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장기기증’

▲ 김신영 기자

삶과 죽음을 동시에 엿볼 수 있을까? 마일리스 드 케랑갈은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생명의 득과 실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을 봤다.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열아홉 살 시몽 랭브르의 심장 이식 과정을 둘러싸고 주변 인물의 심정이 묘사된다.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들이기에 망설이던 부모는 눈물을 흘리며 장기기증을 결심한다. 그 순간 장기이식 수혜자의 부모가 안도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의미의 눈물이 교차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통스럽게 기증 여부를 결정하는 기증자 가족의 모습이 애처롭다. 

장기이식은 ‘내 것’을 ‘누군가의 것’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죽음이 다른 생명의 부활로 탈바꿈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삶이 끝난 뒤에도 그를 지탱하고 있던 장기들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 다른 이의 삶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생전에 본인이 기증희망등록을 해도 보호자 1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기증이 어렵다. 국내 보호자의 장기이식 동의율은 33%에 그친다. 장기기증이 활발한 미국, 캐나다 등이 90% 이상인 것보다 훨씬 낮다. 

문제는 장기기증자와 그 가족에 관한 국가의 존중과 배려가 부족한 데 있다. 정부는 장기기증자보다 수혜자 중심 정책을 폈다. 1999년 시행된 장기이식법에는 장기를 효율적으로 적출하고 이식하는 데 필요한 사항이 많이 담겼다. 기본이념에 장기기증자의 기증 의사를 존중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기증 뒤 쏟아지는 ‘자식 팔았다’와 같은 왜곡된 시선을 가려줄 지침은 없었다. 장기기증자의 ‘이웃사랑’ ‘희생정신’을 강조하면서도 제6조에 규정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에서 장기기증자를 위한 지원정책은 미흡했다. 

▲ 국내 신장 이식 대기자는 약 2만 5천여 명으로 이식을 받기까지 평균 2,196일을 대기해야한다. 하지만 국내 인구 100만명당 뇌사자 장기기증율은 9.96명으로 선진국에 비해 낮다. © KBS

보건복지부는 3월 23일 ‘장기‧인체조직 기증 활성화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학교에 장기기증인식 개선 교육을 도입하고 장기기증자 기념공원을 설립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제라도 그간 소홀했던 장기기증자에 관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장기를 인간의 존엄성이 담긴 신체 일부가 아닌 누군가의 건강 회복을 위한 도구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남아있다. 보건복지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은 ‘장기는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심장은 공공재일까? 공공재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의 속성을 띤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있는 한 다른 사람이 그의 장기를 가져갈 수는 없어 경합성이 있다. 장기는 사고팔 수 있는 대상이 아니어서 ‘생산비 부담 여부’를 따지는 비배제성에도 속하지 않는다. 굳이 경제학으로 분석하지 않아도 개인의 몸은 고유하다. 공자의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가르침도 정부 기관이 내린 정의 앞에 헛헛하게 들린다.

남겨진 이들에게 기증자는 여전히 고유한 존재다. 지난 2월, <동아일보>는 장기기증자들 이야기를 다룬 ‘환생’ 시리즈를 연속 보도했다. 뇌출혈로 뇌사에 빠진 9살 아이 이야기가 실렸다. 그의 가족은 ‘아이의 심장이 어딘가에서 살아서 뛸 수만 있다면 더 아름다운 일인 것 같아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수혜자에 관해서는 ‘마음으로 낳은 아이’라고 표현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장기를 전해 받은 이의 심장 초음파 영상을 보며 자기 아이를 추모했다. 

장기기증의 의미는 다시 쓰여야 한다. 흔히 장기기증을 ‘생명 나눔’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말을 ‘생명을 더하는 일’이라 고쳐 부르고 싶다. 나눔이라는 말은 기증자의 장기를 여러 사람에게 나누고 본인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장기기증이 활성화하려면 수혜자뿐 아니라 남겨진 기증자 가족에게도 고통과 슬픔이 아닌 희망으로 여겨져야 한다. 헌신과 배려 등 기증자의 선의에만 기댄 장기기증 정책은 선하지 않다. 기증자의 존엄한 선택을 기리려면 이를 존중한 유가족에게도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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