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니]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

▲ 김지연 PD

지난 3월 17일 밤, KBS1을 보던 시청자 중에는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은 이가 많았을 것이다. 그날 KBS1 ‘저널리즘 토크쇼 J'에는 MBC ‘PD수첩’ 화면이 로고를 단 채 그대로 방송됐고, ‘PD수첩’ 연출자 서정문 피디가 패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KBS 창사 이래 자사 프로그램에 경쟁사인 MBC 피디가 등장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MBC 피디가 KBS에 나타난 까닭

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의 역사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3년 6월 28일 ‘미디어 포커스’가 본격적인 미디어 상호 비평의 영역을 열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미디어 비평’과 ‘미디어 인사이드’로 이름이 바뀌고 성역 없던 비판의 칼날이 많이 무디어졌다. 2016년 4월에는 그마저 폐지됐다.

미디어비평은 미디어가 사회감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감시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저널리즘의 영역이다. 언론은 제4부라 불릴 정도로 민주주의의 작동에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정치권력과 광고주인 경제권력, 그리고 사주의 이해관계 속에 놓여 있다.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공영방송은 생태계의 자정작용을 선도할 의무가 있다. ‘미디어 인사이드’마저 폐지하면서 KBS는 이 의무를 내팽개쳤다.

KBS가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친 뒤 발 빠르게 부활시킨 것이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KBS 양승동 사장은 2018년 취임 뒤 기자간담회에서 “사장으로 선임될 때 시민들께 KBS 저널리즘을 회복하고 최고의 신뢰도를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간담회 마무리는 새롭게 런칭하는 프로그램 발표였고 그중 하나가 ‘J’였다.

▲ 본격 ‘미디어비평’을 표방하며 지난해 6월 17일 첫 방송을 시작한 ‘저널리즘 토크쇼 J’. ⓒ KBS

자사 저널리즘에 대한 ‘자성’으로 시작

‘J’는 첫 시작을 자사 저널리즘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했다. 13회 ‘JTBC는 어떻게 신뢰도 1위가 됐나?’에서도 KBS 저널리즘을 비판하는 방송을 내보내 시청자의 격려를 받았다. 15회 ‘혐오에 거짓 한 방울, 가짜뉴스 살포하는 에스더 기도운동’에서는 <한겨레> 가짜뉴스 탐사보도기자를 초대해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5회에서는 ‘조선일보는 사주의 일탈을 어떻게 비호했나?’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 문제와 이를 폭로한 MBC ‘PD수첩’을 다뤘다.

‘J’ 35회에는 MBC 서정문 피디가 출연했다. 조선일보 4대 주주이자 코리아나 호텔 사장 방용훈 부인 자살 사건을 다룬 ‘호텔 사모님의 마지막 메시지’ 편을 제작한  ‘PD수첩’ 피디다. 방송 직후 방용훈 사장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청원이 올라오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6년 벌어진 사건이며, 2017년에 KBS가 단독 보도한 사안이었다. 그 후 KBS는 후속 보도를 이어가지 않았고, <동아일보>는 아예 다루지 않았다. 정준희 교수가 방송에서 지적했듯 “같은 업계에 연관돼있는 집안의 불행한 일”을 다루는 것이 “그렇게 ‘바람직한 일은 아닌 거 같다’는 무언의 어떤 공조” 분위기 속에 언론은 이 사건을 외면했다.

▲ KBS 방송에 출연한 MBC 서정문 PD. ‘경쟁사’ 의식보다 저널리즘 자정을 위한 ‘연대’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저널리즘 토크쇼 J’

“MBC 직원이 여기 KBS에 와도 괜찮습니까?”

‘PD수첩’은 ‘언론의 카르텔’을 끊고 언론이 권력의 부패와 맞닿아 있음을 고발했다. ‘J’는 그 방송 하이라이트를 그대로 담아내며 화답했다. MBC 서정문 피디를 ‘J’에 초대한 것은 KBS가 ‘경쟁사’라는 인식보다 ‘언론의 연대’라는 가치를 더 중시한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나아가 KBS가 당시 사건을 취재했음에도 침묵했으며, ‘당시 취재 기자가 데스크에 관련 사안을 보고했는데, 그게 삭제되었더라’는 KBS 신지원 기자의 증언도 내보냈다. 당시 취재와 데스킹 과정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며 비판한 것이다.

▲ ‘고 이미란 투신 사건’ 당시 KBS는 2팀이 출동해 방용훈 부인임을 확인하고 영상까지 확보했으나, 취재 보고는 내부 문건에서 삭제된 것을 확인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 ‘저널리즘 토크쇼 J’

미디어 윤리에는 정답이 없다. 존 메릴은 ‘언론인은 절대선이 아니라 최고선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미디어는 정해진 규범이나 규칙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자율 규제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비평이 ‘결점 찾기’에 끝나지 않고 훌륭한 사례를 소개하고 연대하는 것은 저널리즘 윤리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35회 방송에서 최욱이 “MBC 직원이 KBS에 와도 괜찮습니까”라고 묻자 서 피디는 “저도 굉장히 놀랍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동시에 화면에는 “의좋은 (공영방송) 형제” 자막이 깔렸다. 동종 경쟁방송사 제작진의 출연은 KBS 미디어비평이 저널리즘 회복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내용이 좋은 건 기본, 젊은 시청자와도 소통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와 시시각각 소통한다. 2018년 9월 16일 결방의 아쉬움을 달래려 시작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은 뜨거운 반응 속에 ‘J라이브’라는 이름의 정기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본방송 하이라이트는 ‘J컷’으로, 본방송 요약은 ‘J훅’으로 편집되어 유튜브 유행에 맞는 짧은 클립 영상으로 재탄생했다.

