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방재혁 기자

지난달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거구의 흑인 남성이 아시아계 여성(65)을 무차별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You don't belong here)'라며 얼굴 등을 짓밟았다고 하는데, 폐쇄회로영상을 보면 근처의 보안요원들도 방관하고 있다. 유미 호건 미국 메릴랜드주 주지사 부인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막내딸 부부가 주유소에서 아시아계 혐오공격을 당할까 봐 집에 오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윤여정 씨는 시상식 참석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기 전 "아시아계를 노린 무차별 폭행 때문에 아들이 시상식 참석을 걱정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인 4명이 숨진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격을 포함, 코로나19가 본격화한 지난해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혐오사건이 3795건이나 된다는 미국시민단체 통계도 있다.

▲ 지난달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60대 아시아계 여성이 흑인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처럼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한 혐오범죄가 늘고 있다. ⓒ KBS

미국처럼 길 가다 욕설을 듣거나, 두들겨 맞거나, 심지어 총격까지 당하는 끔찍한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 이후 혐오공격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지난해 9월 공개한 조사를 보면 '코로나19 관련 혐오발언을 들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39%가 '그렇다'고 답했다. 혐오의 대상은 중국과 중국인, 신천지교인, 기독교 등 종교인, 자가격리 수칙 위반자 등 다양했다고 한다. 특히 '입국 금지 청원' 등 중국인 혐오가 노골적이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러 아시아계 혐오를 부추긴 것처럼, 국내에서도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이 '우한 코로나'라는 이름을 고집하면서 중국 혐오를 자극했다. 서울 이태원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나자 굳이 ‘게이 클럽’을 부각하면서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긴 언론도 있었다.

재난상황에서는 '희생양' 혹은 '마녀사냥감'을 찾는 혐오공격이 쉽게 일어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생업을 잃거나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 학교에 못 간 아이들과 씨름하는 부모 등 불안과 스트레스에 휩싸인 사람들은 평소보다 공격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희생양이 되는 것은 대부분 취약한 처지에 있는 이주민 등 소수자들이다. 여기서 정치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트럼프 전 미 대통령처럼 유력 정치인이 혐오를 부추기면 출렁이는 기름에 불씨를 던진 것처럼 공격의 불길이 타오른다. 국내에서도 정파적인 목적으로 혐오와 대립을 자극한 정치인들이 있다. 또 언론이 특정 집단을 손가락질하면 어리석은 이들이 우르르 마녀사냥에 가세하기 마련이다.

혐오가 넘치는 세상에선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중국인에게 막말을 하던 한국인이 미국에 가면 길거리에서 두들겨 맞을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가 물러가도 기후변화와 함께 또 다른 감염병 사태와 기상재난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고한다. 자연 재난이 사회적 재앙으로 비화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포괄적차별금지법 등 혐오에 제동을 걸 장치를 만들고, 포용과 협력의 공동체를 만드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혐오를 선동하는 정치인과 언론을 퇴출시켜야 한다. 세상의 약자들이 안전해질 때, 우리 모두가 안전할 수 있다.


편집 : 정승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