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랑 칼럼] NCCK 이달의 시선

코로나 팬데믹 1년이다. 소상공인의 휴·폐업이 속출하고 비정규직과 일용직, 자영업, 비공식 노동자, 청년, 여성은 경제적 빈곤과 심화한 불평등에 허덕인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아픔은 집단 상실감과 불안, 무기력, 우울을 낳았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라 불리는 사회현상이다. 시대정신은 뉴노멀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좌절조차 감싸지 못한다. 이에 NCCK 언론위원회는 1월의 주목하는 시선으로 "흰 눈 내리던 날, 그 코트와 장갑"을 선정하고, 오늘 우리 사회의 민낯과 시대 과제에 주목한다.

새해 미담에서 만난 우리 사회의 민낯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흰 눈 내리는 그날 아침, 추위와 허기에 기진한 노숙인이 행인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 사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행인은 묵묵히 자신의 코트와 장갑을 벗어 노숙인에게 건넸다. 지갑에서 5만 원 지폐까지 꺼내 주었다. 기자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었다.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미담은 다음 날 아침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새해에 마주한 감동이었다. 이 힘든 세상에 여전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감동과 희망은 이내 애틋함을 넘어 분노로 이어졌다. 미담에서 우리는 사람의 두 얼굴을 마주한다. 하나는 추위와 생계위협, 코로나감염에 노출돼 생존 위기에 맞닥뜨린 사회적 약자의 얼굴이었다. 이들은 절규했지만 우리는 이들의 절규를 듣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서슴없이 자신의 코트와 장갑을 벗어주고 현금까지 건넨 개인의 얼굴이었다. 묻는다. 국가는, 정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언제까지 구조적인 사회문제를 행정력과 법제가 아니라 개인의 미담으로 해결하려는가. ‘흰 눈 내리던 날, 그 코트와 장갑’은 오늘 한국 사회의 가치와 질서, 삶의 양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NCCK 언론위원회가 “흰 눈 내리던 날, 그 코트와 장갑”을 이달의 <주목하는> 시선으로 선정한 이유다.

▲ 많은 눈이 내린 지난달 18일 서울역 앞에서 한 시민이 노숙인에게 자신의 코트와 장갑을 벗어 주고 있다. <한겨레>는 이튿날 1면에 이 사진을 실었다. ⓒ 정길화

우리 사회 불평등과 격차를 심화한 코로나 팬데믹 

팬데믹 이전에 이미 우리 사회는 부와 노동구조에서 불평등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하루 7명씩 죽어가는 노동자들, n포 세대라 불리는 청년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 증거다. 일상화된 ‘불확실성’ 속에서 생존 자체가 ‘불안’하고, 구성원이 사회의 ‘불공정’과 자신의 초라한 사회적 위치에 ‘불만’을 가진 ‘불행’한 ‘5불 사회’였다. 이들을 케어할 공적 사회안전망은 부족하거나 아예 없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경제적 고통은 오롯이 국민에게 전가됐다. 국민이 금붙이를 모으고, 허리띠를 졸라맬 동안 국가는 책임지지 않았다. 오로지 개인 몫이었다. 불평등과 격차는 점점 심화했고, 하위 계층의 사회적 약자들은 약육강식, 각자도생 시장에서 아슬아슬한 벼랑 끝 삶을 살아야 했다. 

코로나는 기름에 던져진 불이었다. 집요하게 사회적 약자들을 파고들어 삶의 현장을 부수고 생존을 위협했다. 거리 두기로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자, 인천 노숙인이 한 끼를 위해 서울까지 원정 왔지만 헛걸음이었다. 노인계층은 노화와 질병으로, 코로나로 삼중고에 노출됐다. 식당일, 청소일 마저 끊긴 여성 노인은 길거리에서 종이상자를 줍는다. 특수고용노동자와 프리랜서노동자는 아예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청년은 취업을 포기했다. 취업절벽은 경력 상실로 이어지고 청년은 저임금 계층으로 굳어져 ‘잃어버린 세대’로 전락할 처지다. 청년층의 저임금·고용불안이 길어지면 불평등이 굳어지고, 이들이 가족을 부양할 능력을 잃어 사회복지비용이 늘어난다. 재난과 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코로나는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한 이들의 시공간, 삶을 오롯이 드러내며 우리에게 경고한다. 코로나 이후, 불평등과 격차는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질 것이다. 지금의 눈물과 아픔은 좌절과 분노로 바뀔 것이다. 라고.

