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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과 하비덴트
[역사인문산책] 개헌
2018년 03월 29일 (목) 22:49:20 장은미 기자 josinrunmi@naver.com
   
▲ 장은미 기자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고뇌한다. ‘어떻게 하면 근본적으로 안전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자신이 더 이상 영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대신 지방 검사 하비 덴트와 같은 이들이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찾을 수 있는 정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우리는 수없이 만나는 정의롭지 못한 일 앞에서 배트맨이 나타나길 갈망한다. 배트맨은 언제나 악당들을 처치하고, 우리를 보호해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배트맨을 만나기 쉽지 않다. 배트맨과 하비덴트 검사는, 사람과 시스템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하비 덴트(시스템)보다 배트맨(사람)에 기댄다. 우리 현실에서 정의 실현이 어려운 이유는 하비 덴트보다 배트맨을 찾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헌법 개정안에 대한 여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권력 야욕으로 개헌을 누더기로 만든 독재자 대통령이 저지른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72년 남한의 유신헌법과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모두 겉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내세웠다. 실제로는 자기들, 종신독재를 굳혔을 뿐이다. 52년 발췌 개헌, 54년 사사오입 개헌, 69년 3선 개헌, 그 악명 높은 72년 유신 개헌도 그랬다.

우리에겐 개헌이란 누가, 어떤 배경에서 하는지가 중요한 판단의 열쇠가 될 수밖에 없다. 개헌을 발의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70%에 이를 만큼 높다. 개헌안에 찬성하는 국민도 그와 비슷한 65%에 달한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대통령 중임제 개헌안이 적용되지 않아 다시 출마할 수도 없다. 공약대로 임기 초반에 추진했고, 투표비용 절감까지 계산해 개헌안을 제안했다. 국민들에게 문 대통령이 ‘배트맨’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우리는 배트맨을 택할 것인가, 하비 덴트를 택할 것인가? ⓒ 다크나이트 스틸컷

개헌안의 내용을 보자. 촛불 정신의 결과물인 국민발안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 강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줄이고,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의 법관 자격요건을 낮췄다. 일반 시민 배심제 도입의 근거도 보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삼성 공화국’이라는 국민적 지탄에 직면한 법원의 기득권을 국민과 나누는 취지다. 한문 투 헌법 조항을 한글로 바꾼 점도 마찬가지다. 대선 결선투표제나 18세 선거권 부여, 비례대표성 강화 등은 선거 제도를 바꿔 더 다양한 민심을 담아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지방자치를 강화해 지역주의 완화를 꾀한 점도 평가할 만하다. 대통령 국민소환제가 빠져 제왕적 대통령제를 상징적으로 완화할 방안이 보이지 않는 점은 ‘옥에 티’지만, 국회와 협의 과정에 얼마든지 포함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협의에 나설 국회는 손을 놓고 있어, 국민 시선이 따갑다. 국회가 국민의 권한을 늘리려는 개헌안에 찬성할 것 같지도 않아 보이는 건 시스템을 운영할 사람, 즉 국회의원들을 믿지 못해서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배트맨처럼 의지하는 건 위험하다. 그는 ‘시한부 배트맨’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물론 하비 덴트는 배트맨만큼 믿음직하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하비 덴트와 더불어 살아간다. 언제 사라질지 불안한 배트맨만 바라보지 말고, 못미더운 국회라도 시스템 안으로 민의를 반영해 일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과제다. 2016년 겨울, 우리는 촛불을 들어 국회를 압박했고 국정 농단의 주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끌어내지 않았던가? 19세기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탁월한 언급에 다시 귀를 기울인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를 놓고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강의를 듣고 한 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도 첨삭 과정을 거쳐 실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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