그 외에도 본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소재와 뒷이야기는 ‘J인사이트’, ‘비하인드’ 등 다양한 영상 클립으로 시청자에게 다가간다. SNS 맞춤형 콘텐츠들은 젊은 시청자들의 ‘좋아요’와 ‘공유’를 타고 퍼져나가며 TV를 떠난 젊은 층에게 다가갔다. 지난해 6월 첫 방송을 한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년이 안 된 23일 현재 11만을 넘었다.

▲ ‘저널리즘 토크쇼 J’는 ‘J라이브’ ‘J훅’ ‘J컷’ 등 짧은 디지털 클립으로 재편집해 젊은이들과 소통한다. ⓒ vovoclip

지루해지기 쉬운 토크 프로그램의 한계는 다양한 이미지와 그래프로 극복했다. 배경에 띄운 그래프에서는 주목할 부분을 블록 처리해 움직임을 준다. 빠른 호흡과 화려한 그래픽에 익숙해진 젊은 층을 잡으려는 노력이다. 자칭 ‘팟캐스트 황태자’ 최욱은 일반 시청자의 눈으로 질문의 수위를 넘나들며 딱딱해질 수 있는 토크쇼에 맛을 더한다. ‘J’의 김대영 팀장은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딱딱하고 재미없고 촌스럽게 만들면 시청자들은 찾지 않기 때문에 플랫폼에 맞게 콘텐츠를 가공해 뿌려야 한다”며 젊은 시청자 확보를 위한 의지를 드러냈다.

노력이 통한 덕분일까? 온라인 콘텐츠 이용 통합지수를 산출하는 ‘코코파이’에 따르면 ‘J’의 동영상 클립 조회 수는 누적조회 69만 건(18.11.5.~19.1.13.), 주당조회 10만 건에 이른다. 최근 신년특집으로 기획한 공개방송 ‘깨어난 시민 J(2부작)’에는 예상했던 300~400명의 두 배 가량인 700여 시청자들이 방청객으로 참석했다. 그러나 온라인 화제성에도 본방송 시청률은 아쉬운 수준이다. 개인 시청자 57만 명으로 ‘다큐3일’ 109만, ‘스트레이트’ 77만, ‘SBS스페셜’ 104만 등 동시간대 프로그램에 비하면 낮다.

‘지상파’와 ‘팟캐스트’ 중간쯤 자리잡은 어색함

프로그램 편성 시간대도 살펴봐야 한다. KBS1TV의 프라임타임(저녁7시~밤12시) 시청자 평균연령은 58세다. ‘J’ 시청자 평균연령은 54세로 ‘KBS1의 가장 젊은 콘텐츠 중 하나’다. 여기에 제작진의 고민이 깔려있다. 화제성을 위해서는 ‘1020’을 타겟팅해야 하고 시청률을 위해서는 ‘4050’의 입맛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점을 타파하기 위한 고안책이 유튜브를 통한 'J라이브'다. 화장기 없는 출연자들의 소탈한 모습과 궁금한 소식의 즉각적인 소통에 시청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특집으로 시작한 라이브 방송은 정규화하면서 아쉬움을 보였다. 비하인드 소통이라는 취지와 달리 ‘격식’을 차렸으며, 정세진 아나운서의 캐릭터는 최욱과 겹쳐 유튜브의 ‘B급’ 감성을 담아내기 부족했다. JTBC 소셜라이브로 시작된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진실성과 소통이 핵심이다. 기자회견에 쓰일 법한 배경과 좌담회식 자리배치, 팟캐스트와 방송 사이쯤의 진행방식에는 기존의 방송관습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J’의 시도는 앞으로 기대해봄 직하다. 신년 공개방송 ‘깨어난 시민 J’에서 시청자들이 베스트 ‘J’로 13회 ‘JTBC는 어떻게 신뢰도 1위가 됐나?’ 편을 꼽은 데 대해 정준희 교수는 이렇게 자평했다.

“큰 전환점이었다고 봐요... ‘KBS가 진짜 작심하고 자기비판을 하는구나’, ‘과감하게 모든 것에 대해서 비판도 하고, 칭찬도 하는구나’, 이런 걸 많이 여러분께 좀 실제로 증명해 보여드렸던 그런 회였던 것 같고요.”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의 본질은 신뢰에 있다. 성역 없는 미디어 비평과 자기비판을 통해 진정성을 증명해야 한다. 어쩌면 가학증과 피학증으로 보일 정도로 상대방과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J’는 성역 없는 자사 비판과 언론 연대 의식으로 한 단계를 넘었다. 이제 ‘J’는 진정성이라는 중심을 견지하면서 시청자 지평을 넓히는 다양한 전략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과제를 앞두고 있다.


편집 : 김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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