‘K방역’ 성공신화의 이면

이름마저 ‘K방역’이었다. 정부는 자랑했고 국민은 자부심을 느꼈다. 세계가 인정했다. K방역 성공은 자발적으로, 충직하게 방역 당국의 지침을 따른 시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참여는 곧 희생을 의미했다. 가게가 문을 닫고, 일자리가 끊겨도 나라가 하는, 우리 공동체의 안전을 위한 방역이니 묵묵히 견뎠다. 일자리를 잃은 일용직, 비정규직은 하루 끼니가 어려웠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저축을 깨고, 카드 돌려막기로, 대출로 임대료와 빚을 메꾸며 생계를 위해 n잡으로 일자리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희생에는 보상이 따라야 하지만, 실질적 보상은 없었다. 정부가 3차례에 걸쳐 지급한 푼돈으로는 경제난 해소는커녕 생계유지도 되지 않았다. 대국민 경제적 지원을 선언한 대통령의 신년사, 다보스포럼 연설은 구호로 그쳤다.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개인들이 나서 착한 임대료 운동, 사전 결재하기 운동을 벌였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코로나 시대의 눈물과 고통은 이웃의 선한 의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미담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이라는 시스템과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해소할 사회 전반의 개혁이 필요했다.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정부와 행정에 불복하고, 시위에 나섰다. 몇몇 교회를 제외하곤 방역 당국의 행정명령에 대놓고 공식적으로 반발한 ‘사태’는 처음이다. 학원 교습소 원장, 요식업 자영업자, 필라테스·피트니스 종사자, 당구장 업주들이 영업 재개를 촉구하며 더불어민주당사,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고, 기기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열었다. 전국 실내체육시설 업주 모임인 필라테스·피트니스 사업자 연맹(피트니스 연맹)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제기했다. 헬스장 업주 대표가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문을 열자’는 글을 올렸더니 전국에서 500여 곳이 “과태료를 물리려면 물리라”며 동참했다. 이들은 헌법소원까지 낸단다. 방역 당국의 지침에 충실하게 따르던 선량하기만 하던 시민들이었다. 공동체와 서민의 삶이 붕괴하면서, 이제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K 방역 성공신화가 사회적 약자들의 삶과 함께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독일의 재정지원정책

세계 각국의 재정 지원은 규모와 구체적인 정책에서 우리와 달랐다. 미국은 1년 예산의 4배나 되는 2조 6천억 달러를, 아시아 주요 국가는 7조 달러를 집행했다. 일본은 GDP의 절반에 가까운 2조 2천억 달러를, 중국은 GDP의 7%를 배정했다. 특히 주목할 대상은 미국이다. 지난해 재정적자가 역대 최고치인 3조 1,300억 달러였고 올해도 2조 3,000억 달러를 전망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조 9,000억 달러(약 2,000조 원)에 달하는 부양안을 발표했다. 이름마저 ‘미국 구조 계획’이다. 미국은 지난해 3월에 3조 달러, 12월에는 9000억 달러를 이미 집행했다. 미국구조계획은 1인당 현금 1,400달러(약 154만 원)를 추가 지급하고 실업수당과 임대료 지원도 현실화했다. 주당 300달러였던 실업수당은 400달러(약 43만 원)로 인상하고, 기간도 3월 말에서 9월 말로 6개월 연장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중, 저소득 가구의 임대료 지원에 250억 달러를 추가 배정했다. 이달 말 종료될 예정인 세입자 퇴거 중단 조처는 9월 30일까지 연장했다. 바이든은 소상공인에게 직원 급여를 지원하는 기존의 급여 보호 프로그램(PPP)과 별개로 150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보조금 신설도 의회에 제안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 당장 행동할 것”이라 천명했다

