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꿈'

중세 유럽인들은 꿈을 꾸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교회가 꿈을 세 종류로 구분했다. 성직자가 꾸는 '신의 계시', 병자가 꾸는 '악몽', 그리고 세속인을 나쁜 길로 꼬드기는 '악마의 유혹'이다. 성직자가 아닌 보통 사람의 꿈꾸기는 몸과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였다. 꿈의 이야기를 쉽게 나눌 수 없었다. 종교가 '꿈의 대화'를 억압했고, 결국 꿈꾸기를 봉쇄했다. 중세가 해체되면서 꿈의 억압도 무너졌다. 중세의 몰락이 '꿈의 민주화'를 가져온 셈이다. 내용과 형식은 좀 다르지만 21세기 초반에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 아닌 다른 삶을 꿈꾸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초등학교 멘토링 활동을 했다.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봤다. 사실 어린이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어른은 고리타분하고 아이를 옥죄는 듯해서 질문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가 아닌 '너는 어떤 것을 할 때 가장 즐거운지'를 물어보려고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만큼 축복받은 일이 없고, 아이들도 그걸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한번은 신문에서 요즘 초·중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바뀌었다는 기사를 봤다. 종전에는 대통령, 의사 등 사회 특권층이나 연예인처럼 화려한 공인이 차지했는데, 4차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했다. 희망 1순위 직업은 유튜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셜미디어의 하나인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는 활동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것이 대통령도, 연예인도 제쳤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유튜버 되고 싶은 사람 있냐"고 물었다. 아이들 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이유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란다. 중세 유럽인이 겪던 꿈의 봉쇄가 현재도 진행중임을 체감했다. 

이건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사는지(Live)'보다 '무엇을 사는지(Buy)'가 더 중요한 사회에서, 꿈을 꾸는 기준을 추상적인 '교환가치'에 두는 불행을 겪고 있다. 나 말고도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70만 청년은 공무원, 회사원 등 정규직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한다. 시험과 무한경쟁을 통해 인정받은 '능력자'만 정규직이 되니 다른 데 눈 돌릴 겨를이 없다.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저임금과 열악한 고용 조건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자란 결과다. 

'꿈은 곧 생존이자 삶이다'라는 공식은 사회 내 개인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정규직 일' 또는 '돈 잘 버는 일'을 꿈으로 정하는 이유와 직결된다. 지금은 근로기준법, 고령자와 외국인 고용법 등 보호장치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은 해고나 계약만료와 같은 이유로 안정된 고용을 위협받고, 노조 가입처럼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행사하기 힘들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회사에 당당하게 항의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경쟁력을 키운다는 이유로 파견직과 특수고용직 등 일자리 형태는 다양해졌지만, 비정규직의 비율은 더 커졌다. 10대 대기업 중 고용 형태의 약 40%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한국 노동사회연구소 통계에서 찾을 수 있다. 

▲ 취업 준비를 오래 하는 청년이 늘어나는 현실은 시험과 무한경쟁을 통해 인정받은 '능력자'만 정규직이 되는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 KBS

미래 세대인 아이들에게 '꿈의 민주화'가 실현되려면, '정규직이 아니어도 좋은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화폐로 정해지는 '교환가치(양적가치)'가 사회적 모순과 목적 왜곡을 낳았다고 말했다. 그가 태어난 지 200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이들의 꿈 목록을 다양하게 세울 수 있도록 직업에 관한 사회적 인식과 환경을 바꿔야 한다. 아이들이 교환가치로 점철되지 않은,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겁게 사는 삶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 게 미래 세대가 꿈의 민주화를 이루는 기초가 될 것이다. 다음 번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어떤 걸 할 때 가장 즐겁니?"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정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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