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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초자산을 버리자, 정의롭게
[제정임 칼럼]
2021년 08월 25일 (수) 20:59:34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jaesay@gmail.com
   
▲ 제정임 원장

1970년대까지 미국 학생운동의 본산이었던 버클리대는 이후 잠잠한 듯 보였지만, 두 가지 사건으로 ‘행동주의’ 전통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버클리 학생들은 1985년 흑백분리(아파르트헤이트)로 악명 높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남아공 정부와 유관 기업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라’고 대학 당국에 요구했다. 버클리 캠퍼스 외에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등 10개 주립대를 운영하는 캘리포니아대학(UC)은 이들의 끈질긴 시위에 항복, 남아공에 투자했던 5조 원대 대학기금을 회수했다. 이는 다른 기관들의 투자회수로 번져, 1990년대 남아공이 인종차별정책을 포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버클리 학생들은 2014년 다시 한 번 일어났다. 이번엔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화석연료기업 투자를 철회하라’는 요구였다. 전 캠퍼스로 번진 시위 끝에, 캘리포니아대학은 2019년 “대학기금으로 화석연료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돈은 힘이 세다. 캘리포니아대학 등 교육기관 외에 많은 연기금과 금융회사들이 가세하면서, ‘기후금융(climate finance)’이 전 세계 투자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블랙록과 골드만삭스 등 초대형 자산운용사들이 화석연료 기업들을 ‘손절’하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기업 투자를 늘리고 있다. 버클리 학생 시절 남아공 시위에 동참했다는 마이클 만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교수는 <신기후전쟁(New Climate War)>에서 ‘좌초자산(stranded asset)’을 버리는 투자자들 동향을 소개했다. 좌초자산이란 사업 여건 변화로 수익이 나지 않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자산인데, 석탄발전소·석유시설 등이 기후위기시대의 대표적 좌초자산이다. 만 교수는 “돌이 부족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게 아니다”며 화석연료시대 역시 관련 자산이 대거 좌초된 채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의 경제성 향상과 투자자 행동주의가 이를 촉진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런 세계적 흐름과 대조적으로, 국내에서는 내로라하는 금융회사와 대기업들이 여전히 좌초자산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 대표적으로, 포스코 자회사가 삼척화력발전소를 짓는 등 6기의 석탄발전소가 새로 건설되고 있다. 한국전력은 베트남·인도네시아 석탄발전소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석탄발전은 온실가스 발생량의 30%를 차지하는 ‘기후위기 주범’이자 ‘미세먼지 원흉’인데, ‘2050 탄소중립’을 외치면서도 가동연한 30년의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이들 기업은 ‘이미 많은 돈을 들였기 때문에’ 완공해야 한다며, 더 지을수록 더 골치 아픈 좌초자산이 될 위험성을 외면한다.

   
▲ 지난 5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 등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나선 녹색당 이은호 기후정의위원장(맨 오른쪽)과 격려 방문자들이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강훈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석탄발전소를 줄여야 하는데도 ‘전력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 ‘기업들 손해가 크다’며 공사를 중단할 수 없다고 한다. 반면 선진국들은 빠른 속도로 석탄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면서 사업자·노동자·지역사회 지원대책을 병행하고 있다.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 추진하는 독일은 1990년 전력생산의 57%를 석탄·갈탄에, 28%를 원자력에 의존했지만 2020년에는 석탄·갈탄 23%, 원전 11%로 줄였다. 대신 신재생에너지(44%)를 대폭 확충했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일조량이 적은 악조건에서도 일관된 지원정책으로 태양광발전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독일은 또 석탄발전소를 빨리 폐쇄할수록 큰 보상을 주는 경매제를 도입해 기업의 자발적인 사업전환을 유도하고, 노동자들의 직업전환과 생계 지원, 지역사회 재생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누구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게으른 변명을 접고, ‘정의로운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달 6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헌법 1조 개정 제안 기자회견’에서 한 청년대표는 “기후위기 때문에 개죽음을 맞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기후행동 시위에서 중고생들은 “우리도 늙어서 죽고 싶다”고 외친다. ‘비명횡사’가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는, 기후변화 외엔 설명할 수 없는 초특급 태풍·홍수·폭염·산불로 각국에서 사망자가 속출했다는 뉴스와 함께 나날이 갱신된다. 이런 생존 위기를 가속화하는 석탄발전소를, 경제적으로 ‘폭망’인데도 계속 지어야 하나. 이제는 제발 좌초자산을 버리자, 최대한 정의롭게.


* 이 글은 <한겨레> 8월 24일자에 실린 [제정임 칼럼]을 신문사의 허락을 구하고 전재한 것입니다.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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