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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가족’을 위한 상상력
[상상사전] ‘가족’
2018년 02월 09일 (금) 00:26:40 남지현 기자 njihyun0116@gmail.com
   
▲ 남지현 기자

신촌로터리에는 동상이 하나 있다. 오거리를 덮은 아스팔트처럼 회갈색을 띤 동상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도로변 작은 잔디밭에 멀뚱히 서있다. 학부 시절 매일 학교 가는 길에 지나치면서도 자세히 본 적이 없다. 그 동상의 의미를 알게 된 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다. 보도로만 다니던 로터리에 처음으로 스쿠터를 타고 간 날이었다.

신촌로터리 동상이 말하는 것

지구를 반으로 자른 듯한 반구 위에 축구공의 오각형 무늬가 양각되어 있고 그 위에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웃통을 벗고 서있다. 그는 어깨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치켜들고 있는 남자아이를 태우고 있고, 그의 발치에는 품에 남자아이를 안은 여자가 걸터앉아 있다. 금방이라도 골문을 향해 공을 차 넣으려는 듯한 남자와 무릎을 꿇은 채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듯한 또 다른 남자가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기이한 것은 아버지 조각상의 허벅지에 비스듬히 기댄 목발 한 짝이었다.

   
▲ '정상 가족'을 구현한 듯한 신촌로터리의 동상. © 남지현

동상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면 이렇다. 건장한 아버지가 다리에 장애가 있는데도 훗날 한국 국가대표팀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있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도 아이가 월드컵 영웅이 되기 위해 필수적이다. 훗날 이 아이는 결승골을 터뜨리고 멋지게 하늘에 기도하는 세리머니를 한다. 즉, 국가와 민족에 이바지하는 미래세대를 키워내는 것은 든든하고 책임감 있는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런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선전물이 차도를 향해 전진 배치되어 있다는 점 또한 의미심장하다. 차를 소유한 이들은 대개 30대 이상이면서 이미 가족을 꾸렸거나 가족을 꾸리게 될 시민이다. 이들에게 국가가 원하는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과 기능을 홍보하려는 건 아닌지. 하지만 동상의 축구공 무늬 양각은 도리어 ‘정상 가족’ 신화의 기반에 난 균열처럼 느껴진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한계

우리 사회는 이제 덜 결혼하고 더 늦게 결혼한다. 1990년 1000명 당 약 26명이던 전국 일반 혼인율은 2016년 13명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전국 평균 초혼연령도 남자가 27세에서 32세로, 여자는 24세에서 30세로 높아졌다. 1990년 전체 인구의 4.8%뿐이던 1인가구는 2015년 21.3%로 많아졌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은 더 이혼하고 더 늦게라도 이혼한다. 이혼율은 90년대부터 꾸준히 올라 2003년에 정점을 찍고 감소세를 보였으나, 1990년에는 100명당 3명꼴이던 ‘돌싱’이 2016년에는 5명꼴로 늘었다. ‘황혼이혼’도 크게 늘었다. 가장 큰 상승폭을 보여준 남자 60~64세, 여자 55~59세 부부 이혼은 1990년 114건에서 2016년 2,807건으로 늘었고, 남자 75세 이상, 여자 70~74세 부부의 이혼도 같은 기간 9건에서 389건으로 뛰었다. 애는 되도록 낳지 않는다. 1993년 1.65명이던 합계출산율이 2016년 1.17로 급감했다.

바야흐로 가족의 위기다. 지난해 5월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대답한 비율은 2013년 43.2%에서 33%로 떨어졌다. 해마다 비슷한 설문조사 결과가 반복되는 걸 보면 스스로 ‘가족을 선택할 권리’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이런 흐름을 역행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성소수자들이다.

이성애자만을 위한 각종 혜택

그간 스스로 선택한 이와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인 결혼 제도는 이성애자들이 독점해왔다. ‘울타리 건너편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는 미국 속담처럼 결혼이라는 법률적, 제도적, 사회적 울타리도 그 안에 있을 때보다는 밖에 있을 때 그 가치를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세금감면부터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가족정책의 혜택에서 성소수자들은 배제된다. 20여 년을 함께 한 배우자가 죽어도 재산 한 푼 상속받지 못하고 함께 살던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상속 우선순위인 직계가족이 아닌 탓이다.

