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이동민 기자

지난해 10월 별세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한 세 자녀에게 회사 소유권과 경영권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한국 경제사에 길이 남을 사건들을 일으켰다.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발행으로 자녀들이 장차 수조 원대 자산가가 될 기틀을 요란하게 마련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2005년에는 삼성이 정치권과 검찰 고위층 등에 뇌물을 준 정황이 담긴 ‘엑스(X)파일 사건’이 터졌다. 2007년에는 삼성그룹의 전직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가 이건희 전 회장의 차명계좌, 탈세 등을 고발한 ‘삼성 비자금 사건’이 이어졌다. 법원이 금융실명제 위반과 거액의 탈세 등 중죄를 인정했지만, 이 전 회장은 이 사건에서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처벌을 면했다.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거쳐 ‘원포인트 사면’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그때 이 전 회장이 응당한 처벌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삼성은 진정한 글로벌기업으로 거듭날 전기를 마련하고, 아들 대에서 불행이 반복되는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불행히도 아버지가 끊지 못한 불법의 고리는 아들에게 이어졌다. 2017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서 삼성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 지원을 받은 것 등 불법행위가 드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최종적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살게 됐다. 아버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세상이 달라져 아들은 실형을 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까. 이 부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사건으로 또 다른 재판을 받고 있어, 수감생활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다.

▲ 2020년 10월 2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故 이건희 회장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이재용 사건이 이건희 사건과 달라지지 않은 게 하나 있다면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여론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재용의 불법행위엔 침묵하고 ‘삼성의 글로벌경영을 위해’ ‘한국 경제를 위해’ 그를 처벌하지 말거나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언론, 정치인, 학자, 누리꾼들의 목소리다. 우리나라의 많은 언론과 정치인, 경제·경영학자 등이 삼성의 광고와 사업협찬, 정치자금, 학술지원 등의 ‘꿀맛’에 팔려 삼성의 불법과 비리에 눈감고 입을 닫아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의 기본 조건인 ‘회계 투명성’과 ‘법의 지배’는 애써 외면한 채 ‘이재용을 기소하지 말라’ ‘사면하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댓글러’들은 이 목소리를 증폭시킨다.

이들의 행위는 진정 이재용 부회장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이재용 부회장의 진짜 ‘적(敵)’인지도 모른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이치를 거스르도록 종용하는 이들은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이 앞으로도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인생을 살도록 등 떠미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죄지은 만큼 벌을 받고 불법의 고리를 끊었다면, 언론·정치인·학자들이 돈에 포획되지 않고 삼성의 불법에 매서운 비판과 견제를 했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지금 다른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 기업들이 환경보호·사회적책임·지배구조개선 등 이에스지(ESG) 경영에 앞다퉈 나서는 지금, 한국 최대 재벌 삼성의 총수는 왜 구치소에 있어야 하는가. 당사자와 ‘옹호세력’은 처절하게 자문하기 바란다.


편집: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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