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니] '회사 가기 싫어'를 시청자도 싫어한 이유

2018년 9월 12일 방송을 시작해 2018년 10월 24일까지 6회로 구성한 KBS ‘회사 가기 싫어’가 막을 내렸다. 수요일마다 2TV 23시 10분에 편성된 이 프로그램은 직장생활의 에피소드를 담아낸 오피스 모큐멘터리다. 모큐멘터리는 ‘거짓의’라는 뜻을 가진 '모크(mock)'와 '다큐멘터리(documentary)'를 합친 단어로 페이크 다큐멘터리라 부르기도 한다. 모큐멘터리는 특정 주제에 풍자와 해학을 담아 코미디나 패러디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색다른 재료와 참신한 조리법

‘회사 가기 싫어’ 제작진은 프로그램 기획 의도를 '다큐의 정신을 예능의 화법으로 전달, 알찬 노동 정보에 감성과 웃음을 얹은 직장인 나노 입자 공감 스토리'라고 소개했다. 처음에는 흥미로운 프로그램 또는 참신한 모큐멘터리라는 평가를 받으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모큐멘터리 형식이 신선했으며 프로그램 타이틀도 요즘 세대의 눈길을 끌 수 있게 직설적이다. 이 모큐멘터리가 펼쳐지는 무대는 중소기업 '한다스'의 영업기획부로 직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소재다.

▲ KBS ‘회사 가기 싫어’는 가상의 중소기업 한다스 영업부에서 펼쳐지는 직장생활 이야기를 통해 직장 내 현실과 부조리, 회사원의 애로사항을 담아낸다. ⓒ KBS

6부작 중 1회 '입사하자마자 퇴사하고 싶다' 편에서는 퇴사를 꿈꾸는 오늘날 회사원들의 일상과 계급 갑질을, 2회 '시간 전쟁' 편에서는 출∙퇴근길 전쟁부터 52시간 근무제 등을 통해 시간에 쫓기는 직장 현실을 보여줬다. 3회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편과 4회 '휴가 전쟁' 편, 5회 '회사 사람들' 편에서는 SNS를 통한 과도한 업무 지시에 따른 사생활 침해와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연차휴가, 회사 사람들 간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 등 회사 생활의 부조리를 발랄하게 표현했다. 마지막 6회 '싫어도 가야 돼' 편에서는 항상 퇴직을 꿈꾸면서도 막상 실행하지 못하는 회사원의 현실을 담아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PD저널>에서 "모큐멘터리는 허구의 설정이나 상황을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장르로, ‘회사 가기 싫어’는 직장 문화 탐구라는 다큐멘터리의 기획을 시트콤의 재미와 젊은 감각으로 포장했다"고 평가했다. <미디어스>도 "딱딱한 보도도 아니고 꾸며진 이야기도 아닌, 그 중간에서 정보와 재미를 함께 준다는 점에서 ‘회사 가기 싫어’는 완성도 높은 시사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높은 점수를 매겼다.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은 '진수성찬'

이 프로그램은 잘 차려진 밥상처럼 볼거리로 가득하다. 회사라는 특정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라는 설정을 통해 정보 전달뿐 아니라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까지 챙기고자 다양한 요소가 프로그램 곳곳에 배치됐다. 직장에서 발생하는 상황과 관련한 통계자료를 그래픽으로 화면에 배치하고 프로그램에서 영업부 대리를 맡은 오승원 KBS 아나운서가 그 내용을 설명했다.

▲ 육아휴직을 소재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에 통계자료를 그래픽으로 제작해 화면으로 구성하고 KBS 오승원 아나운서가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KBS

급여를 받는 회사원들이 사용하는 은어를 뜻하는 '급여체'도 배우들이 사용할 때마다 설명을 덧붙였다. 설명할 때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 인터뷰와 실제 회사원 인터뷰도 함께 진행했다. '넵'과 '꼰대'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교수와 전문가의 어원 풀이부터 강세화 서예가가 넵을 큰 붓으로 써 내려가는 영상, 닌볼트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꼰대를 떠올리는 이미지를 그리는 영상도 사용해 시청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했다.

