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그린뉴딜’

▲ 오동욱 PD

금빛 모래로 뒤덮인 모래톱은 비단 같다. 그래서 이름도 ‘금강’(錦江), 곧 ‘비단강’이다. 건강한 강에는 초록이 없다. 뜨거운 모래는 풀이 자랄 틈을 주지 않고, 풀이 자라도 불어난 물에 쓸려 간다. 모래톱은 금색. 비단 같은 금빛은 자연 그대로의 색이다. 

모래톱의 금빛 말고도, 자연에는 수많은 색이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의 펄은 짙은 고동색이고, 유채꽃 군락은 선연한 노란색이다. 화산지대는 암적색을 띠고, 석회암 지대는 회색을 띤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는 흰색이고, 툰드라 지역은 이끼와 관목으로 짙은 갈색이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지역이나 중국의 차카(茶卡)지역에 있는 소금호수는 하늘빛에 따라 색이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진다. 각 지대에는 환경에 적응한 다양한 생명이 살아간다. 

▲ 금강 고마나루 모래톱에 살던 꼬마물떼새다. 세 개의 알을 낳았다. 알둥지에 강물이 들어와 한 알은 썩고 두 알만 부화했다. 풀과 물 사이 모래톱의 폭은 5미터 남짓이었다. © 다큐멘터리 '물떼새, 날다'

그곳 생명들에게 ‘초록’은 오히려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 가령, 강변에 사는 물떼새는 풀이 많은 곳에서는 살지 못한다. 물떼새는 시야가 탁 트인 모래톱에 둥지를 트는데, 주요 천적인 유혈목이나 물까치가 오면 둥지 밖에서 싸우거나 몸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풀이 많으면 시야가 가린다. 풀에 가려진 좁은 시야 때문에 물떼새는 둥지의 안전도, 몸을 피할 시간도 없다. 물떼새에게 넓은 금빛 모래는 생명의 색, 초록은 죽음의 색이다. 

초록은 언제부터 자연을 상징하게 됐을까? 본래 초록색은 파충류나 악마의 상징이며, 흉계와 위선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미셸 파스투로가 쓴 <색의 인문학>에 따르면 중세 시기 숲에 관한 공포가 초록색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1969년 전환점이 마련됐다. 만화가 론 콥(Ron Cobb)이 초록색과 노란색, 하얀색을 활용해 ‘생태 상징기호(Ecology Flag)’를 만들었다. <LA프리프레스>(The Los Angeles Free Press)가 이 상징을 보도했다. ‘Don’t Make a Wave Committee‘는 이 상징을 활용해 활동하다가 나중에 ’그린피스‘로 발전했고, 또 유럽 ‘녹색’당이 출범했다. 그렇게 초록은 자연을 상징하는 색이 됐다. 

▲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진행했다.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에 보를 건설하고 모래를 준설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사진은 당시 4대강 사업의 홍보 영상 스틸 사진인데, '모래를 풀로 덮어 생태습지를 조성하겠다'고 홍보한다. 이 사업은 '녹색'성장이라는 국가전략 아래 진행됐다. © 유튜브 '방울이'

문제는 ‘초록=자연’이라는 상징만을 부각하면서 다양한 색을 가진 자연의 원래 모습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흡사 자연을 온통 녹색으로 만드는 것이 친환경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 대표 사례다. 당시 한국수자원공사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홍보한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에는 모래톱이 있던 부분은 준설하고, 전부 녹색으로 뒤덮을 거라고 홍보한다. 금강을 집중보도해온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는 “(백제보가 완공된) 2012년에 물고기 60만마리가 폐사”했고, “(갈 곳 잃은) 물떼새는 운동장이나 공사장에 알을 낳았다”고 말했다. 상징인 초록색을 자연과 등치하면서 오히려 자연을 망쳤다.

문재인 정부도 ‘그린’을 내걸지만, 자연의 원래 모습을 살리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7월, 정부는 ‘그린뉴딜’을 발표했다. 환경, 보건, 재난 등 생명공동체를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하는 인간 안보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이 발표에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는 탄소 중립의 구체적 시한이나 청사진도 나오지 않았고, 종 다양성을 보장하려는 생태환경 보전에 관한 언급도 없다. 

정부의 의지 부족은 행동으로도 나타났다. 10월에는 문재인 정부의 해외 석탄 투자가 드러났다. 금강유역물관리위원회는 백제보-상시개방, 공주보-부분해체, 세종보-완전해체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백제보를 다시 닫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극지대의 하얀 빙하도, 금강의 금빛 모래톱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은 자연의 본래 색을 훼손하고 있다.

최근 마케팅업계에서는 초록색보다 파란색이 주목을 받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파란색에서 환경에 관해 높은 신뢰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초록을 피해 자연을 상징하는 다른 색을 찾는 것을 두고, 언론은 기업과 정치인들의 ‘그린 워싱’(Green washing, 위장환경주의)이 심해져서 초록이라는 색을 더는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셸 파스투로의 말처럼 초록이 다시 흉계와 위선의 색이 된 것일까? 나는 자연의 본래 색을 그리워한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확실하다. 자연은 본래의 색을 찾아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예진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