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청와대 국민청원

 
▲ 장은미 기자

중국집 주문을 예로 들자. 짜장면 3, 짬뽕 2, 볶음밥 1. 메뉴를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제왕권이라면 권력을 가진 이가 먹고 싶은 메뉴로 정한다. 민주주의라면 3명이 선택한 짜장면을 시킨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곧 권력이니 말이다. 권력의 토대는 다수의 관심과 지지다. 그렇다면 다수의 뜻이 반영된 ‘짜장면’ 주문이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그렇지 않다. 짬뽕이나 볶음밥을 원한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소수’의 불만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그래서 고무적이다. 국민 모두가 사회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관계자들이 직접 답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준에 미치지 못해도 필요하다면 답변하라”고 주문해 청원 제도에 힘을 실었다. 첫 3달 동안 올라온 청원이 무려 5만 건, 하루 평균 500건을 넘는다. 국민적 관심이 잘 묻어난다. 국민청원이 유의미한 성과로도 이어졌다. 권역외상센터 지원 청원을 담당 부처 장관이 직접 답하며 해결책을 찾은 것은 대표적이다. 국민청원 게시판만 들여다봐도 살아 숨 쉬는 여론이 쉽게 읽힌다. 국회와 언론이 대의(代議) 하지 못하는 여론의 속살이다. 이 자체만으로도 국민 청원 제도가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 첫 3달 동안 올라온 청원이 무려 5만 건을 기록할 정도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그러나 국민 청원이 갖는 근본적 한계도 엿보인다.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제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용 판결 판사에 대한 징계, 조두순 추가 처벌 요구 등의 사안은 청와대 권한 밖이다. 따라서 ‘알맹이 빠진’ 맹탕에 가까운 청와대 답변이 국민 청원 게시판에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다. 이는 청와대만 국민과 소통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해준다. 삼권분립을 표방하는 입법, 사법, 행정이 제 역할을 다해야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실현이 이뤄진다. 이 점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따르지 않으면 뜨거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국민 청원이 자칫 ‘여론 한풀이’성으로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03년 노무현 참여정부는 부안에 핵폐기물처리장 건설 계획을 세웠다. 이에 반발한 지역 여론은 주민투표를 끌어냈다. 반대 주민 측 자원봉사자들은 2만 가구 이상을 직접 찾아다니며 반대의 정당성을 설득하고, 투표 참여에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주민투표에 72%의 주민이 참여했고, 91%가 반대표를 던졌다. 엄기호는 <단속사회>에서 “우리가 힘을 키우며 스스로 존재감을 확인하는 기쁨의 과정이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국민청원은 이를 증폭시키는 제도다. 그렇다면 다양한 민의를 담아내기에 아쉬운 점이 드러난 국민청원 제도의 한계를 넓힐 실질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이 청와대를 넘어 입법부와 사법부는 물론 언론의 분발을 기대하는 이유다. 짜장면이 아닌, 볶음밥과 짬뽕을 먹고 싶은 국민에게도 열린사회가 되려면 말이다. 그게 진짜 민주주의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를 놓고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강의를 듣고 한 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도 첨삭 과정을 거쳐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장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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