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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미래, 뉴스룸 문화에 있다
[단비현장] ‘뉴스룸 민주주의’ 컨퍼런스
2021년 11월 20일 (토) 20:04:29 이예슬 기자 yeslowly@gmail.com

‘우리 모두를 위한 문화 만들기’. <뉴욕타임스>는 지난 2월 조직 내 DEI, 즉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에 관한 진단과 발전 방안을 담은 문서를 공개하며 이런 제목을 붙였다. <뉴욕타임스>는 이 계획이 ‘우리의 저널리즘, 우리의 비즈니스, 그리고 우리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좋은 저널리즘을 위한 조직문화 혁신은 국내 언론에게도 중요한 과제다. 지난달 29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21 저널리즘 주간’에서 ‘뉴스룸 민주주의’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열었다. 행사는 서울시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개최됐고,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이희정 전 <한국일보> 기자가 좌장을 맡은 이날 컨퍼런스에는 기자 4명이 패널로 함께 했다. 김영희 <한겨레> 선임기자, 위재천 <KBS> 기자, 최미랑 <경향신문> 기자, 한성희 <SBS> 기자가 참석해 뉴스룸 문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뉴스룸 문화의 핵심 ‘다양성·공정성·포용성’

우리 뉴스룸은 사회를 더 잘 대변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구성돼 있는가.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와 차이가 충분히 존중되고 있는가. 갈등을 원활하게 풀어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췄는가. 그리고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저널리즘을 위해, 그리고 비즈니스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아는 리더십이 존재하는가. <한국일보>에서 만 29년 근무한 이희정 전 <한국일보> 기자가 좌장을 맡아 이러한 물음에 관해 이야기했다.

   
▲ 이희정 전 <한국일보> 기자는 그간 현장과 학계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은 ‘뉴스룸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이희정 전 기자는 만 29년간 기자로 일하며 품었던 질문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언론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핵심 기반인데, 정작 그 안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 때문에 그는 <한국일보>의 미디어전략실장을 지내면서도 ‘디지털 혁신’ 같은 구호보다 ‘지속가능한 저널리즘을 위한 조직과 조직문화 혁신’에 주목했다. 이 전 기자가 생각한 뉴스룸 민주주의의 요건은 네 가지다. 사회 구성을 반영한 조직 인력 구성의 다양성,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고 치열한 논쟁으로 합의를 끌어내는 포용적 문화, 이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와 ‘리뷰-개선-리뷰’라는 선순환 구조, 이 모든 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리더십 등이다.

이희정 전 기자는 “뉴스룸 안팎의 다양성과 포용 요구에 화답하지 못하면 언론엔 미래가 없다”며 DEI(다양성·공정성·포용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복잡한 사안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기자의 협업이 필요하고, 뉴스 전달 방식 다양화로 개발자나 PD 등 다른 직종과의 협업도 필수적인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엄혹한 언론 환경에서 구성원들에게 더 높은 소속감과 동기를 부여해야만 뉴스룸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 이희정 전 <한국일보> 기자는 뉴스룸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DEI(다양성·공정성·포용성) 실천을 강조했다. 위 사진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하는 <미디어정책리포트> 2021년 4호에 실린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DEI) 지표’의 세부 내용을 갈무리한 것이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룸 너머 전체 언론의 위기 극복까지

그렇다면 DEI를 실천하는 것은 왜 어려울까? 이희정 전 기자는 “상명하복 문화의 조직에서 쓸 기사는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지사적 기자관에 뿌리를 두고 고학벌 위주로 공고화된 엘리트주의 경향이 지금까지도 그 힘을 발휘하며 DEI 실천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모든 걸림돌은 저널리즘의 질이 떨어지고 독자로부터 외면받는 이유와 중첩된다. 그렇기 때문에 DEI를 어려운 실천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언론이 위기를 극복하고 더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생각해야 한다.

이희정 전 기자는 DEI를 실천하고 있는 좋은 사례로 <뉴욕타임스>를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 발간한 ‘2020 그룹 보고서’에서 콘텐츠와 업무 방식, 그리고 인력 구성 다양화에 관한 목표를 제시했다. 매년 ‘다양성과 포용’ 보고서를 내고, ‘젠더 이니셔티브’ 등 여성 관련 프로젝트도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전체 직원과 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이 52%에 이르고, 22~37세 사이의 M세대도 49%를 차지했다. 2015년에는 구성원 중 73%를 차지했던 백인이 지난해에는 63%로 줄었으며, 유색인종 비율은 2015년 27%에서 지난해 33%로 늘었다. <뉴욕타임스>는 ‘아직 유색인종 임원은 부족한 상황’이라며 2025년까지 흑인과 라틴계 임원을 50%까지 늘리기로 했다.