▲ 회사원들이 사용하는 은어인 급여체를 설명하며 서예나 그림 등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 KBS

기존 프로그램을 패러디하고 유명 연예인이나 화제가 된 인물이 특별출연해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KBS 1TV '사사건건'과 '우리말 겨루기',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사건사건', '회사원 겨루기', '들어서 세계속으로' 등으로 패러디해 정보를 다채롭게 전달했다. 또 임채무, 김승우, 이휘재, 유민상 등 여러 연예인과 <채널A> ‘하트시그널’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은 김장미, 정재호, 뷰티 크리에이터 씬님 등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이들이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높이고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전략으로 기존 프로그램을 패러디하고 유명인들이 특별출연한다. ⓒ KBS

취업준비생과 사회 초년생 등 젊은 시청자들을 공략하기 위한 노력도 돋보였다. 화면에 SNS 감성을 표현한 해시태그를 사용하는가 하면 직장생활에서 필요한 건배사나 회식자리 매너, 워크숍 준비 사항, 직장 내 SNS 사용 등에 관한 꿀팁을 제공했다. 또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유튜브 등 SNS 화면과 스마트폰에 쓰이는 세로화면을 활용하고 ‘단톡지옥’과 ‘직딩좀비’ 등 급여체를 자막으로 사용했다.

▲ 정보를 전달할 뿐 아니라 다양한 그래픽과 이미지를 활용해 다채롭게 화면을 구성한다. ⓒ KBS

차린 건 많지만 먹는 이 없어

아무리 맛있고 화려한 진수성찬도 먹는 이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시도를 한 프로그램이지만 시청자가 보지 않는다면 프로그램은 실패한 것이다. ‘회사 가기 싫어’ 시청률은 1회 1.4%로 시작해 1.7%, 1.4%, 1.0%, 1.1%로 떨어지다가 마지막 6회는 0.9%를 기록했다. 10월 셋째 주 코코파이 TV지수와 온라인 화제성을 측정하는 코코파이 nonTV지수 모두 100위 안에 들지 못했다. 같은 시간대 방영하는 MBC ‘라디오스타’는 시청률 5.0%를 기록했고 코코파이 TV지수에서 60위, 코코파이 nonTV지수에서 21위를 차지했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이보다 높은 6.1% 시청률과 코코파이 TV지수 40위, 코코파이 nonTV지수 11위를 기록했다.

KBS의 새로운 시도와 노력은 가상하지만 이미 두터운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다른 방송사 수요프로그램 사이에서 편성전략을 잘못 짠 탓이 크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가 아니다. KBS는 ‘직장의 신’ ‘프로듀사’ ‘김과장’ 등 오피스 드라마에서 강세를 보였던 터라 기대만큼 실망도 크다. 이번 ‘회사 가기 싫어’ 속 인물의 매력과 이야기 진행 구도는 너무 물린다. 김과장’ 속 김성룡 과장만큼 직장인의 꽉 막힌 속을 뚫어줄 '사이다'도 없고, tvN 드라마 ‘미생’ 속 인턴 장그래와 과장 오상식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그려내는 울림과 공감도 없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 화면과 해시태그, 세로화면 등을 왜 사용했는지도 애매하다. 이들은 개인 맞춤형 소통과 공감을 확장하는 방법이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목적과 상관없이 그냥 나열되고 있을 뿐이다. TV 프로그램에 SNS의 요소를 도입한 지는 오래됐다. KBS가 뒤늦게 이를 도입했지만, 보여주기 말고는 이런 요소를 활용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빼버린 채 기법만 보여주기 식으로 어지럽게 동원했을 뿐이다. 종류는 많지만 정작 맛있는 음식은 없는 한정식 코스요리랑 다를 바가 없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PD저널>에서 "흥미롭긴 했지만 특별한 에피소드 없이 예상 가능한 이야기들 속에서 회사 생활의 부조리를 끄집어냈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가 1회를 보고 지적한 부분은 회 차를 더해도 바뀌지 않았다.

소통 없는 일방적인 콘텐츠 전달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다. 새로운 시도와 변화하려는 노력도 좋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제작자와 시청자가 소통하면서 그 의미를 더해가는 것이다. KBS는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 시청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제대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편집: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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