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김현주 기자

최근의 부동산 가격상승은 ‘보이지 않는 손’의 실패다. 영국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그런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케이비(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해 2월 9억 원을 넘었다. 월 300만 원을 버는 직장인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약 25년이 걸리는 돈이다. 어지간한 직장인이 서울에서 집을 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부동산을 가진 이들이 앉아서 재산을 불리는 동안, 집값 폭등으로 ‘벼락거지’가 된 이들은 뒤늦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과 ‘빚투(빚 내 투자)’의 길에서 고군분투한다. 이 와중에 터진 엘에이치(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은 집값을 잡지 못한 정권을 심판하자는 민심에 불을 질렀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실패한 상황에서 ‘공급 확대’ 등 시장 논리에 의존하는 것은 집값 상승과 전세난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대안은 투기 세력을 제대로 잡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집을 2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는 전체의 15.9%, 약 230만 명이다. 집을 5채 이상 보유한 사람도 12만 명이나 되고,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1800채를 소유하고 있다. 세계적 저금리 기조에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추가로 풀린 돈이 ‘부동산 불패 신화’와 만나면서 투기의 광풍은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직과 자영업 실패 등으로 중하층 가정이 무너지는데, 땅과 집을 가진 이들은 손쉽게 더 큰 부자가 되는 현실을 방치해선 안 된다. 

▲ 정동영 의원실과 경실련,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상위 1% 다주택자가 소유한 주택이 2008년 1인당 평균 3.5호에서 2018년 7호로 늘었다. 소수의 부동산 독식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부동산 공급 대책도 중요하지만 투기 세력을 잡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 KBS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 비판여론에 몰려 얼마 전 ‘2.4 대책’을 내놓고 주택 83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임대주택을 중심으로 공급도 어느 정도는 늘려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기 세력을 잡는 정공법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전국 기준 104.8%, 서울 96%다. 투기목적으로 소수가 너무 많이 가진 게 문제지, 주택의 절대량이 부족한 게 아니다. 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투기꾼들이 더 많은 집을 사들여 시세차익을 노린다면 가격은 안정되지 않는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에 좌절한 직장인 중에는 일할 의욕을 잃고 주식이나 비트코인 등으로 ‘한탕’을 노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린아이들도 ‘건물주’를 꿈꾸는 세상이 됐다. 가만히 앉아 임대료를 챙기면서, 때론 인정사정없는 월세 인상으로 세입자를 벼랑으로 내모는 건물주가 ‘꿈’이 되는 사회는 암울하다. 집을 장만할 가망이 없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들의 마음만큼이나.  

투기세력이 틀어쥐고 있는 집을 매물로 내놓을 수밖에 없도록, 보유세 실효세율을 높여야 한다. 임대주택사업자의 종합부동산세 면세 혜택을 줄이고, 재산세 과표가 되는 공시지가를 실거래가 수준으로 현실화하는 등 다각도의 정책을 동원해야 한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종부세 실효세율은 0.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료가 존재하는 캐나다, 체코 등 12개 국가 평균(0.37%)의 절반 수준이다. 보유세 강화는 정권이 바뀌어도 뒤집을 수 없는 추세로 만들어야 하며, 대신 양도소득세 등 거래세는 적절한 시기에 줄여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투기세력은 집을 팔게 하고, 실수요자는 합리적 가격에 살 수 있도록 ‘보이는 손’이 개입해야 ‘벼락거지’의 한탄과 분노도 사라질 것이다.  


편집 : 윤재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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