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➁ 환경운동·기후금융 앞장서는 청년들

벚꽃이 거리를 눈부시게 수놓았던 지난달 초. 이시현(26) 씨는 친구들과 서울 양화동 선유도공원으로 꽃구경을 갔다. 친구들은 사진을 찍기 바빴지만, 이 씨는 웃을 수 없었다. 기후변화 탓으로 벚꽃이 열흘이나 일찍 피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며칠 후에는 야경을 보러 서울 응봉동의 응봉산에 올랐다. 아름다운 풍경 뒤로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자동차들과 빛공해를 일으키는 조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은 야경을 만끽하며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이 씨는 입을 뗄 수 없었다. 이 순간에도 기후위기가 심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다. 같은 풍경을 봐도 다른 생각을 하는 자신을 의식하며 ‘내가 일상생활이 가능할까?’하는 걱정까지 이어졌다. 

‘미래 사라졌다’ 슬픔·무기력 느끼는 젊은층 늘어 

기후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이 씨처럼 일상에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후우울(climate grief)’ ‘생태불안(eco-anxiety)’ 등으로 불리는 이 증상은 기후위기로 미래가 사라졌다는 인식이 슬픔, 분노, 무기력 등의 부정적 감정으로 이어지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미국심리학회(APA)가 2017년 이런 정의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증상을 겪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청소년기후활동가로 유명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도 열한 살 때 기후우울을 겪고 몸무게가 10킬로그램(kg)이나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미국심리학회가 미국 성인 2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8%가 ‘기후변화에 관해 불안이나 걱정을 느끼는 생태불안증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달 11일 줌(Zoom) 화상회의로 만난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Green Environment Youth Korea)’ 회원들은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기후우울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지난 2014년부터 재생에너지 전환 촉구,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확산 등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조윤주(23‧건국대) 씨는 “나만 아득바득 지구를 지키려 한다고 느낄 때 정말 무기력해진다”고 말했다. 조 씨는 고등학생 때였던 2016년 폭염을 계기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환경보건과학을 대학 전공으로 선택했다. 평소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환경보호 동참을 촉구하지만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다.  

“한 번은 와인 코르크 재질로 된 명함지갑을 산 뒤 인스타그램에 게시글을 올렸어요. 가죽 대신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진 상품을 소비하자는 취지였지만, 다른 게시물에 비해 ‘좋아요’ 수가 적었죠. 주변 친구들은 ‘멋있다’ ‘역시 환경 전공이네’라고만 할 뿐 본인이 변하려 하지는 않아요. 기후위기를 얘기할 때마다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입니다.”

▲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 활동가들이 줌 화상회의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기후우울을 느낀 상황 등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선률 씨, 김지윤 단비뉴스 기자, 조윤주 씨, 이시현 씨. ⓒ 김지윤

벚꽃을 보고 우울함을 느낀 이시현 씨는 “개인의 행동을 무의미하다고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 씨는 한때 국내 미세먼지가 모두 중국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관련 논문 등을 읽고 ‘상당 부분은 경유차, 공장, 석탄화력발전소 등 국내 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국내 상황부터 바꿔보자’고 말했지만 ‘한국이 노력해봤자 중국 미세먼지 탓에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 반응만 돌아왔다. 이 씨는 “국내 발생 미세먼지 문제는 축소되거나 외부 탓으로 바뀐다”며 “중국발 미세먼지도 문제지만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채식하다 핍박 받고 괴로워하는 사회 

김선률(24‧서울과학기술대 환경정책학) 씨는 6~7년 전, 가을을 거치지 않고 계절이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것을 보며 기후위기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육류소비가 온실가스 대량배출로 이어지는 것을 알게 된 후 생선과 유제품 등만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살려고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릴 땐 고기를 거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친구에게 육식을 멈춘다고 했을 때 ‘왜 그만 먹냐’ ‘채식만 하면 건강 안 좋아진다’ 등의 폭력적인 소리를 들었어요.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면서 (확실하게) 실천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 괴롭습니다.”

▲ 김선률씨는 환경정책학을 전공하면서 채식 등 개인적 실천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인스타그램에 대체육 음식을 홍보하기도 한다. ⓒ 김지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채식 인구는 150만 명 정도로, 2008년보다 10배가량 늘었다. 공장식 축산이 전 세계 메탄 배출의 37%, 이산화질소 배출의 65%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채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채식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강하고, 채식을 선택할 수 있는 식당은 부족한 게 국내 현실이다.  

