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

현수막이나 대자보를 게시하려면 대학 본부의 사전 승낙을 받아야 한다. 학교에 비판적인 기사를 보도하면, 기자를 해임하거나 예산을 삭감한다. 한국의 대학에 다니는 청년들에게 주어진 언론 자유의 현실이다.

대학언론인네트워크(대언넷)와 윤영덕·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공동 개최해 대학 내 언론탄압의 현실을 고발하고 그 대안을 모색했다. 제정임 세명대저널리즘스쿨대학원 원장이 좌장을 맡은 이날 토론회는 대학 내 언론 탄압 실태를 알리는 ‘증언’, 그 대안을 모색하는 ‘발제’, 그리고 ‘자유토론’의 순서로 진행됐다.

검열 없이는 현수막 게시도, 기사 발행도 불가능한 대학

가톨릭대 인권모임 ‘가다’는 지난해 3월 16일 신입생을 환영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학내에 게시했다(왼쪽). 이 현수막은 이튿날인 17일 곧바로 철거됐다(오른쪽). ⓒ 가다
가톨릭대 인권모임 ‘가다’는 지난해 3월 16일 신입생을 환영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학내에 게시했다(왼쪽). 이 현수막은 이튿날인 17일 곧바로 철거됐다(오른쪽). ⓒ 가다

이날 토론회에서 최아현 전 ‘가다’(가톨릭대 인권 모임) 대표는 학내에서 발생한 현수막 폐기 사건을 소개했다. 지난해 3월 ‘가다’는 ‘성소수자, 비성소수자 새내기를 환영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학내에 내걸었다. 이 현수막은 하루 만에 사라졌다.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 측이 철거한 것이다. 이에 앞서 가다는 2020년 8월부터 2021년 3월까지 4차례에 걸쳐 학교 본부에 현수막 게시를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한 상태였다.

문제는 학칙이었다. 당시 가톨릭대 학칙에는 ‘학내 홍보물 게시에 관한 규정’이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대학 차원의 공지사항, 동아리 활동, 학생단체가 주관하는 행사 홍보물, 학생들에게 유익하다고 인정되는 학술·예술·취업 등에 대한 외부 홍보물 등을 ‘게시 가능한’ 것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대학 본부는 학내 소모임인 ‘가다’를 정식으로 등록하지 않은 동아리로 판단했다. 미등록 모임인 ‘가다’는 학내 홍보물을 게시할 권한이 없으므로 문제의 현수막을 철거하는 게 정당하다는 논리였다.

헌법적 권리를 지닌 성인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모임에 대해 ‘등록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문제이겠지만, 당시 학칙을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무리가 있었다고 최 전 대표는 주장했다. 학칙의 다른 규정을 보면, ‘동아리 활동이나 학생단체가 주관하는 행사 등에 대해서는 총학생회장의 책임하에 게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학교 본부가 승인하지 않더라도, 총학생회의 양해를 얻어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이 조항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 전 대표는 “당시 학내 게시물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대학 본부의 학생지원처가 운영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학생 자치 기구의 대표격인 총학생회의 권한조차 무시하고, 학내 모든 표현물을 대학 본부가 직접 통제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톨릭대는 지난해 12월, 홍보물 게시에 관한 규정을 15년만에 처음으로 개정하면서, ‘총학생회의 허가 아래 홍보물 게시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삭제해 버렸다.

강석찬 전 '숭대시보' 편집국장이 지난달 29일 개최된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학언론인네트워크
강석찬 전 '숭대시보' 편집국장이 지난달 29일 개최된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학언론인네트워크

뒤이어 강석찬 전 <숭대시보> 편집국장은 숭실대 학보사 기자 해임 사건을 소개했다. 지난해 10월 숭실대 총장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1월부터는 전면적으로 대면 수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숭대시보>는 총장의 대외적 발언이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지 검증했다. 취재 결과, 11월부터 전면 대면 수업을 시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강 전 편집국장은 “이를 보도하려 하자,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숭대시보> 기자 전원이 해임됐다”고 말했다.