독일은 필요한 예산의 40%를 빚으로 충당하면서까지 대국민 재정 지원에 나섰다. 최근 6년간 신규 대외채무가 전혀 없던 나라로선 중대한 정책변화였다. 독일은 지난해 12월 3차 유행이 확산하자 슈퍼마켓·약국 등 필수 업종을 제외한 모든 상점과 학교 문을 닫았다. 봉쇄 조처와 동시에 과감한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피해 업종에 투입할 예산은 112억 유로(약 15조 원)로, 인건비·임대료 등 고정비의 최대 90%를 지급하는 규모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예산 5천억 유로(약 667조 원) 중 1,800억 유로(약 240조 원)를 국가부채로 조달한다. 이들 예산의 40%가 빚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가 장기화할 것을 대비해 2025년까지 국채 조달 계획까지 세웠다. 언론에 보도된 독일 연방정부 당국자의 말은 교훈적이다. “가게 문을 닫아도 고용과 생계가 유지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방역이 성공할 수 있다.”

‘K자 양극화’로 진화한 부와 노동의 불평등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세 차례 재난지원금을 조성했다. 코로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는데, 지원액(직접지원액 기준)은 14조3천억→7조8천억→6조 7천억 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정부가 먼저 준비해 지원에 나서지 않았다. 여론에 떠밀려 나온 지원 계획은 규모도 대상도 방식도 주먹구구식이었다. 정부 입장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가 코로나 19 위기 대응과정에서 43.9%로 올랐고, 올해는 47.3%, 2024년에는 59% 전후가 될 것이라며 국가채무 증가속도를 경계했다. 국가신용등급 평가기관들의 시각도 우려했다. ‘곳간 지기’ 시선은 사람을 향하지 않았다. 국가는 재해재난과 경제위기에서 국민을 돌볼 책임과 의무를 버렸다. 사회적 약자들과 눈물과 고통, 정부의 지침을 따르느라 무너진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아픔과 좌절을 외면했다. 그가 내세우는 ‘재정 건전성’은 지난 세월 동안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이 부와 노동의 불평등 개혁을 막기 위해 내세웠던 ‘경영의 효율성과 낙수효과’ 논리의 둔갑술일 뿐이다.

우리 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적게 재난지원금을 지원했다는 비난 속에, 코로나는 부와 노동의 불평등과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른바 ‘K자 양극화’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는 더욱 나락에 떨어지는 ‘K자 양극화’ 공포는 이미 현실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19 충격은 국가별로는 신흥국과 비IT 수출국, 업종 및 계층별로는 대면업종과 저소득층에 집중되고 있다. 위기극복을 위해 풀린 막대한 저금리 자금이 자산 시장으로 흘러들면서, 주식과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은 더 부자가 됐고, 싼값에 빌린 신용대출을 굴려 한 번 더 돈을 벌었다. 거리 두기와 비대면 상황이 이어지면서 전통적인 오프라인 자영업이 몰락했고, 온라인·플랫폼사업이 그 몰락을 그대로 흡수했다. 생계형 밑바닥 경제는 생존을 위협받지만, 부동산·금융 등 자산가들과 대기업은 여전하거나 외려 호황임을 보여준다(한국은행, '코로나19 위기 이후의 성장 불균형 평가: 국가간·국가내부문간 차별화된 충격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 문제는 이 ‘K자 양극화’가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져 불평등과 격차가 심화하면서 민생의 고통이 더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K자 양극화’는 현장에서 데이터로 드러난다. 지난해 고용은 21만 8천 명이 줄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취업자 수가 최대 감소 폭이다. 일자리 감소는 대면 서비스 업종인 숙박·음식점업과 도·소매업의 취업자, 임시·일용직 노동자, 자영업자 등에 충격이 집중됐다. 특히 코로나 3차 유행이 시작된 지난 12월 고용 감소는 무려 62만 명이다. 하위층의 소득 감소도 심각하다. 지난해 1분기에 소득 하위 10%부터 근로소득이 급감했고 2분기엔 하위 20~30%, 4분기엔 중위층까지 줄었다. 소득 하위 10%(1분위)의 1~3분기 근로소득은 전년 동기에 대비해 29.2%, 25.5%, 17.0% 감소했다. 임금 불평등도 심화했다. 지난해 상반기 지니계수는 0.306으로, 전년 동기(0.294)보다 0.012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0부터 1까지 수치로 표현되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심화를 뜻한다. 연령별로는 29세 이하 청년층의 임금 불평등 심화가 두드러졌다. 부채도 늘었다. 지난해 말 은행권 대출 잔액은 가계가 988조 8,000억 원, 기업은 976조 4,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각각 100조 5,000억 원, 107조 4,000억 원 증가했다. 불황의 직격탄은 자산이 적은 가계와 전통·내수기업에 몰렸다. 통계는 이들이 코로나 위기를 빚으로 버티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는 경고한다. “소득과 고용, 기업매출 등이 대부분 코로나 19에 따른 영향과 맞물려 있어 코로나 19가 진정될 때까지 양극화 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장기화할수록 경제의 이중구조 심화, 성장 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해 경제회복이 더뎌질 수 있다.”(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 

