체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도 있다.

이승복 교수는 우리나라도 그린 리모델링을 위한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윤석열 정부)도 접근방법은 다르지만 탄소중립에 대한 의지만큼은 표명했다”며 그린 리모델링에 참여했을 때 세제 혜택을 부여하자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또 “건물 임대차 변경이 생기거나 거래가 이뤄졌을 때 건물을 수선하면서 에너지 성능을 강화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기후위기시대]

① 온실가스 주범 석탄발전소 ‘더 짓는 중’

② '기후우울' 떨치고 '어벤져스'로 나서다

③ 탄소세 부과로 ‘신호’ 줘야 기업 바뀐다

④ 노동·지역경제 배려 ‘정의로운 전환’을

⑤ "석탄발전소 짓는 한국, 리더 아닌 꼰대"

⑥ ‘그린워싱 대신 행동을’ 거센 녹색 함성

⑦ "SMR 등 원전은 기후위기 대안 못 돼"

⑧ “상용화 먼 핵융합, 탄소중립 도움 안 돼”

⑨ “기후위기 극복 의무를 헌법에 넣자”

⑩ 소형모듈원전(SMR) 상용화 가망 없다

⑪ “파이로프로세싱은 과학 아닌 소설”

⑫ 기후재난으로 원전 위험성 더 커진다

⑬ ‘기후 일자리’ ‘탄소국민배당’ 추진을

⑭ 고기 즐기는 너, 기후변화 공범 아니니

⑮ 청소년은 ‘미래’ 아닌 기후재난 ‘당사자’

⑯ 기후 미술관, ‘제로 웨이스트’로 가다

⑰ 쓰레기 줍다 보니 삶이 바뀌더라

⑱ “한국 공적금융이 에너지 전환 걸림돌”

⑲ ‘ESG 경영’ 뒤로 ‘기후행동 봉쇄 소송’

⑳ ‘국민이 처한 위험’ 알리려 당근 쏟았다

㉑ 나는 오늘 옷을 샀다, 기후위기를 샀다

㉒ 시민이 일어나 정부·기업을 움직이자

㉓ 탄소 줄이는 갯벌 메워 공항을 짓다니

㉔ 공장식 축산 줄이고 채식 늘려야 생존

㉕ 경작과 에너지 생산을 ‘하이브리드’로

㉖ 이재명 ‘재생에너지’, 윤석열 ‘원전’ 강조

㉗ 이재명·윤석열도 ‘기후대선’ 동참해야

㉘ ‘할머니가 지킬게, 초록지구’ 119 출동

㉙ 기후변화만큼 핵발전도 위험하다

㉚ ‘주차장 태양광’ 시급한데 조례로 막아

㉛ 채식 급식 확대, 환경교육과 병행 필요

㉜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연구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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