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성소수자’

▲ 유재인 기자

김기홍 씨는 기사에 자주 등장하던 사람이다. 2019년 <경향신문>이 다룬 성소수자 죽음 관련 기사에서 그는 죽은 동료를 애도하며 숫자로도 나타나지 않는 성소수자의 죽음이 기록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녹색당 비례대표로서 끝까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투쟁할 것 같이 보이던 그였다. 변희수 하사는 수많은 카메라 앞에 나선 사람이다. 스스로 성전환 수술 사실을 대중 앞에 밝히며 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만큼 용기 있었고, 그런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했다. 그랬던 그들이 왜 죽었을까?

사회가 극단으로 갈수록 중간에 있는 사람들 목소리는 묻힌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남성단체에서도 여성단체에서도, 사회 어느 곳에서도 성소수자를 받아주지 않는다. 지난해 숙명여대 법학과에 성전환 수술을 받은 학생이 합격했다. 1만8천명 재학생은 그의 입학을 반대하는 연서명에 참여했다. 그는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입학을 반대한 여성들은 ‘여자들 의사 표시 덕분에 여자들 권리와 공간을 지켰다’고 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그는 목소리 한 번 못 낸 채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자기 공간을 뺏겼다. 그의 선택은 자신의 생명만은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소외는 우울을 불러온다. 2017년 열린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성인 성소수자의 우울 증상 비율은 일반인보다 4.76배 높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자살 시도 비율은 일반인보다 9.25배 높았다. 소외가 혐오가 되기 전, 누군가에 의해 뺏길 뻔한 목숨을 부지한 성 소수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기홍 씨와 변희수 하사가 그랬다. 그들은 극심한 소외와 무력감으로 죽음을 택했다.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 사회, 그 사회를 부추기는 힘 있는 사람들, 점점 작아지는 자신의 목소리. 이 굴레의 반복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다.

▲ 지난 3월 3일 변희수 하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로 강제전역 당한 그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 KBS

미국의 페미니스트 미술작가 조이 레너드의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는 시가 있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는 이 시를 ‘나는 성소수자 서울시장을 원한다’로 각색했다. 성소수자란 이유만으로 어릴 적부터 따돌림당하고, 직장에서 해고당해본 사람이며, 재개발계획 때문에 철거 위기의 쪽방촌에서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살던 사람. 그런 시장을 원한다는 내용이다.

시의 내용과 대비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한 안철수 씨는 퀴어 퍼레이드에 관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다. 오세훈 후보는 지난해 총선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했다. 박영선 후보는 과거 한 보수 기독교단체 행사장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했다. 자기 일처럼 소수자 마음에 공감하는 시장. 그런 리더는 유토피아적 생각일까? 김기홍 씨와 변희수 하사가 죽은 이유를, 그들이 죽고 난 뒤에 알게 되어 마음이 더욱 무겁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현경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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