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김현주 기자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오송역 버스정류장, 빨간 대형 버스 아래 사람이 있다. 휠체어에서 내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버스 아래로 기어들어간 그는 몸을 왼쪽으로 누인 채 오른손에 마이크를 잡고 악을 쓴다. “장애인도 버스 타고 싶다!” 구호를 한번 외치고 나면 숨을 몰아 쉬며 헐떡인다. “왜! 장애인만 버리고! 왜 비장애인만 버스에 태워서 이동하려 합니까!” 

그는 소아마비로 세 살 때 장애를 얻은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다. 그가 장애인 이야기는 왜 귀담아듣지 않느냐고 외치는 동안,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비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다른 버스로 갈아타려고 버스에서 내렸다. 현장을 보도한 장애인 관련 인터넷 언론 <비마이너>는 “한 시민이 이형숙 대표에 다가가 ‘이기적이게 뭐 하는 짓이냐, 왜 여기서 이러냐’고 성을 냈다”고 전했다. 이 대표를 포함한 장애인 활동가들은 정부와 세종시, 대전시를 향해 오송역에서 세종시청까지 가는 저상버스를 요구했다. 오송역에서 세종시청까지 비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가 있는 것처럼,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를 만들어 달라는 당연한 요구는 ‘이기적인 짓’이 됐다.

이 대표의 외침을 담은 <비마이너> 현장 영상을 보며 ‘중식이 밴드’가 부른 노래 ‘여기 사람 있어요’가 떠올랐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여기 사람이 있어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에

그 아래 난 살아있죠 부서져 좁은 텅빈 공간에

날 살려줘요 제발 살려줘요 제발 이 어둠이 싫어요

날 꺼내줘요 제발 꺼내줘요 제발 난 숨이 막혀요

‘중식이 밴드’는 강한 드럼 소리를 배경으로 악쓰듯 노래한다. 노래는 “나는 아직 살아있죠 무너진 건물 당신 발 밑”이라는 가사로 끝난다. 난 아직 숨을 쉬고 있으니 살려 달라고 외치던 이가 말을 미처 끝내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다. 얼핏 신나는 것처럼 들리지만 갑작스럽게 끝난 노래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스스로 티 내지 않고 숨죽인 채 살아가기에 일상에서 눈에 띄지 않던 이들이 권리를 외치며 나타나면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보이지 않던 존재가 보이면 익숙하지 않아 낯설다. 아군이라고 생각하다가 배신당하는 것보다 적이라고 생각하며 조심하는 게 나으니, 낯섦은 쉽게 적대감이 된다. 당시 현장에서는 장애인 시위로 버스가 지연됐고, 불편함을 느낀 비장애인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 탈시설장애인당은 4·7 재보궐선거에서 장애인 정책의제를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정당'이다. 11개 대표 정책을 내걸었다. 하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탈시설장애인당에 '당'이 들어갔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했다. ⓒ 탈시설장애인당 홈페이지

보이지 않던 이들을 받아들이고, 온전한 개인으로 인정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멀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4·7 재보궐 선거가 나흘밖에 안 남아 온 나라가 소란하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장애인 관련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등촌동 어울림플라자 재건축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차별을 공약했다’는 비판에 철거했다. 어울림플라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주민 반대로 4년을 끌다가 올해부터 신축하기로 결정됐다. 

장애인들은 장애인정책에 무관심한 건 특정 정당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탈시설장애인당을 만들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4·7 보궐선거에서 장애인 문제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정당’으로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 장애여성 권리 보장, 장애인 건강권 보장 등 11개 대표 정책을 내걸었다.

삶의 가치는 모든 이들에게 같지만 살기 위해 견뎌야 하는 무게는 같지 않다. 누군가는 무너진 건물 아래서 “사람이 숨쉬고 있다”고 외치고, 누군가는 그 건물 위에서 보고 듣지 않아도 괜찮은 특권을 누리며 산다. 무너진 건물 아래 아직 사람이 숨 쉬고 있다면, 말을 미처 끝마치지 못하고 죽기 전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편집 : 김대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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