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김주원 기자

공정과 정의가 또다시 모습을 감췄다. 3기 신도시 개발과 관련해 LH 직원들의 토지 투기 의혹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사전 정보를 취득해 비정상적인 금액의 대출을 받고 개발 예정 토지들을 쓸어 담았다. ‘왕버들’이라는 나무를 빼곡하게 심어 보상액을 늘리거나 토지 거래 차익 실현에 혈안이 된 이도 있었다. 

공인중개사들은 ‘타짜’의 솜씨라며 혀를 내둘렀다. 국민은 ‘벼락 거지’에서 영혼까지 털린 ‘영털’로 전락했다며 좌절감과 분노를 드러냈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역대급’ 물량 공세라는 이름을 얻으며 시작한 2·4 대책은 공직자 투기 의혹이라는 벽에 부딪혀 제대로 날지도 못한 채 추락할 위기에 몰렸다.

공직자의 땅 투기 역사는 뿌리가 깊다. 시발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1기 신도시 건설 때부터다. 당시 정부는 폭등하는 집값을 안정시키고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 건설 계획을 세웠지만, 한편으로 투기 심리를 자극해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987명의 투기 사범을 구속했고 이 가운데 공직자는 131명에 이르렀다. 2003년 참여정부 시절 발표된 2기 신도시 조성 때도 공무원의 투기와 비리로 홍역을 치렀고 27명을 적발했다. 이들 모두 직무상 알게 된 개발정보를 투기꾼에게 넘겨 금품을 받거나, 직접 투기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3기 신도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 LH 임직원의 투기 의혹으로 국민의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 연합뉴스

공공기관은 말 그대로 ‘모두’에게 ‘공정’해야 하는 기관이다. LH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인 만큼 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지만, 우리는 공공성 결핍 사회에 살고 있다. 이번 사태가 심각한 이유는 반복되는 부동산 정책에서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당장 이달 2차 후보지 선정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신뢰’는 국가를 운영하는 핵심 요소다. 공공정보의 사적 편취가 중대 범죄인 이유다. 신뢰를 얻지 못한 정책은 추진력을 얻지 못하며, 신뢰를 얻지 못한 국가는 존망의 갈림길에 직면한다.

관례처럼 이어져 온 공직자의 투기 DNA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제도 정착과 의식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정부는 “미꾸라지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며 공직자와 공기업 임직원의 투기를 사전에 방지하는 ‘LH 5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전예방과 검열, 사후 감시와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고 부당이익을 최대 5배까지 환수하는 내용 등을 포함했다. 그물망을 촘촘하게 만드는 제도가 중요하지만, 개인 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뿌리가 튼튼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미군정을 거쳐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 성장을 거치면서 뿌리를 깊이 내릴 기간이 짧았다. 돈이 귀족이 된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옛 얘기가 됐다. 본받을 선례가 없으니 돈을 버는 과정에 도덕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반칙이 난무하고 상식대로 살면 손해 보는 세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가야 할 길은 정해졌다. 32년간의 투기 역사와 천민자본주의를 뿌리 뽑고 새로운 씨앗을 심어 공공 의식과 도덕성이라는 DNA를 장착해야 한다.


편집 : 신현우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