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노인복지'

▲ 정진명 기자

근래 인류사에서 노인은 어떤 존재였을까? 서구에서는 산업혁명기부터 글로벌 자본주의시대까지 여성이나 어린이보다 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했다. 유목 민족은 생존을 위한 대이동 전야에 노인들을 살해하는가 하면 남아프리카 한 부족은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에스키모 일부 부족도 굶주리면 노인의 자살을 유도했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장 풍습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고려장 풍습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고려, 조선 시대에는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였기 때문이다. <고려사 열전> '효우조'에는 위초라는 효자가 나온다. 그는 부친이 병에 걸리자 자기 다리 살을 베어 만든 만두를 먹여 낫게 했고, 그의 효심을 칭찬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국 사회는 효를 미덕으로 보는 역사를 가졌다. 지금도 효 사상이 남아있어, 노인을 살해하거나 유기하는 것은 천륜을 저버리는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노인들의 삶을 존중하며 지켜주는지는 의문이다. 사회 안에서 노인 배제 관념이 작동하면서 노인들이 정상인 축에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는 점점 풍요로워졌지만, 가난·질병·고독 속에서 살다 죽어가는 노인 문제는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청소년문학은 따로 있지만 노인문학은 용어조차 없으며, 노인들 일자리는 소일거리를 나눠주는 것으로 복지를 한다고 치부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 모두가 늙어가고 있는데, 늙음을 불명예 계급장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 풍조는 오래됐다. 

노인을 버리다시피 하는 21세기판 '고려장'이 사회적으로 조성되지 않으려면, 노인에게도 일할 권리를 보장하고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노인들이 공적 은퇴연금만으로 여생을 살 수 없고 그들에게도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46.5%에 이르러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평균 14.8%의 3배 수준이며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한국경제보고서에서도 60세 이상 인구에서 가계부채율이 금융자산의 73%로 심각해, 노인 자살, 고독사까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돈 몇 십만 원을 주는 공공 아르바이트나 복지수당으로는 노인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노인 복지정책은 공공시설이나 지하철에 만들어 둔 노인석처럼 형식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 생활고에 허덕이는 노인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 KBS뉴스

노인을 위한 배려와 공경이 사회 곳곳에 존재해야 노인들이 처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 그러려면 사회에서 공동체와 어울릴 수 있는 다리가 필요하다. 김웅철은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에서 간병의 사회화부터 시니어 시프트까지 다양한 노인 복지정책을 제시했다. 지자체와 대학, 고령사회종합연구기구가 같이 만든 재택 간병 서비스나 마을 교류 커뮤니티, 컬렉티브 하우스 등이 대표적인 예다. 재택 간병 서비스는 보통 젊은 사회복지사를 떠올리는데, 몸이 불편한 고령자를 다른 고령자가 돌보는 노노케어도 한 방법이다. 마을 교류 커뮤니티에서는 독거노인들이 일자리도 공유하고 동네 주민들과 취미와 경험을 나누고, 컬렉티브 하우스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독립해서 거주하면서 일상생활 일부를 함께하는 주거방식을 초고령화 시대의 대안으로 실천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노인만 구분하는 고려장 같은 정책이 아닌 지역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사는 노인 복지가 필요한 때다. 

150만 명. 2019년 통계청 조사에서 나온 한국 독거노인 수다. 이는 광주광역시 인구 145만 명보다 많다. 이들 중 서울 거주 독거노인은 33만 명에 이르는데 기초수급자가 6만 2700여명, 차상위층이 2만 5200여명으로, 전체의 4분의 1이 노인 빈곤을 겪고 있고 그 숫자는 증가하고 있다. 효심이 있는 민족이라는 역사를 내세우기에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현대판 고려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국민 의식 속에서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노인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나도 '현대판 고려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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