당시 학교 측은 ‘사실적 기사 작성’을 위해 주간교수가 ‘편집 지도권’을 정당하게 행사하여 기자를 해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지난 2월 국민신문고 민원에 대한 답변에서 “민원인(<숭대시보>)의 기사가 ‘거짓 기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이 아닌 기사를 쓰려 했기 때문에 (<숭대시보> 기자들을) 해임했다’는 학교의 주장은 사실과 배치된다”고 판단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학보사 기자 모두가 복직됐지만, 학교 측의 기사간섭은 더욱 심해졌다고 강 전 편집국장은 말했다. 매 학기 말까지 발행했던 학보를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조기에 종간시켰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반복된 대학 내 언론 탄압...“법제화로 풀어야”

이태영 전 경희대 <대학주보> 기자는 각 대학에서 발생해온 여러 언론탄압 사례를 모아 발제했다. 2012년 한국외대는 총학생회 선거 후보자들의 공약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학보사 편집장을 해임했다. 2017년 청주대는 김윤배 전 총장의 교비 횡령 혐의 재판 기사가 담긴 학보를 회수했다. 문제는 사립대뿐만이 아니다. 국립대인 서울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16년 서울대는 시흥 캠퍼스 문제를 놓고 학보사 기자들을 압박했다고 이 전 기자는 주장했다. 안팎으로 논란 중이던 서울대 이슈에 대한 보도를 줄이는 대신, 개교 70주년 관련 기사의 비중을 늘리라고 학교 측이 지시했지만, 학보사 기자들이 이에 반발하자 “광고, 예산, 인사 등의 수단으로 학보사 기자단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차종관 대학언론인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이 지난달 29일 개최된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 신유미 기자
차종관 대학언론인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이 지난달 29일 개최된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 신유미

이런 일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학보, 교내 방송 등이 대학 본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행정상 부속 기구로 편제된 현실이 있다. 그러나 이 전 기자는 대학 언론에 제공되는 재정이 학생들에게서 비롯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거 <한겨레> 인터뷰에서 어느 대학 교직원이 ’대학 예산으로 신문을 만드는 데 그 신문에 대학을 욕하는 내용이 들어가서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 예산 역시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재정적 지원이 언론 탄압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전 기자는 “가령 <서울신문>의 사주인 호반건설이 자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서울신문>의 기자를 탄압한다면, 바로 그것이 언론 탄압이다. 기성 언론과 대학 언론을 다른 잣대로 바라보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차종관 대언넷 집행위원장은 이러한 문제를 법과 제도, 그리고 대학 정책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학 본부와 학생들 사이의 이슈로 미뤄두지 말고, 법적 원칙에 입각해 규율하자는 것이다. 차 위원장은 이날, 학생자치 주관 부서를 교육부에 신설하고, 학생자치기구 및 대학 언론을 법제화하는 등의 방안을 담은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시했다.

특히 학내 거버넌스에 학생들이 얼마나 참여했는지, 학내의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얼마나 보장했는지 등을 측정하는 ‘학생 자치 및 대학 민주주의’ 항목을 교육부가 실시하는 대학역량진단평가의 진단 지표로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지난달 29일 개최된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자유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 대학언론인네트워크
지난달 29일 개최된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자유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 대학언론인네트워크

이 제안은 많은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토론자로 나선 김동운 <쿠키뉴스> 기자는 “교육부의 진단평가는 각 대학이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다. 교육부가 이런 기준을 도입하는 것은 빠르고 효과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박주현 <대학알리> 편집국장도 “대학진단평가를 바탕으로 정부 예산을 지원받기 때문에 각 대학은 많은 행정력을 투입해 좋은 평가를 받으려 한다. 거기에 이러한 지표가 들어가면 대학 측에서도 (학내 민주주의와 관련해) 상당한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선희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팀장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취지와 방향성에 동의한다. 세부 내용을 면밀히 살펴 도입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내 민주주의 지수 담은 진단평가로 대학 내 언론 자유 보장해야

이날 토론에서는 대학 언론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김세준 <한국체육대학보> 조교는 “학내 언론의 자율성은 예산 독립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대학 언론이 겪고 있는 재정적 어려움의 구조를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차종관 대언넷 위원장은 “학내 언론이 교비 등에 너무 의존한다는 것이 문제다. 학생들에게 학보사의 존재 이유를 입증해 보여주고, 자발적인 후원금을 유치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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