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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문화'라는 가학적 쇼비니즘
[역사인문산책] 다문화
2018년 01월 28일 (일) 23:32:01 이창우 기자 irondumy@icloud.com
   
▲ 이창우 기자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2000년대 초반 전국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이다. 결혼 시장에서 밀려나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여성과의 국제결혼으로 눈을 돌린 한국남성들을 유혹하는 문구다. 당국이 나서 금지했지만, 우리사회 인종차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 사례다. 한국인이 무작정 외국인을 혐오하고, 배타적으로 대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인종적, 문화적 배타성은 매우 선택적으로 움직인다. 미국, 유럽계 백인들을 보는 시선은 언제라도 관대하다. 같은 영어강사라도 출신국가, 인종에 따라 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런 의식구조는 한국 특유의 혈통주의조차 뛰어넘는다. 2018년 현재, 백인과의 연애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 이자스민 의원은 19대 총선에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이주아동 권리보장법안, 탈북자 인권, 가정폭력피해자 문제 등 소외된 곳에 관심을 쏟았다. 국회의원이었던 그녀조차 진보와 보수진영을 막론하고 쏟아지는 외국인혐오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 이자스민 전 의원 공식 블로그

한국에서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 21세기 지구촌의 기본 가치체계들은 성공적으로 뿌리내렸다. 후발주자로서는 유례없을 정도의 성공이라는 찬사도 뒤따른다. 그 과정에서 오만함을 동시에 얻은 것일까? 군사정권은 한국이 성공적으로 선진 체제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로 우수한 민족성과 유구한 문화를 강조했다. 한국식 배타주의라는 괴물은 이런 국수주의적 풍토에서 서서히 싹텄다. 서구 유럽은 맹목적으로 우러러보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라 판단되면 존중을 거두고 경멸을 보낸다. 심해질 경우 그 나라 민족의 민족성으로까지 결부시킨다. 이런 인식은 마치 19C 일본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을 연상시킨다. 후진적인 중국과 한국의 아시아를 벗어나, 백인들의 서구 사회로 일본이 진입해야 한다는 이론 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당연시하고 있는 ‘단일민족’의 신화는 사실 거짓에 가깝다. 최신 기법의 DNA검사결과 우리민족은 동남아(베트남과 대만)에서 올라온 남방계 농사민족이 주류를 형성하는 가운데 북방에서 내려온 유목기마민족이 합쳐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북방의 기마민족이 기동력을 앞세운 기마문화에다 우수한 청동기와 철기를 무기로 신석기 농사문명 단계의 한반도를 장악해 갔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우리 민족이 일군 유구한 문화유산은 이런 문명교류와 융합의 산물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석굴암이나 불상, 석가탑과 다보탑은 서역에서 건너온 불교문화에서 꽃폈다. 고구려와 신라, 가야의 찬란한 황금문화는 초원의 길을 타고 전파된 기마민족의 황금문화를 우리 현실에 접목시킨 결과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글 역시 산스크리트 문자에서 비롯된 티벳문자의 개량판, 몽골 파스파 문자의 영향이 일정부분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온다. 문화와 문화가 융합돼 새로우면서도 다양한 ‘고유 영역’이 파생되는 게 문화의 본질이다. 따라서 우리만의 ‘우수한 문화’라는 말은 좌정관천(坐井觀天)식 가학적 쇼비니즘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글 역시 산스크리트 문자에서 비롯된 티벳문자의 개량판, 몽골 파스파 문자의 영향이 일정부분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온다. ⓒ Pinterest

충렬왕 때 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은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더니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라는 야한 노랫말로 기녀가 읊은 노래다. ‘회회아비’는 아랍인이나 페르시아, 혹은 소그디아나 계열 이슬람 상인을 가리킨다. ‘회회교(回回敎)’가 이슬람교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쌍화점은 흔히 만두가게로 해석됐는데 2001년 인하대 박덕유 교수는 ‘세공품 가게’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중한사전(1989)에서 ‘솽화[霜花, shuanghua]’를 서리 모양의 세공(細工)"으로 풀이한 사례를 발견한 덕분이다. 만두가게이든 세공품 가게이든 서역출신 이슬람 상인이 고려 수도 개성에서 일반인이 드나드는 상점을 운영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강화도에서 바라다 보이는 예성강 하구, 고려의 국제무역항으로 개성에서 40리길인 벽란도에는 중국뿐 아니라 이슬람 상인도 드나들었다. 벽란도를 창구로 다양한 민족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살던 고려시대보다 지금 우리가 더 우수한 정신문화를 갖고 사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를 놓고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강의를 듣고 한 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도 첨삭 과정을 거쳐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조은비 기자

[이창우 기자]
단비뉴스 국제부장, 청년부 이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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