▲ 코로나는 부와 노동의 불평등과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는 더욱 나락에 떨어지는 ‘K자 양극화’ 공포는 이미 현실이다. 코로나 이후 경제가 회복하더라도 산업간·계층간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 MBC뉴스

‘K 자 양극화’는 이제 심화를 넘어 고착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억만장자들은 코로나 19 손실을 메우는데 1년 이 채 안 걸렸지만, 빈곤층은 10년이 걸려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왔다. 더 신속하고 과감한 제도와 정책이 최선이다. 가난의 사각지대는 “경쟁에서 이탈한 이들이 머무는 각자도생의 영역”이었다(소준철, <가난의 문법>).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각자도생해야 하는 가난의 사각지대를 지금 끊어내지 않으며 ‘K자 양극화’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는 대전환과 국가 재설계의 기회

시급한 것은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재정 지원이다. 모두가 국가의 역할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주체는 국가밖에 없다. 생존 위기에 처한 사회적 약자를 돌볼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이들을 보호하는 건 국가 의무다.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국민이 입은 손실을 정부가 보상하는 건 헌법이 규정한 국가 책임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지원하고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상할 재정을 대폭 확대하고, 임대료 감면과 세제 혜택, 금융정책 등 정부가 할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 홍익표 의장은 1)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45.9%로 선진국 평균(131.4%)보다 현저히 낮다, 2) 국제통화기금(IMF)이 2020년 한국의 기초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7%로 34개 선진국 중 두 번째로 낮게 전망했다, 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0년 한국의 일반재정수지를 국내총생산의 4.2% 수준으로 42개 주요국 중 네 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예측했다는 점을 들어 우리 정부가 코로나 위기극복에 재정을 더 확대해도 문제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도 한국 재정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국가는 때를 놓치지 말고, 재정을 확보해 국민의 고통을 덜라.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이다. 국민이 곧 국가다. 국가의 재정 건전성보다 국민의 생존이 우선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정치권의 재난지원 담론을 주도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코로나 경제 3법, 손실보상제, 코로나 이익공유제, 사회연대세, 특별재난연대세 등 재난 해법 담론은 정당마다, 정치인마다 말로만 무성하다. 헌법정신을 구현한다는 손실보장제는 소급시행이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1년의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논쟁은 허공을 맴돈다. 이 정부가 누구인가.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태어났다. 국민은 사회 적폐와 구조적 불평등을 청산하고 개혁과제를 달성하라는 준엄한 명령을 내렸다. 정부 출범에서 여당 압도의 국회까지 만들어 주었다. 재난지원금 지급과 손실보상을 위한 법 제정을 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일 때가 아니다. 노동현장과 공동체의 삶이 무너져 신음 중이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더 신속하고 과감한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라. 대통령이 재정에 대한 긴급 명령권을 발동해, 100조를 만들어 위기를 극복하라는 국민의 힘 김종인 위원장의 발언이 더 돋보이는 현실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지금의 위기는 평상적 방법으로 이겨낼 수 없다. 본질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19가 국가와 사회를 재설계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숨 가쁘게 달려온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속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뒤를 돌아보고 대안을 찾으라고 권고한다(세계경제포럼 연례회의(다보스포럼), <불평등 바이러스> 보고서). 심화하고 고착화되고 있는 ‘K자 양극화’의 실태와 세상의 변화를 주목하고, 코로나 19 이후 전환시대의 전략과 과제들을 찾아내야 한다. 기본은 부와 노동의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는 일이다. 사회안전망을 확대하고, 소득재분배로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하는 전면적인 복지개혁이 필요하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등장, 4차산업혁명과 고령화 사회 등 변화하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자가 공동체의 건강한 가장 역할을 하도록, 노동자의 권리과 협상력를 강화한 실질적인 사회적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구와 생명, 사람이 공존할 생명공동체를 만들어 내야 한다. 

