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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엄마
[상상사전] ‘가족’
2018년 02월 26일 (월) 22:18:16 박수지 기자 wbdjffl514@naver.com
   
▲ 박수지 기자

 “그놈의 민방위 훈련만 아니었어도···.” 우리 엄마 신세 한탄의 시작이다. 대학생 때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 길, 민방위 훈련 사이렌이 울려 근처 오락실로 급히 들어갔는데 그때 옆에 앉은 남자가 엄마에게 한눈에 반해 쫓아왔다. 10분만 이야기하자던 그는 매일같이 자기를 보러 왔고 어느새 결혼식장에 같이 손잡고 들어가고 있더란다. 신혼을 즐길 새도 없이 한 달 만에 내가 생겼고 시어머니가 그토록 바라던 아들까지 낳아 키우다 보니 이렇게 늙어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그 사이렌 때문에 아빠와 결혼하게 됐고, 우리를 낳고 키우느라 얼굴에 주름만 가득한 아줌마가 돼버렸다는 하소연이다. 아나운서가 돼 마이크를 잡고 싶었는데 집에서 잔소리나 하는 신세가 됐고,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싶었는데 자식 눈치, 남편 눈치 보다가 동창회도 못 나갔다는 한탄이다. 결론은 늘 같다. “그러니까 넌 결혼하지 말고 혼자 즐기며 살아.”

수많은 엄마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기 꿈을 잊어버린다. 살림과 양육, 심지어 생계까지 도맡아 하느라 꿈을 포기한 엄마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들은 ‘oo 엄마’로 불리며 자기 이름도 듣지 못한 채 가족에게 희생한다. 희생의 대가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가 자기 희생을 당연하다고 느낄 때쯤 가족들도 엄마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엄마는 실망감과 허탈함을 느낀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이길 거부할 때 그 씁쓸함은 얼마나 클까? 게다가 남편은 처음 나에게 반해 쫓아오던 그 남자가 아닌 지 오래다. 식구들에게 압류된 세월을 보상받을 길도 없고 잃어버린 세월과 꿈이 무엇인지도 생각나지 않을 때 엄마의 한탄이 시작된다.

   
▲ 엄마는 아이를 키우며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한다. 심지어 'OO 엄마'로 불리며 자신의 이름까지 잃어버린다. ⓒ EBS <다큐프라임>

엄마가 불행하면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 역시 불행해진다. 남인숙 작가는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에서 “불행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변의 가장 약한 대상에게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자식”이라고 썼다. 잔소리와 짜증이 늘게 되는 것이다. 또 불행한 엄마들은 대개 자식을 통해 행복감이나 대리만족을 느끼려 한다. 그래서 자식에게 똑똑하고 예쁘고 성공한 사람이 될 것을 강요한다. 이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자녀들도 많다. 행복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가족’이 될 때 서로가 불행해지기 쉽다. 남 작가는 “자꾸만 희생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 되기 쉽다는 건 씁쓸한 역설”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엄마들의 전매특허인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로 시작하는 각종 슬픔의 서사시가 그 증거다.

시인 신달자는 <여자를 위한 인생 10강>에서 요즘은 “나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희생적인 어머니’가 오히려 자식에게 폐가 된다고 설명한다. 이제는 “나도 잘살게, 너도 잘 살아”라고 말하는 ‘합리적인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건 ‘나 자신의 의견이 살아 있는 것’이다. 가족들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 진지하게 그러지 말 것을 요구하고, 내가 하기 싫은데도 오로지 타인만을 위해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제 희생만 하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식은 드물다. 오히려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이제 자식들도 자기 스스로 행동하고 일과 취미를 찾아 열심히 사는 엄마를 더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니 엄마들은 자신과 소통하고 본인의 인생을 사랑해야 한다. 남편과 자식이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는 걸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 자신과 소통할 줄 아는 엄마는 가족과도 더 잘 소통할 수 있다.

다행히 우리 엄마는 최근 ‘합리적인 엄마’ 유행을 따르는 듯하다. 얼마 전 엄마는 가족들의 단체 채팅방에 15만원을 내고 쿠킹 클래스에 등록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역시나 아빠는 ‘집에서 밥이나 잘하지 무슨 쿠킹 클래스냐’고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나와 동생은 ‘기대된다’는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손글씨 학원도 등록할까 생각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빠에게는 아직 비밀인데 친구들과 베트남 여행을 가기 위한 계도 들었단다. 엄마의 활동적인 모습에 나까지 행복해졌다. 이제 희생만 하는 엄마는 내가 사양하겠다. 더 당당하고 합리적인 엄마, 아니 행복한 ‘여자’가 됐으면 좋겠다. 이 유행이 많은 엄마들에게 널리 퍼졌으면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송승현 기자

[박수지 기자]
단비뉴스 시사현안부장, 편집부, 환경부, TV뉴스부 박수지입니다.
말과 언어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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