배우자가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도 함께 삶을 공유해온 동성 파트너는 의료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 수술 중에 배우자가 사망해도 의료진은 동성 파트너에게 그 사실을 공지할 의무가 없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축의금이나 의료혜택도 못 받는다. 하다못해 통신사 요금에서도 가족 혜택 대상자가 될 수 없다. 친한 친구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면 10년을 함께 산 배우자가 있다 해도 마흔 살 먹은 노처녀인 척 연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정폭력 시달려도 ‘가족’이란 이름으로…

20년 넘게 함께 산 동성 커플은 가족이 아닌가? 매일 쥐 잡듯 아내를 두드려 패는 남편과 그 아내는 가족인가? 공관병을 ‘가족처럼’ 대한 박찬주 육군 대장과 그 부인이 사회적 뭇매를 맞기도 했는데, 도대체 가족은 무엇일까? 동성혼을 반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족이 정말 단순히 아이를 낳아 기르고 사회화하고, 또 그 자식이 자라 늙은 부모를 돌보는 인구 재생산과 돌봄노동의 단위에 불과할까? 매우 국가주의적인 이 논리는 이미 ‘그럼 불임 부부도 결혼할 수 없는 거냐’는 반박에 논파된 지 오래다. 가족은 그 사회적 기능을 초월한 의미를 갖는다.

   
▲ 가족은 개인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행복감을 제공하는 가장 친밀한 공동체다. © pixabay

가족은 개인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행복감을 제공하는 가장 친밀한 공동체다. 지역공동체와 개인 간 연결이 단절된 현대사회에서는 정서적 안전망으로서 가족의 기능이 더욱 중요해졌다. 영국 가족사를 연구한 로렌스 스톤은 저서 <영국의 가족, 섹스, 그리고 결혼 1500~1800>에서 지역사회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력히 작용하던 17세기 영국 가족에서는 부부관계의 애정이 각자 사교생활보다 덜 중요했다고 설명한다. 길을 가다 부부가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라고 인사를 나눌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의 한국은 옆집 사는 이웃과 엘리베이터를 타도 한마디조차 나누지 않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사회다. 가족이 제공하는 정서적 안정감이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보다 직접 옆에서 안부를 물어주고 건강을 챙겨주는 배우자가 있는지는 수명과 긴밀한 상관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성소수자의 결혼을 금지할 권리?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결혼을 금지할 권리가 있을까? 동성혼에 대한 반감의 밑바닥에는 결혼은 ‘원래’ 남녀의 결합체라는 인식이 자리한다. 하지만 근대 결혼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혼은 정치·경제·문화적 역학관계의 교차점에 존재한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버지니아를 포함한 12개 주가 백인과 흑인 간 결혼을 금지했다. 대법원이 이를 철폐한 것이 1967년 일이다. 결혼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규정되어 온 것이다.

또 다른 가족 구성권인 입양권은 어떤가? 동성부부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야 할까? 아이 양육에는 남성과 여성의 영향이 고르게 필요하다는 반대측 주장은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한 부모 가정의 자녀와 이성애자 부모에 의한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지워버리는 언사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 불행을 안고 있는 걸까? 동성부부라는 이유만으로 양육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사회가 손가락질하고 인정해주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택하는 성소수자들만 탓할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행복추구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협소한 결혼 제도의 외연을 넓혀 성소수자들을 편입해야 할 근본 이유다.

가족 개념을 재정립할 때

가족구성권 확장을 넘어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의할 필요도 있다. 두 성인에 그치지 않고 다수 신청인을 가족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시설에서 자립하고 싶은 장애인 다수도 새로운 가족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탈시설’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의지할 사람들 여럿이 함께 살 수 있으니 시설에서 자립할 수 있는 장애인들이 대폭 늘어날 길이 열리지 않을까?

더욱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인정하고 이들에게 제도적 보호망을 제공한다면 국가가 부담해야 할 복지 부담들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국공립유치원 대신 돌봄노동을 함께 도맡아주는 안전망을 원하는 이들이 함께 꾸려갈 수 있을 터이다. 가장 훌륭한 질병 예방은 행복한 삶일 터이다. 자신이 원하는 이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이 마련된다면 국민건강보험 지출을 상당부분 줄이고 자살자 수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존 가족 담론이 위기에 처한 지금이 가족에 관한 새로운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때인 듯하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안형기 기자

[남지현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환경부, 국제부, 시사현안부 남지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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