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① ‘탄소중립’ 선언하고도 7기 건설 강행

지난달 12일 오전 7시쯤,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정문 앞 보도가 피처럼 붉은 물감으로 뒤덮였다. 흰색 방호복을 입고 등짐펌프를 멘 기후위기비상행동 활동가 다섯 명이 순식간에 뿌린 것이다. 활동가들은 ‘기후악당, 노동악당, 인권악당 포스코 삼진아웃’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포스코 직원들이 막아선 가운데, 이들은 약 2시간 동안 시위를 이어갔다. 

활동가들은 철강을 만드는 포스코 사업장에서 엄청난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데다, 자회사 삼척블루파워가 강원도 삼척에 석탄발전소까지 짓고 있기 때문에 포스코는 ‘기후악당’이라고 성토했다. 또 2018년부터 이 회사에서 산업재해로 노동자 21명이 숨졌기 때문에 ‘노동악당’이며, 시민을 학살하는 미얀마 군부와 포스코가 사업상 결탁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악당’이라고 덧붙였다. 

포스코센터 앞에 붉은 물감을 뿌린 까닭은  

▲ 피를 상징하는 빨간 물감을 포스코센터 앞 보도에 뿌린 기후위기비상행동 활동가들이 ‘기후악당 아웃’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이들은 포스코가 배출한 온실가스·미세먼지로 숨을 헐떡여야 했던 사람들,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 군부에 희생당한 미얀마 시민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빨간 물감을 뿌렸다고 말했다. ⓒ 기후위기비상행동

이날 시위에 참여한 박이현 기후위기비상행동 액션팀장은 지난 23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포스코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를 차지하고 있다”며 “특히 삼척블루파워가 온실가스 배출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기 때문에 기후악당으로 지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삼척석탄화력의 공정률(현재 약 35%)이 올라가 매몰 비용이 더 커지기 전에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센터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포스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300만t으로 국내 기업 중 1위이며, 국가 전체 배출량의 약 1/10 규모다. 

지난 2018년 8월 착공돼 2024년 10월 가동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삼척석탄화력 1, 2호기는 2017년 환경영향평가에서 가동기간 중 연 1280만 톤(t)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그해 한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7억970만t 중 1.8%에 해당한다.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 58기와 건설 중인 7기 등 65기의 발전소는 모두 해안지대에 있다. 서해에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충남 당진시·태안군·보령시·서천군에 총 35기가 있다. 남해에는 전남 여수시, 경남 하동군·고성군에 20기가 있다. 동해에는 강원도 삼척·동해·강릉시에 10기가 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내뿜는 석탄발전소로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탄소배출·미세먼지 원흉, 한반도 3면을 둘러싸다  

▲ 우리나라 석탄발전소 현황. 한 회사가 해당 지역에 여러 개 발전기를 건설하는 사례가 많다. 현재 가동 중인 발전소는 총 58기, 건설 중인 발전소는 7기다. ⓒ 기후솔루션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 가운데 석탄발전 비중은 2020년 기준 36%다. 2019년의 40%와 비교해 4%포인트(p) 떨어졌지만, 여전히 전체 발전량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석탄발전은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8년 한국에서 이산화탄소는 총 6억t이 발생했는데, 그중 3.13억t이 석탄에서 나왔다. 즉 국내 탄소배출의 52%가 석탄발전소 등 석탄을 이용하는 사업장 책임이다. 탄소배출량을 추적하는 국제 과학자 연구플랫폼인 글로벌카본아틀라스(Global Carbon Atlas)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9위다. IEA 통계에서는 한국이 일본(5위)과 독일(6위)에 이어 세계 7위다. 두 통계 모두 1위는 미국, 2위는 중국, 3위는 인도가 차지했다. 

▲ 2020년 발전원별 전력량 비중을 보여주는 그래프. 석탄발전은 지난해 생산한 전력량 중 36%로 가장 큰 몫을 차지했다. ⓒ 강훈

석탄발전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의 주 배출원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2019년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에서 발간한 <국가기후환경회의 국민정책제안>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미세먼지 가운데 발전부문 배출이 12%인데, 발전부문 중 석탄발전소에서 나온 것이 93.3%였다.  

‘석탄발전 중단’ 국민 90% 찬성하지만  

석탄발전소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폭넓게 인식되고 있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해 8월 20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에 응답자 1500명 중 90.7%가 동의했다. 