<뉴욕타임스>의 이러한 행보는 한국 언론의 현실과 비교된다. 이희정 전 기자는 <기자협회보>가 지난해 보도한 기사 ‘신문기자 90% 대졸 이상, 뉴스 정보원 55% 50~69세... 사회와 동떨어진 뉴스룸’을 소개했다. 한국 언론의 자화상이 이러하다는 것이다. 이 전 기자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경영-편집 리더십의 혁신이라고 봤다. 그는 “지금 우리 언론계는 리더를 길러내는 시스템 자체가 부재하거나 심각하게 부실한 상황”이라며 “권한과 책임을 가진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어쩌다 아래로부터 시작된 변화 요구와 노력도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고 말했다. 

리더십만이 다양성과 포용, 꾸준한 혁신을 지속 가능하게 하므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자화상부터 솔직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볼 것”을 제안했다. <뉴욕타임스> 등처럼 언론사별로 ‘다양성과 포용 보고서’를 정기 발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별 언론사가 실행하기는 힘들 것이므로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신문협회, 한국방송협회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 전 기자는 <뉴욕타임스>의 DEI 보고서에 나온 말을 인용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괄호 안에는 각 언론사 이름을 넣는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       )를 더 다양하고, 더 공정하며, 더 포용적으로 만드는 데 더 대담해져야 한다.” 

현재 한국 언론은 어떨까

이희정 전 기자의 발제가 끝나고 패널로 참석한 네 기자의 발언이 이어졌다. 기자들은 자사 뉴스룸 문화는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되면 좋을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올해로 만 3년 차 기자인 한성희 <SBS> 기자는 뉴스룸 내 인적 구성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뉴스룸 전체 구성원들의 출신 대학이 비슷하고, 문신이나 염색한 기자는 드물다”며 “신입 기자 교육도 과거에 머물러 있어 자유분방한 사고를 하는 기자들은 금방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16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현재 뉴콘텐츠팀에서 2년째 근무 중인 최미랑 기자는 개발자, 디자이너, PD 등과 일하는 경우가 많다. 최 기자는 “이들은 과거, 기자 위주인 언론사에서 비주류에 해당했지만 뉴스 수용자들의 뉴스 이용 방식과 요구가 다양해진 지금은 언론사 내 주류, 비주류가 따로 없다”며 “다양한 구성원이 활발히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언론에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최미랑 <경향신문> 기자는 DEI 중 D(다양성)을 강조하며 뉴스룸 내에서 개발자, PD 등 기자가 아닌 여러 구성원들과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어려운 상황에서도 뉴스룸 내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한성희 기자는 타사 동료들이 부러워하는 <SBS>의 문화를 소개했다. <SBS>에서는 매일 실시하는 편집회의 내용을 모두 공개한다. 하루에 두 번 부장급이 모여 하는 편집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을 간추리지 않고 발화자와 뉘앙스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한 기자는 “일하다 보면 긴박한 방송 상황 속에서 내가 쓴 기사가 빠지거나 내용이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일이 쌓이면 기자들이 일하면서 주인의식을 잃기 쉽다”며 “편집회의 내용이 공개되니 상황을 다 알 수 있어 마음 상할 일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독립언론실천위원회를 운영한다. 각 부서마다 위원이 있고, 회의가 열리면 해당 기간에 나온 보도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 ‘왜 1면에 그 기사가 들어갔나’ ‘왜 타사는 크게 쓴 보도를 우리는 작게 다뤘나’ ‘왜 그런 광고를 받았나’ 등의 문제를 저연차 기자들도 솔직하게 질의한다. 질문에 관해 국장단이 투명하게 답변하는 시스템이다.

   
▲ 한성희 기자(위)와 김영희 <한겨레> 기자(아래)가 자사 뉴스룸 내에서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개념과 가치가 충돌하는 뉴스룸 안에서 민주주의는 필수적이다. 2004년 <KBS>에 입사해 지금은 디지털뉴스1부 팀장을 맡고 있는 위재천 기자는 “뉴스룸 내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면 사람들이 자꾸 섞여야 한다”며 “파티션으로 나눠진 사무실이 아니라 개방된 공간에서 다 같이 섞여 일할 수 있는 시스템 만드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1993년에 <한겨레>에 입사한 김영희 기자는 “최근 5년 사이 뉴스룸 문화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데, 뉴스룸 문화의 변화를 어떻게 콘텐츠 변화로 연결시키고, 그것을 독자에게까지 전달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이라며 “독자나 전문가 등 제3자로 이뤄진 독자위원회를 만들어 콘텐츠와 보도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편집: 현경아 기자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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