이들은 정부의 안일한 태도도 비판했다. 지난달 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재로 열린 세계기후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후위기 대응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구체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실행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또 진행 중인 해외 석탄산업 투자를 철회한다는 약속도 하지 않아 환경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김선률 씨는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질수록 실망감이 더 커진다”며 “특히 포스코가 해외 석탄발전소에 투자하는 모습에서는 환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 때문에 우울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슬픔에 빠져 있기엔 할 일이 너무 많다 

국립산림과학원 기후변화생태연구과에서 일하는 박고은(38) 연구사는 기후우울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승화하는 사람이다. 고산지대 침엽수림의 쇠퇴와 국내 임업 산림 전반에 관해 연구하는 그는 현장답사에서 어린 나무가 제대로 못 자라고 생태계가 변해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울한 감정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박 연구사는 “문제를 분석한 후 ‘어떻게 하면 더 낫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산림과학원의 미션”이라며 “슬픔에 빠져있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 지난달 14일 서울 동대문구 국립산림과학원 주차장 앞 벤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박고은 연구사. ⓒ 김지윤

박 연구사는 2014년 산림과학원 공무원 임용을 보름 앞두고 세월호 참사로 같은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생을 잃었다. 당장 팽목항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으로 크고 작은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대충 타협하고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생각한다”며 “그 타이밍에 공직자로 임용된 후 맡은 업무를 책임감 있게 해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고산지대 침엽수림의 쇠퇴를 연구하던 박 연구사는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등의 죽음을 목격했다. 구상나무는 기후변화에 따른 대표적 멸종위기종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유명하지만, 원래 고향이 우리나라다. 최근 10~20년 사이 온난화로 겨울철 기온이 올라가면서 지리산과 한라산에 있는 구상나무들이 집단 죽음을 맞고 있다. 박 연구사는 “큰 나무가 죽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이라며 “죽더라도 다음 세대의 아이들, 즉 후대림이 잘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림연구원으로서 산림 생태계가 어떤 기후 요인에 영향을 받았는지 분석하고 예측하며 이상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래서 어린 나무들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다. 

▲ 작게 나와 있는 여린 잎이 구상나무 새싹이다. 박고은 연구사는 현장답사 1년 후 같은 장소에 다시 갔을 때 잎이 그대로 있으면 잘 자라줘서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 박고은

무력감 딛고 녹색금융 키우는 펀드매니저 

한화자산운용에서 ‘그린히어로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은기환(37) 펀드매니저는 2018년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패널(IPCC)에서 낸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읽은 뒤 한동안 우울감과 무력감을 느꼈다. 2100년까지 지구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억제하지 않으면 과거의 안정적 기후로 돌아갈 수 없다는 내용인데, 2030년까지 2010년의 절반 수준으로 탄소를 감축하는 과제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목표에 비해 사람들의 대응은 너무 부족하고, 이 상태로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비관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의 기후우울은 펀드매니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서 나아졌다. 그는 자본의 흐름을 바꾸는데 참여하기로 했다. 재생에너지와 수소 등 지속가능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었다. 지난해 1월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그린스완(금융안정에 위협을 가하는 기후관련 위험)’ 보고서를 참고했다. 은 씨는 “기후위기는 생존의 문제이고 생존의 문제는 곧 경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그린히어로펀드’ 운용 배경을 설명했다.

기업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은 매니저는 “현재 펀드규모가 약 400억 원인데 최근 침체한 공모펀드 시장을 고려했을 때 나쁘지 않은 성과”라며 “그러나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펀드 규모가 더 커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기업들이 기후위기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일시적 유행(트렌드)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꼬집고 “기업들이 ESG를 제대로 이해하고 성숙한 기후금융과 ESG투자가 자리 잡히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영화 <어벤져스>의 주인공들처럼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난달 14일 줌 화상회의로 <단비뉴스>와 만난 은기환 펀드매니저가 영화 <어벤져스>에 나오는 타노스의 ‘핑거 스냅’(손가락을 튕겨 원하는 것을 이루는 동작)을 따라하고 있다. ⓒ 김지윤

정부·기업·개인 모두, 지금 당장 나서야 

지난달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지구촌 상황이 기후위기다’라는 명제에 응답자의 86.7%가 ‘공감한다’고 답했다. 기후우울을 딛고 행동에 나선 청년들은 ‘이렇게 심각성을 느끼는 데 그치지 말고 지금 당장 움직이자’고 말했다. 

▲ 기업과 정부 외에 시민들도 재활용품 분리 배출 등 작은 것부터 기후위기 대응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는 이시현 씨. 쓰레기로 버려진 페트병을 줍고 있다. ⓒ 이시현

이시현 씨는 “시민들이 기업과 정부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행동을 안 한다면 소용이 없다”며 "개인들이 투명 페트병을 분리 배출하는 것부터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논현도서관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환경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조윤주 씨. 그는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이 기업과 정부의 변화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조윤주

조윤주 씨는 “우리 단체에서 남양유업 측에 ‘우유에 작은 플라스틱 빨대를 붙여 팔지 말라’고 요구하는 운동을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빨대 없는 제품으로 바뀌었다”며 "시민사회가 기업과 정부에게 끊임없이 요구해야 달라진다"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 박고은 연구사는 “산림 생태계는 여러 동물과 미생물들, 인간까지 복잡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며 “산림이 인간 생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깊이 사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편집 : 오동욱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