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이예진 PD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팬데믹은 인류가 최선이라고 믿었던 지식, 경제체제, 이데올로기 등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개발과 성장이 모두에게 풍요를 가져다줄 것이란 믿음에 사정없이 균열을 냈다. 사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는 삼림 개간, 도시화, 그리고 기후변화가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의 창궐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지적에 게으르게 대응했던 각국 정부는 코로나19로 흠씬 두들겨 맞은 후에야 대책을 마련하느라 허둥대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각국 정부는 탄소배출 제한, 재생에너지산업 지원 등 기후위기 대책의 강도를 높였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7월 ‘그린뉴딜’ 계획을 발표하고 10월에는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행보에 진정한 의지가 담겨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판 그린뉴딜에는 납득할 만한 탄소배출량 감축목표가 제시되지 않았다. 기존의 감축목표는 국제사회에서 ‘파리기후변화협정 달성에 크게 미흡한 수준’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국내 환경단체들은 정부의 그린뉴딜이 전기차 등 기업을 지원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성장 정책에 치우쳤으며 탄소감축 의지는 부족하다고 성토한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와 미세먼지의 주범 중 하나인 석탄발전이 2021년 현재 총 전력생산량의 35%로 여전히 1위인데, 그린뉴딜을 한다는 나라에서 석탄화력발전소 7기가 추가로 건설되고 있다. 

이런 모순은 우리 경제에 직격탄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EU가 2023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기로 한 데 이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탄소배출량이 많은 나라의 수출품에 탄소국경세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면 한국 수출기업들은 엄청난 관세를 물게 돼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에너지기구(IAE)가 발표한 2019년 국가별 탄소배출량 순위에서 7위를 기록해 ‘기후위기 주범’ 중 하나로 꼽히고, 기후위기 대응 노력은 ‘바닥권’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도 기후위기 대응에 매우 뒤처져 있다. 구글, 애플, 나이키, 스타벅스 등 300여 글로벌 회사들은 기업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알이(RE)100’ 캠페인을 선도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은 애플 협력업체인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몇 곳만이 참가를 선언했다.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전기를 자유롭게 선택구매할 수 있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전력이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국내 시장구조를 탓한다. 이 부분에 신속한 개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이 산업용전기를 싼값에 쓰면서, 재생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소비절감을 외면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린뉴딜은 특정 산업 분야를 지원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모든 기업이 생산, 물류, 유통 등의 전 단계에서 획기적으로 에너지를 절감하도록 ‘당근’과 ‘채찍’을 가동해야 한다. 

▲ 2019년 10월 발생한 호주 산불은 2020년 봄까지 이어졌다. 과학자들이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꼽으면서 온실가스 주요 배출원인 석탄 발전 추가 건설을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 KBS

<글로벌 그린뉴딜>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코로나19는 기후재앙의 예고편’이라며, 기후변화를 막지 못할 경우 또 다른 팬데믹을 포함한 대형 재난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호주와 미국의 거대한 숲을 몇 달씩 태운 초대형 산불과 유럽에서 많은 사상자를 낸 폭염, 사상 최장의 국내 장마 피해 등은 앞으로 더 심해질 재난의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유엔(UN) 기구인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지난 2018년 인천 송도에서 ‘1.5도 특별보고서’를 내고 기후위기 대응 시간표를 제시했다. 19세기 산업화 이후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 남용으로 지구 평균 온도가 이미 1도 상승했는데 이를 1.5도 이내로 억제해야 파국을 면할 수 있으며, 그러려면 우선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45%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많은 과학자들은 2028년까지 획기적 탄소감축이 안 되면 인류는 재난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다며 ‘이제 7년 남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 시간이 없다. 기후재앙의 본편을 피하려면, 이제 제대로 된 그린뉴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편집 :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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