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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불평등, 재난연대세로 풀자
2021년 09월 28일 (화) 11:55:32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jaesay@gmail.com
   
▲ 제정임 원장

번잡한 도로에서 몇 걸음 들어서면 이탈리아 시골길처럼 소박한 정원이 반겨주던 식당이었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과 정해인이 ‘썸 타는’ 장면을 찍었던, 고즈넉하고 이국적인 공간. 10년 넘게 단골로 다녔던 그곳이 지난봄 문을 닫았다. 늘 밝고 싹싹했던 매니저는 “사장님이 코로나 탓에 버티기가 어려워 월세를 좀 깎아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다더라”며 풀죽은 표정을 지었다. 고객은 추억의 공간을 잃고, 직원은 일자리를 잃고, 주인은 생업을 잃는 ‘코로나 폐업’을 직접 보니 마음이 스산했다. 소상공인연합회 발표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확산 1년6개월 동안 문을 닫은 점포가 45만3천여 곳이나 된다.

놀라운 것은 ‘폐업’ ‘임대문의’ 공지가 건물마다 나부끼는데도 부동산 가격은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대응을 위해 엄청나게 풀린 돈이 경기와 무관하게 국내외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 코로나 초기 곤두박질했던 주식 가격도 전반적으로 코로나 이전보다 크게 올랐다. 그래서 부동산·주식 등 자산을 많이 가진 이들은 재난 중에 오히려 더 부자가 됐다. 접촉을 꺼리는 환경에서 화상회의, 인터넷쇼핑, 배달앱, 소셜미디어 등의 사용이 폭증하면서 정보기술(IT) 기업들, 특히 ‘빅테크’라 불리는 대기업들은 돈을 쓸어 담고 있다.

‘케이(K)자 양극화’란 말처럼, 코로나 재난 속에서 이렇게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지난 1월 <불평등 바이러스> 보고서에서 “팬데믹 이후 각국의 소득 불평등, 인종과 성별 불평등, 교육 불평등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에서는 임시·일용직 노동자, 자녀가 있는 여성 가구주, 영세 자영업자 등이 실직과 소득 감소 등의 직격탄을 맞고, 자산가와 테크기업 등은 더 부유해지는 양극화가 뚜렷하다. 음식점, 주점, 카페, 노래방, 여행업 등 ‘집합금지’와 ‘영업제한’ 피해가 집중된 업종의 자영업자 상당수는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들이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다. 어떤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산 자는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와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다.

   
▲ 지난 23일 오전 전북 전주시청 앞 노송광장에서 한국외식업중앙회 전북지회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거리두기 강화에 따른 손실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들의 비명에 우리 공동체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딱하지만 어쩌겠느냐’ 하고 외면해도 될까.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국은 ‘국가가 책임진다’고 나섰다. 방역을 위해 생업을 희생함으로써 의료와 경제 시스템 붕괴를 막아준 자영업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한다는 것이다. 이들 정부는 매달 고용 유지에 필요한 임금을 보조하고, 줄어든 영업이익의 일부를 보상하거나 이익이 감소한 비율만큼 임대료를 지원하는 정책 등을 펴고 있다. 그래서 폐업이 많지 않다. 소액 지원금을 몇 번 주는 데 그친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특히 코로나 대응과 인프라 재원 마련 등을 위해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소득세·법인세 등의 과감한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된 시스템에서 큰돈을 벌었다면, 그 소득의 일부로 희생자를 지원하고 불평등을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연대(solidarity)’의 정신이 배경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취지에서 ‘특별재난연대세’ ‘사회연대특별세’ 등을 정의당 장혜영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참여연대 등이 제안했지만 논의가 거의 안 되고 있다. 이들 법안은 자영업자, 취약노동자 등의 코로나 피해를 보상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3년 정도 한시적으로 고소득 개인·법인에 추가 세금을 물리자는 내용이다. 지난 7월 제정된 코로나손실보상법의 적용 대상과 예산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에, 재난연대세가 현실적 대안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당은 내년 대선에서 표 떨어질까 걱정인지 증세 얘기는 안 하는 분위기다. 제1야당은 원래 증세에 부정적이다. 걱정이다. 한쪽에선 방역 지침을 지키다 돈줄이 말라 한계에 몰리는데, 다른 쪽에선 돈이 넘쳐 투기 거품을 키우는 구조를 방치하면 결국 보건도 경제도 지키기 어렵다. 장차 기후위기 등 더 큰 재난이 닥쳤을 때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지금 연대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언론이 국가의 역할을 매섭게 질문하고, 국회와 정부는 재난연대세의 구체적 답안을 내기 바란다. 지금 대한민국에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다. 넘치는 곳에서 걷어 부족한 곳을 채울 정치적 의지다.


* 이 글은 <한겨레> 9월 28일자에 실린 [제정임 칼럼]을 신문사의 허락을 구하고 전재한 것입니다. 

편집 : 전윤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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