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축제' ① 선거

생애 첫 선거의 기억 

생애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건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였다. 갓 스무 살을 넘긴 해였다. 그때까지 내게 정치는 정치인들의 몫이었고, 정치 이슈는 뉴스 속 이야기였다. 나는 그저 구경꾼이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나의 인식은 점차 변했다. 아무에게나 투표할 수는 없었다. 후보자의 공약에 관심이 생겼다.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알고 싶었다. 투표는 사회의 성원으로서 비로소 인정받는 증표였다. 구경꾼이었던 내가, 한 명의 ‘주체’로 거듭나는 방법이었다. 대통령이 내 삶을 극적으로 바꿔주지는 못하지만, 내 한 표가 역사의 진보와 정치 발전에 기여한다고 믿었다.

선거에는 6명의 후보가 출마했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양자 대결로 좁혀졌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표방했던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한국형 복지 확립 등을 약속했다. 문재인 후보는 ‘사람이 먼저다’는 슬로건으로 재벌개혁과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했다. 대선을 앞두고 한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는 국민들이 새 대통령에게 ‘경제적 약자 배려’, ‘높은 수준의 도덕성’ 등을 기대한다고 알렸다. 나는 또한 새로운 대통령이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의 질과 행복도를 높여 주길 바랐다. 사회가 공정과 정의를 회복하고, 이윤보다 사람에 가치를 두길 바랐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던 문재인 후보가 내 바람을 충족해 줄 것 같았다. 

일찌감치 투표를 마친 나와 친구들은 맥주와 치킨을 사 들고 자취방에 모였다. 개표 방송은 화려한 그래픽을 동원하며 선거 결과를 흥미진진하게 다뤘다. 모두 기대감과 흥분으로 방송을 지켜봤다. 시간이 흐르면서 당선자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자, 친구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한 친구는 침통한 표정으로 맥주 캔만 하릴없이 만지작거렸다. 어떤 친구는 급기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선거는 박근혜 후보의 신승으로 끝났다.

▲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표방하며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한국형 복지 확립 등을 약속한 박근혜 후보가 역대 대선 최다 득표수로 당선되었지만, 그는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탄핵당했다. ⓒ KBS

축제가 되어야 할 선거

첫 투표였던 선거에서 지지했던 후보가 낙선했지만, 아쉬움이나 패배감은 들지 않았다. 결과를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 결과는 다수 유권자가 지향하는 정치적 성향, 가치를 드러낸다. ‘우리 편’은 지고, ‘너희 편’이 이겼다는 이분법이 아니다. 나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다수 국민의 선택과 가치도 인정해야 한다. 공약을 제대로 실현하는지 지켜보고 다음 선거에서 심판하면 된다. 국민적 의사가 반영된 공약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국민의 삶과 공동체는 한 단계 발전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거는 좋은 삶, 더 나은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장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현실에서 구현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만,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 대표자들이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한다. 선거는 국민이 스스로 자신들의 주권을 위임할 대표자를 선출하는 행위다. 선거는 공동체를 통합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축제가 열리면 평소 교류가 없는 낯선 사람들도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누며 놀이와 유희를 즐긴다. 금기시되고 자제되던 솔직한 표현과 폭로도 허용된다. 축제를 통해 누적된 모순과 긴장이 드러나고 해소된다. 선거는 공동체의 질서와 문화를 바꿔 나가는 동시에 공동체가 지속되도록 안정을 부여하는 절차인 것이다.

선거는 사회를 바꾸고 변혁하는 힘을 지녔다. 공동체는 선거로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드러내고 해법을 모색한다. 선거는 심화하는 부와 노동의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미래를 준비해 나갈 것인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할지 논의하고 판단하는 열린 마당이 돼야 한다. 하나의 이슈를 바라보는 가치와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다양한 의견이 제시돼 논쟁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인 것이다. 시민이 직접 현실을 바꾸어,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에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인 것이다.

