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18.9.26 수
> 뉴스 > 칼럼 > 역사인문산책
     
클레로테리온과 청와대 국민청원
[역사인문산책] 직접민주주의
2018년 03월 23일 (금) 15:22:24 박지영 기자 bing831@naver.com
   
▲ 박지영 기자

‘클레로테리온(Kleroterion)’.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이 사용했던 일명 ‘일할 시민들을 뽑는 추첨 기계’다. 민회에서 전체 시민들이 결정하는 사안이 아닐 경우, 나머지 국정운영은 클레로테리온을 통해 무작위로 선택된 시민들 몫이었다. 아테네에서는 통치자가 시민들과 분리된 정치를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시민들은 입법과 사법, 행정 분야 정책 결정은 물론 직접 그 업무를 담당해 평등 세상을 일궈냈다. 시민을 정부에 종속된 객체로 보는 것이 아닌, 정부를 구성하고 이끌어 나가는 주체로 보는 것. 이것이 오늘날 직접민주주의의 뿌리, 그리스 아테네 정치의 핵심이다.

   
▲ 클레로테리온(Kleroterion). 우측에 시민들의 이름을 넣고 좌측에 흰 돌과 검은 돌을 넣는다. 자신의 이름표에 흰 돌이 걸린 시민이 뽑혔다. ⓒ Flickr

‘청와대 국민 청원’은 촛불 정국에서 고취된 시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결과다. 국민 청원은 그리스 정치가 보여주는 직접민주주의의 가치와 의의를 담는다. 일상생활에서 겪는 소소한 불편함에서부터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에 대한 비판과 정책 제시까지. 시민들은 다양한 생각을 공유, 토론하며 정부와 정치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짚어 준다. 그러나 현재 운영되는 청와대 국민 청원은 여전히 반쪽짜리 직접민주주의라는 평가다. 정부는 ‘20만’ 명의 추천을 받은 청원에 대해서만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청원들은 ‘만료된 청원 리스트’로 올라가 묻히고 만다. 청원의 내용과 사회적 의미는 대답 선정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방송과 영화, 그 외 영상 제작 산업 종사자들의 근로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청원은 8천577명의 추천을 받았다. 통계에 따르면 방송, 영화 제작 산업 종사자는 대략 8천800여 명. 수치로만 놓고 보면 전체 근로자의 90%가 공감한 현안이다. 광고업계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파헤쳐 달라는 청원에는 전체 광고 산업 종사자 수의 20%에 달하는 1만27명이 추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두 청원은 모두 ‘20만 명’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만료 처리 됐다. 노동조건과 인권개선을 위한 업계 종사자들의 요구는 청와대가 답변의 편의 상 정한 20만 명이라는 기준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배제된 것이다. 2년 전 2016년 1월, 이한빛 피디가 방송사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비인간적인 경영에 못 견뎌 목숨을 끊은 바로 그 분야인데도 말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추천을 받을 수 있다는 형식적인 기회의 평등만을 제공한 채, 일방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한 의견들은 배제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 고통 받는 국민이 정부에 기댈 최후의 소통 공간에서도 소수라는 이유 하나로 절규는 한풀이성 발언 자체로 머물 뿐이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사회적 가치, 즉 희소한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 정의한다. 그리스 아테네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 까지.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는 불변하다. 민주주의는 시민들 스스로 자원 배분에 대한 통제력을 갖겠다는 것이다. 민회에 참여하고, 클레로테리온이라는 추첨 기계를 통해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것 또한 시민이 통제력을 갖기 위한 조치였다. 불평등한 경제 구조, 재벌과 기득권의 갑질이 더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의 직접 개입과 통제는 갈수록 그 필요성이 더 커진다. 청와대의 국민 청원이 본래의 취지대로 직접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되기 위해선 ‘20만 명’이라는 행정 편의적 발상의 해괴한 기준부터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2천 5백 년 전 아테네처럼 클레로테리온을 청와대에 두고 국민을 직접 정책 결정자로 뽑지 않는다면 말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를 놓고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강의를 듣고 한 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도 첨삭 과정을 거쳐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조은비 기자

[박지영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장 박지영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진실만을 쫓는 우직한 기자가 되겠습니다.
     관련기사
· ‘눈먼 돈’, 권력 아닌 국민 향해야
· ‘한류’의 미래... ‘황금의 나라’가 된 비결
· 헤라클레스와 이흑산
· 거대건축에 숨은 권력자 욕망
· '우수한 문화'라는 가학적 쇼비니즘
박지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문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환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