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③ 한국포럼 ‘지구의 미래, 우리의 미래’ 현장

“지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플랜B는 없습니다.” 

12일 오전 9시 서울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2021 한국포럼’에 기조강연자로 나선 반기문 전 유엔(UN)사무총장이 말했다. ‘지구의 미래, 한국의 미래’를 주제로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그는 “신은 항상 용서하고,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인용하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날 포럼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현장 참석 인원을 100명으로 제한한 가운데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코로나19는 지구환경 남용한 인류에 자연이 내린 벌” 

▲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2021 한국포럼 기조강연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 강훈

반 전 총장은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며“인류가 기후협정을 잘 이행하지 않고 지구환경을 남용한 탓에 자연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5000만 명이 사망한 1918년 스페인 독감부터 2019년 코로나19까지,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의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짧아지고 있는 질병의 발생 주기는 빨라지고 있는 기후변화의 속도와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기조연설에 이어 방송인 타일러 라쉬 씨와 한정애 환경부장관의 대담 ‘탄소제로, 라쉬가 묻고 한 장관이 답하다’가 진행됐다. 라쉬 씨가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조기에 달성할 수는 없는지’ 묻자 한 장관은 먼저 중화학공업 중심의 한국경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반드시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 산업계, 시민사회를 비롯한 모든 주체가 참여한다면 조기 달성도 가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유엔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계획과 관련,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오는 10월에 국내에서 발표한 뒤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지난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한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출간한 방송인 타일러 라쉬 씨(왼쪽)가 한정애 환경부장관에게 한국의 탄소중립 달성 계획을 묻고 있다. ⓒ 강훈

동아시아 재생에너지 전력망 구축 바람직 

‘삭스 교수에게 듣는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주제로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와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의 대담이 이어졌다. 삭스 교수는 “기후위기의 ‘완화(mitigation)’가 ‘적응(adaptation)'보다 중요하다”며 “기온이 지금까지와 같은 추세로 상승하면 적응정책은 꺼내들 수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구온도 상승을 막기 위해 탄소배출을 억제하는데 집중하지 않으면 인간이 적응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지구환경이 급변할 것이라는 의미다.  

삭스 교수는 한국 정부가 탄소배출권거래제보다 탄소세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배출권거래제는 복잡하고 명확한 기준이 없는데다 5~15년 이후에 대한 명확한 신호가 없는 반면 탄소세는 분명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석연료를 쓰는) 기업들이 앞으로 세금이 점점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탈탄소화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한국 정부도 지금부터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세금을 올려 기업을 향해 명확하고 일관된 신호를 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탄소세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제품에 물리는 세금이다.

▲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탄소세 도입 등 한국의 기후위기 완화 전략을 조언하고 있다. ⓒ 김정민

삭스 교수는 이어 한국이 현재 6%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려면 중국,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상호 연계된 전력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풍력발전에 유리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있고,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있기 때문에 이웃끼리 협력해 발전망을 구축하면 재생에너지의 잠재력을 더욱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진 특별 강연에서 ‘숲이 지구를 살린다’ 주제로 발표한 신원섭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는 “산림의 탄소 흡수 능력을 활용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 규모를 감축하고 기술 혁신에 큰 비용을 들여야 하는 다른 배출규제에 비하면 산림을 재정비해 탄소흡수원을 확충하는 방식은 매우 비용이 적게 들고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수령 50년 이상 된 나무는 온실가스 흡수량이 급격히 감소하는데, 우리나라는 산림의 대부분이 1970~1980년에 인공적으로 조림됐기 때문에 2050년이 되면 온실가스 흡수량이 현재의 30%까지 감소한다”며 50살 이상 나무를 베고 새로운 묘목을 심을 것을 제안했다.  

서울 전력 소비 80%가 건물...제로에너지 건축 시급  

이명주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는 ‘기후위기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적자생존도시는 무엇인가’ 주제의 발표에서 ‘에너지 절약 건축물로 구성된 제로 에너지 도시’를 제안했다. 이 교수는 서울시 전체 전력 사용량의 83%가 건물에서 발생할 정도로 건축물의 에너지 사용량이 막대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UN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30년까지 2017년 배출량의 24.4%를 줄이는 것이다. 이 교수는 “24.4% 감축을 100으로 봤을 때 이 중 46%를 건축물 부문에서 줄여야 한다”며 건축물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원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이명주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가 제로 에너지 건축물을 통해 생존 가능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이정민

그는 “우리나라에도 건축물 분야 제로 에너지 로드맵이 있지만, 신규 인허가를 받은 건축물에만 해당되는 로드맵”이라고 꼬집었다. 국토교통부가 ‘녹색건축물 조성지원법’에 규정한 제로 에너지 빌딩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교수는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자립률에서 (가장 낮은) 5등급을 받아도 제로 에너지 건축물로 인정이 된다”며 ‘준’ 제로 에너지에 그치는 느슨한 기준점을 지적했다. 그가 제안한 제로 에너지 도시는 건물 간의, 혹은 건물과 재생에너지 생산자 간의 거래를 통해 화석연료 사용량을 제로(0)로 만드는 도시다. 그가 참여해 2017년 완공한 국내 최초 제로 에너지 주택인 ‘노원 에너지 제로 주택단지’는 열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패시브설계 요소기술’로 난방에너지 사용량을 75% 이상 절감했으며 태양광 발전 등으로 91.2%의 에너지 자립률을 기록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선출직 공직자 압박해야 

래퍼 겸 환경운동가로 활동 중인 시우테즈칼 마르티네즈(21)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청년의 연대를 주장했다. 그는 미국 콜로라도 지역에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며 중앙정부에 관한 기대감을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정치자금을 대주는 석유가스 기업의 입김에 휘둘려 사업확장 계획을 수락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세대가 이런 문제와 관련해 선출직 공직자를 압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래퍼 겸 환경운동가 시우테즈칼 마르티네즈가 기후위기에 대항하는 각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 이정민

이어 ‘탈탄소 시대, 우리의 선택은’이라는 주제로 종합 토론이 이뤄졌다. 이형희 에스케이(SK)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은 “지금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하느냐 마느냐 선택할 단계가 아니라 무조건 빠르게 ESG로 전환해 경쟁력을 높여야하는 시기”라며 “글로벌 금융계나 글로벌 정부의 정책들이 우리에게 그걸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다”고 말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권도 석탄발전소 건설을 위한 자금지원을 아예 중단해버리거나 수천억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하는 등 엄청난 속도로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며 ESG를 외면하는 기업들은 점차 투자를 받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종합토론에서 발언하는 각계 전문가들. 왼쪽부터 김상협 제주연구원장, 조홍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 ⓒ 김정민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룩하려면 30년 동안 탈탄소 정책을 일관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며 초당적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홍식 교수는 “지난 4월에 독일 최고법원인 연방헌법재판소가 ‘독일의 기후변화대응법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사실이 정말 충격적이고 의미심장하다”며 “역사상 최악의 기후위기 사태에 직면해 법처럼 보수적인 영역도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편집 : 김대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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