▲ 제18대 대선 투표율은 75.8%를 기록했다. 이는 제17대 대선보다 12.8%P 높은 수치로, 국민의 정치 변화 열망을 드러냈다. 선거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축제가 되기 위해선 정치가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국민의 삶의 현장 속으로 내려와야 한다. ⓒ KBS

당신들의 축제

국민의 열망과 기대와는 달리 현실의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가 아니었다. 선거는 선거 기간 동안 열리는 이벤트로 전락했다. 공약(公約)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었고, 정치는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2012년, 내가 처음 참여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지도 못한 채 탄핵당했다. 헌법재판소는 비선 실세가 국정에 개입하여 사익을 추구해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경제민주주의 실현 공약은 백지가 되었다. 그가 내세운 한국형 복지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로 비판받았다. 18대 대통령 선거는 권력을 잡은 정치 세력 그들만의 축제였다. 내 삶을 바꾸고, 세상을 변혁해 달라는 국민의 바람은 헛된 꿈이 되었다.

▲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비선실세가 국정에 개입하여 사익을 도모했다고 지적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한 사건은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가 아닌 정치세력과 권력집단의 전유물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KBS

지난달 치러진 서울과 부산 시장 재보궐 선거도 그들만의 축제였다. 전임자의 성추행 사건으로 치러진 선거였지만 후보자들은 잘못된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냈고 선거운동 과정에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반복되었다. 후보자와 공약에 대한 검증도 부족했다. 선거 운동은 서울과 부산의 미래를 위한 비전과 정책보다 상대 후보와 정당에 대한 정치적 공세와 마타도어로 점철되었다. 선거는 철저히 이기고 지는 승부로만 여겨졌고, 변화를 바라는 주권자의 열망, 의사는 반영될 틈이 없었다. 그들만의 축제는 선거 이후까지 이어지고 있다. 압승한 야권은 다시 탄핵당했던 옛날로 회귀하는 중이다. 참패한 여권은 ‘미친 집값’을 잡으라는 선거 민심을 외면하고 종부세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여야 모두 차기 집권에만 몰두하며, 국민의 눈물과 아픔을 안을 자세도, 제대로 된 정책도 없다. 지금 이 땅의 정치는 우울한 그들만의 축제일 뿐이다.

인민은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가 된다 – 루소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가 되지 못하고, 다수의 지지로 선출된 권력이 타락하는 이유는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 부재 때문이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루소는 “인민은 투표할 때만 자유롭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가 된다”고 지적한다. 국민이 투표가 끝나고도 노예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자유민의 시간이 다시 올 때까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 감시와 견제 시스템은 언론과 시민의 역할로 요약된다. 

우선 언론이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를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선거 이후에는 당선된 권력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선거 보도 단계부터 되돌아보자. 경쟁과 승부는 선거의 요소이지만 본질은 아니다. 대결만을 부각하는 경마식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 철저하게 후보자의 철학과 도덕성, 공약의 타당성, 실현 가능성 등을 엄밀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당선자가 확정되고 취임한 이후에도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감시와 검증을 해야 한다.

▲ 공약 검증은 선거 보도의 핵심이다. 언론은 공약 이행 시기, 재원 조달 방법, 구체적 실현 계획 등을 검토하여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분석해야 한다. 단순히 후보가 제시하는 공약을 전달해서는 안된다. 언론의 검증이 철저할수록 유권자가 더욱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사진은 선거공약을 분석한 기사가 실린 2021년 3월 25일 국제신문 4면 ⓒ <국제신문>

시민의 책임과 권리는 선거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축제의 주체로서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당선된 권력의 행보를 감시하고 발언하며, 행동해야 한다. 선거는 승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집권한 정당이 내세웠던 국정 기조와 공약을 실현하도록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를 통해 심판해야 한다. 코로나가 1년 넘게 지속하면서 부와 노동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하고, 공정과 공공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의 삶은, 행복은 저들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혁명은 쟁취하는 자들에게만 기회가 온다. 언제까지 선거를 저들만의 축제로 남겨둘 것인가. 우울한 당신들만의 축제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축제’이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은 축제의 계절이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자연과 곳곳에서 벌어지던 다양한 행사들, 마음도 덩달아 부풀어 올랐었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춘 오늘, 돌아올, 아니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축제를 꿈꾼다. (편집자)

편집 : 오동욱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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