지금, 코트와 장갑이 필요하다

거리 두기 2.5단계는 설 연휴 이후까지 연장되었다. 한 시간이라도 영업 연장을 희망했던 자영업자의 기대와 달리 영업시간도 밤 9시 그대로다. 비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많던 논의들은 슬며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행정력도 정치도 실종했다. 언론도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세계 각국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규모의 어마어마한 재정 지원 정책을 보도하지 않았다. 보수언론들은 정부의 빚이나 증세를 통한 재정 지원을 강하게 반대한다. 양극화 해소가 절실하다면서, 가장 핵심인 재원 마련 방안에 어깃장을 놓는다. 이익공유제, 특별재난연대세, 사회연대기금 등 양극화 완화를 위한 재원 대책들을 ‘반시장·반헌법적 정책’으로 규정한다. ‘편 가르기’ ‘기업 팔 비틀기’ ‘선거용’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코로나 때문에 돈 벌었으니 토해내라고 요구한다고 될 일인가.”(조선일보) “이분법적 사고이고 위험한 발상”(중앙일보)이라 주장한다. 야당은 보수언론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포스트 코로나 준비에는 여야나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없다. 오직 사람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눈 내리던 날 한파 속에서 코트와 장갑을 주고받던 행인과 노숙자의 사진을 본다. 펑펑 쏟아지는 흰 눈 속 정경은 평화롭고 아늑해 보이지만, 추위와 끼니를 걱정하며 생존 위기에 처한 사람의 절박함과 사회안전망의 부재 속에 자신의 모든 걸 내주는 시민의 마음을 읽는다. 사람들의 절규를 애써 외면하는 오늘이 슬프고 한심해도 사람에 대한 희망을 건다. 다시 사람이다. 사진 속 두 사람은 우리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공동체 구성원이고 함께 연대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동반자다. 이들이 희망이 되려면 미담과 시스템을 결합해야 한다. 사람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했다(프란치스코 교황). 안다는 것은 감당하는 일이고, 대상을 껴안는 일이라 했다(신영복). 개인의 미담에만 기댈 순 없다. 국가는 나락에 떨어진 삶을 보상할 실질적인 방법을 당장 찾아내라. 춥고 배고픈 이에게 코트와 장갑을 나누어주라. ‘코로나 양극화’는 현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극화가 고착화하면서 소득·자산 격차는 더 심해지고, 삶의 고통도 깊어질 것이다. 올해가 포스트 코로나 대전환의 원년이 되게 하자. 대전환 뉴딜의 원년이 되게 하자. 여전히 암울하고 힘들지만, 우리는 다시 희망으로 무장하고 미래를 꿈꾸어야 한다. 


편집 : 김은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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