그러나 정부의 ‘탈석탄’ 행보는 지나치게 굼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신규 석탄발전소 설립 인허가를 금지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석탄발전량 비중을 2020년 36%에서 2030년 29.9~34.2%로 낮추는, 매우 소극적인 수준에 그쳤다. 정부는 또 삼척석탄화력을 포함, 건설 중인 7기의 석탄화력발전소 공사를 중단하고 ‘탈석탄’ 일정을 앞당기라는 환경단체의 요구를 일축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지난해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계획을 밝히고도 온실가스 감축을 현실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는 지난 2015년 타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자발적인 탄소감축목표(NDC)를 제출하면서 ‘2030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BAU(전망치) 대비 37%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는 별다른 노력이 없을 경우 2030년에 배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탄소량보다 37%를 줄이겠다는 것으로,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이 ‘1990년 대비’ ‘2010년 대비’ 등 절대량을 기준으로 감축안을 제시한 것에 비해 너무 소극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눈총을 의식, 2020년에는 ‘2017년 탄소배출량 대비 24.4%를 줄이겠다’고 수정목표를 제시했으나, 표현 방식만 달라진 것일 뿐 2030년 탄소배출량 목표치는 5억3600만t으로 동일하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한국 등 감축목표가 저조한 나라들에게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에서 감축목표를 상향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지난 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기후정상회의에서 한국이 탄소배출량 감축목표를 상향 제시할 것인지 주목됐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안으로 목표를 상향조정해 제출하겠다고만 밝혔다. 

환경운동연합은 이와 관련, 지난 23일 논평을 내고 “이번 기후정상회의에서 미국이 2005년 대비 50% 감축을 약속하는 등 각국이 진전된 목표를 제시한 반면 한국은 아직도 공허한 말잔치를 되풀이하며 감축을 후속 과제로 미루고만 있다”고 비판했다. 논평은 이어 “대통령은 또 국내 건설 중인 신규 석탄발전소를 언급하지 않은 채 과감하게 석탄발전을 감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며 “정부가 그린뉴딜로 감축하고자 하는 양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될 신규 석탄발전소 7기를 중단하지 않고서는 ‘탄소중립’ 달성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0월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으나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후속조처를 이어가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 ⓒ 청와대

과감한 ‘탈석탄’ 실행계획 추진해야 

정부는 2030년까지 노후 석탄발전소 24기를 퇴출하고 신규 석탄발전소는 더 이상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수명 30년의 신규발전소 7기를 계속 짓는 한 ‘탈석탄’이 요원하고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맞는 탄소감축도 불가능하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지적이다. 영국의 기후에너지 연구기관인 엠버(Ember)가 지난 3월 발표한 <2021 글로벌 전력생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석탄발전량은 2015년과 비교해 10% 떨어지는데 그쳐, 같은 기간 영국의 감축량(93%)과 EU 27개국 감축량(48%)에 크게 못 미친다. 

이 연구에 참여한 엠버의 선임 전력정책 전문가 아디트야 롤라는 “한국은 2050 순배출제로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믹스(에너지 수급 정책)의 신속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늘리지 않으면 한국은 이산화탄소 순배출제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발전 부문에서 탈탄소화를 조속하게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기후변화 전문연구기관인 클라이밋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는 2020년 2월 발표한 <탈석탄 사회로의 전환: 파리협정에 따른 한국의 과학 기반 탈석탄 경로>에서 한국이 석탄발전소를 30년 가동한 후 폐쇄하는 정책을 유지했을 때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예측했다. 연구진은 현재 가동되고 있는 58개 석탄발전소만 계산했을 때 석탄발전은 2047년에 종료되며, 파리협약을 준수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2.4배에 해당하는 양을 배출할 될 것으로 예측했다. 공사 중인 7기의 석탄발전소까지 정상 가동하는 경우 한국에서 탈석탄은 2055년에 가능해진다. 이때 온실가스 배출량은 파리협약 기준의 3.1배가 된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 한국의 석탄화력 부문 탄소배출량 추이. 연구진은 현재 건설 중인 7기의 석탄발전소가 추가되면 2055년까지 한국의 탄소배출량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317%나 될 것으로 예측했다. ⓒ Climate Analytics, <탈석탄 사회로의 전환: 파리협정에 따른 한국의 과학 기반 탈석탄 경로>

연구진은 한국이 탈석탄을 가속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이 없다는 점도 주목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생산 계획이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한국이 파리협약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석탄을 대체할만한 구체적인 에너지 믹스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단법인 기후솔루션 박지혜 변호사는 지난 13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에서 제시한 ‘2010년 대비 45%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 전력 믹스 계획의 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같은 경우 2012년도에 발전량의 40%를 석탄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5%로 떨어졌다”며 “8년 만에 변한 영국의 속도를 우리가 맞추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네덜란드는 2015년에 완공된 발전소가 있어도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2019년에 탈석탄법을 통과시켰고, 2030년까지 퇴출 합의를 봤다”며 국내 석탄발전소도 조기 퇴출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집 : 최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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